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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톺아보기 Jul 14. 2024

홀로 사는 '재미'와 '의미'를 찾다 - <자취남>

<매우 사적인 유투브 탐방> 


유투브의 시대이다.  광대한 대양과도 같은 유투브의 세계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콘텐츠의 섬들이 떠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저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유투브 콘텐츠를 찾아 주유한다. 이제는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이 유투버인 시대, 뒤늦게 그 유투브의 세상에 맛들인 기자가 매우 사적인 유투브 콘텐츠 탐험기를 적어보고자 한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저녁,  하루 동안의 먼지와 열기를 씻어내고 소파에 안착하면 자연스레 손이 리모컨으로 간다. tv를 켜고~, 연속극? 뉴스? 한때는 애청하는 드라마를 '닥본사'하는 게 유행이었다지만 이제는 요일도 제 각각, 방영하는 시간도 제각각 그걸 기억하고 챙겨 볼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청실홍실(1977)> 즈음부터 드라마를 즐겨봤다. 자꾸 '척 보면 알겠'는 드라마가 많으니 호흡이 끊어진다. 미드, 영드, 유럽드, 중드까지 섭렵해보기도 하지만 점점 그 긴 호흡이 버겁다. 



그리고 고백하건대 tv 뉴스를 끊은 지는 오래 되었다. 사주에 화가 많은지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울뚝불뚝 혈압이 올라가는 성정, 세상사의 동정으로 인해 내 마음까지 다칠 일인가 싶더라. 핸드폰 뉴스피드, 하다못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까지 뉴스 속보가 시시때때로 뜨는 세상, 정자세로 뉴스를 시청하는 수고는 내게 덜어주기로 했다. 





어느 덧 유투브를 애청하게 되었다


그래서 리모컨이 향한 게 유투브다. 다행히 우리집은 tv와 유투브가 연결되어 있어 드라마 보듯이, 뉴스 보듯이 유투브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이게 참 흥미롭다. 마치 화수분처럼 그곳에 뭐든 다 있다. 



그 중에서도 요즘 즐겨보는 콘텐츠에 <자취남>이 있다. 자취남은 정성권 씨가 진행하는 1인 콘텐츠로 75만 명 정도의 구독자가 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말 그대로 '자취'를 하는 이들을 찾아가 그들의 자취 생활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되돌아 보면 어릴 적부터 집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릴 때 우리 집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요즘 유투브 집 소개하는 콘텐츠같은 책이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이층 양옥집 사진이 게재되어 있고, 그와 함께 집 단면도, 구성도 같은 것들이 각종 정보와 함께 나와 있었다. 백과 사전만큼 두꺼운 책이었는데, 나는 그 책이 좋았다. 가끔은 그 책의 단면도로 소꿉놀이같은 것도 했었다. 돌아보면 꽤나 이상한 아이였다. 



그런 남의 집 구경하는 취미는 조금 더 자라 일본 잡지 <논노>에 등장하는 아기자기한 일본 집 구경을 거쳐, 우리나라 고품격 생활지 <아름다운 집>이나, <샘이 깊은 물>을 거쳤다. 잡지를 보더라도 패션보다는 남의 집 구경이 재밌었고, 때로는 도서관에서 건축 관련 에세이를 빌려다 보기도 했다. 땅콩 집도 열풍이 불기 전에 책으로 알았고, 이제는 정치인이 된 김진애 씨를 알게 된 것도 건축가 김진애가 쓴 책을 읽으면서이다. 





왜 자취남이지? 


그런 나였으니 유투브에서 자연스레 남의 집 구경하는 콘텐츠를 찾아보게 되었다. 당연히 EBS 건축 탐구 - 집은 애청 프로그램이 되었고, <소비요정의 도시 탐구> 등등을 섭렵했다. 유투브의 특징이 내가 특정한 콘텐츠를 보게 되면 귀신같이 그와 비슷한 콘텐츠를 '맞춤'으로 찾아 올려준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것이 <자취남>이다. 



그런데 대부분 유투브에 등장하는 남의 집 구경은 '자연인' 컨셉이 아닌 이상 '아름답고 멋진 집'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아름다우려니 좋은 집인 경우가 많다. 풍광이 좋은 곳에 유려하게 잘 지은 집들, 혹은 일반인은 감히? 하는 곳을 들여다 보는 기쁨, 그 멋짐을 관람하는 재미도 좋지만 마치 오뜨꾸뛰르을 보고 난 소감처럼 그게 여운으로 남지는 않았다.  



반면 <자취남>은 각계각층의 자취생들의 집에 방문하여 집 내부와 자취 꿀템을 소개하고, 거주 지역의 특징과 장단점을 인터뷰하는 컨텐츠로 대부분 거주자들이 월세나 전세인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남의 집 구경을 다녀 본 정성권 씨가 호기롭게 집세를 맞추는 게 이 콘텐츠의 통과 의례이듯이 대부분 대한민국 갑남을녀들이 살아가는 현실이다. 즉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의 민낯같은 모습인 것이다. 어느덧 전국민의 1/4가 1인 가구가 된 시절에, 이제 '자취'는 더는 특별한 사람들의 삶이 아닌, 보편화된 삶의 형태가 되었고, <자취남> 속 등장인물들은 그런 이 시대 보편의 삶을 전한다. 



'자취'라는 말에서도 느껴지듯이 대부분 홀로 생활하게 된 젊은 MZ 세대가 많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 40, 50, 60대가 되어서도 의연하게 홀로 살아가는 이들이 삶이 그들의 집을 통해 소개된다. 어렵사리 구한 7,8 평의 공간을 온전히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그 공간을 쪼개고 나누어 자신만의 개성적인 곳으로 만들기 위해 고심한 이들, 반면에 늘 고시원 등등 전전하다 방이 세 개인 공간을 '차지'한 젊은 남성은 방 하나를 온전히 자신이 만든 가구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운다. 8천만원의 예술인 대출로 마련한 1억의 전세 빌라는 한 배우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각이 살려진 철제 가구들의 공간으로 거듭난다. 60대의 한 여성은 나이가 무색하게 여전히 자신만의 취향과 에너지로 가득한 공간을 선보인다. 특별할 것없는 거리에서 마주치는 오피스텔과 빌라 들이 '개인'들의 손때를 타며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공간으로 재탄생된다. 



코로나는 내가 머무는 공간을 새롭게 인식하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애써 벌어도 집 한 칸 마련하기가 힘든 시절은 역설적으로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지금 여기서 내가 누리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바로 그런 이 시대에 새롭게 깨달은 '현존의 삶과 의미'를 자취남 속 등장인물을 통해 마주하게 된다. 젊건, 나이들건 홀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공간'은 곧 나이다. 온전히 '나'로 이 세상을 어떻게 헤쳐나가고 있는가를 그들은 자신의 공간을 통해 보여준다. 



그냥 집을 꾸미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허용된 시간과 공간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이 시대의 '시그니처'이다. 그저 20~30분의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의 집을 소개받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보고 나면 자신의 두 발로 땅을 딛고 우뚝 서있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마주한 듯한 여운이 전해진다. 그 어떤 일일 드라마도 전하기 힘든 진솔한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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