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대는 구직중 10화>
자격증도 받기 전에 설레발을 치며 면접을 보러 갔다 월급도 받지 못할 곳에서 일할 뻔한 해프닝을 겪고 조신하게(?) '쯩'을 받는 날을 기다렸다. 자격증이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비로소 '고용 24' 사이트에 들어갔다.
고용 24는 정부가 만든 고용 관련 통합 사이트로 고용 훈련 을 비롯하여 실업 급여 신청, 다양한 구인구직 관련 정보 등를 알 수 있는 사이트이다. 요양보호사를 검색하면 매일 매일 여러 곳에서의 구인 정보가 뜬다.
▲ 고용 24 © 고용 24
처음 생각과 다르게
처음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만 해도, 그리고 실습을 나갔을 때까지만 해도 '주간보호센터'에서 일을 구하겠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난 번 해프닝을 겪고, 고용 24에 구인 분야에 나와있는 몇몇 주간 보호센터에 문의를 하면서 점점 주간 보호센터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우선 내가 주간 보호센터에서 일을 하고자 했던 건 그래도 그간 내가 아이들을 가르쳐 왔던 시간이 있었기에 그러한 경험이 주간 보호센터에서라면 조금이나마 활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실습으로 나간 주간 보호센터의 경우, 주 3일 외부 강사를 초빙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나머지 3일에는 자체 요양 보호사들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저런 시스템이라면 내가 가진 달란트를 활용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막상 이곳 저곳 문의를 하다 보니 제일 먼저 걸리는 것이 이른바 '송영' 문제였다. 거의 다는 아니지만 많은 주간 보호센터들이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어르신들을 아침에 모시고 오고, 오후에 모셔다 드리는 걸 요양 보호사들이 맡아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운전 면허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로 말하면 운전 면허를 가지고는 있지만, 면허를 따는 과정에서 사고를 내며 된서리를 맞은 경우라 '장농 면허'인 처지였다. 지금이라도 다시 연습을 해봐? 이런 생각도 해봤지만, 환갑을 넘은 내 나이에 무리를 하면서 '송영'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어쩐지 아니다 싶었다.
물론 '송영'을 하지 않는 곳들도 있었다. 그런데 '송영' 다음으로 내 발목을 잡은 건 '나이'였다. 상대적으로 인지가 있는 어르신들이 가는 주간 보호센터는 활동적인 프로그램 중심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고, 4, 50 대의 젊은 (?) 사람들을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주간보호센터에 가려면 이것도 걸려, 저것도 걸려 가기도 전에 의기소침 해질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송영도 하지 않고, 나이 제한도 상대적으로 덜 한 곳을 찾다 보면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주간 보호 센터를 비롯하여 요양보호사 직군 자체가 이동이 많은 편이니 날마다 고용 24의 구인 정보는 늘 새롭게 리뉴얼 되고 있었다.
그런데 맞는 곳은 둘째치고 시작도 하기 전에 맞는 조건을 찾아서 고용 24를 뒤지는 수세적인 처지가 답답했다. 이렇게 차 떼고, 포 떼는 식으로 새로운 직업을 찾는 나의 방식에 대해 되돌아 보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비로소 내가 딴 '요양보호사'라는 자격증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요양 보호사'는 말 그대로 노년에 이르러 스스로 자신의 삶을 영유해나가기 쉽지 않은 어르신들이 일상 생활을 잘 구가해 나가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직업인 것이다. 즉 '요양'과 '보호'에 방점이 찍혀있는 자격증을 따고서, 이전까지 내가 했던 일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고, 스스로 내가 딴 자격증에 한계를 설정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보살핀다는 점에서 그간 내가 해왔던 일과 지금부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비슷하겠지만, 그 보살핌의 내용은 질적으로 다른 차원일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아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실습으로 나간 주간보호센터에서 요양보호사들이 격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고는 했지만, 하루의 한 시간 정도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 대부분은 어르신들의 일상이 제대로 영위되도록 도와드리는 것이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요양원이나, 주간보호센터나 그런 면에서 요양보호사의 '임무'는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내가 보고 싶은 면만, 내가 하고 싶은 것만 그 직업에서 찾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 독서 논술 © 핀터레스트
여전히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그 일에 대한 나의 '습', 혹은 '집착', '미련'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않구나란 깨달음에 이르렀다. 그러고 보면 요양원 실습을 하면서 '기저귀 케어'를 도와드리면서도 나는 주간 보호센터 가서 어르신들 가르칠 거야 하면서 그것이 내 일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구나란 깨달음에 이르렀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일이 늘 그렇게 충만한 일이었나 하는 반추를 해보게 된다. 아이들이 어릴 적 같은 아파트 아이들의 독서 논술을 하던 시절, 이 정도는 읽어야 해, 이 정도는 알아야 해 라며 의무감이랄까 사명감에 아이들을 다그쳤던 시절이 떠올랐다. 얼마 전 아동 센터에서 경계성 지능의 학생을 가르치며 다음 시간에 가면 언제 배웠냐는 듯 리셋되어 아득해졌던 경험도 떠올랐다. 물론 그렇게 비감한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여전히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다는 미련에서 자유롭지 못한 걸 보면, 꽤나 매력적이고 보람있었던 일이었다. 그럼에도 마흔에 독서 논술 지도자 자격증을 얻고 환갑 즈음에 이르기까지 그만하면 나름 그 자격증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았을까란 생각에 이르렀다.
물론 앞으로도 그로 인한 일들이 나에게 주어진다면 감사하겠지만, 지금 이 나이에 이르러 보다 안정적인 호구지책을 원하는 나에게는 마땅한 일이 되어주지 못했다. 마땅하지 않아, 마땅한 것을 찾아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다면 홀가분하게 그 길을 가면 될 뿐인 것이다.
우리는 '왕년에 말이야' 하면서 지난 삶에 천착하는 사람들에 대해 답답해 한다. 그런데 이 자리에 서고 보니 내가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여행을 떠나면서 여전히 나는 지난 삶의 흔적들을 잔뜩 짊어진 채 떠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 여행을 가면서 된장 고추장 김치로 짐이 가득한 것처럼 말이다. 그로 인해 내 발걸음은 첫 발을 떼기도 전에 지난 삶이 남긴 그림자로 허덕이고 있는 셈이었다.
조금 홀가분하게 떠나 보자. 아직 내가 가보지 않은 길, 거기에 무엇이 있을 줄 누가 알겠는가. 지나온 시간의 짐들은 이제 여기 내려놓고 가기로 했다. 그저 아직은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내 두 팔과 두 다리를 믿어보며 새로운 길의 첫 걸음에 나서보기로 했다. 주간보호센터다, 요양원이다, 주간이다, 야간이다 규정 지을 것 없이, 나를 놓아 보기로 한 것이다. 선입견 없이 새로운 직업의 세계로 떠나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