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대는 구직중 9>
언니, 저도 신청했어요~.'
한때는 덕질의 동지였지만, 이제는 맛집 탐방 친구가 된 후배가 톡을 날렸다. 무슨? 하고 물어봤더니 집 앞에 요양보호사 학원이 있어서 신청했단다. 안 그래도 어머님이 다치셔서 요양병원에 계시다 하더니 그래서 그런가 했더니 딱히 그건 아니란다. 남편이 아플 수도 있으니 만약에 대비해서 따 놓았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 친구와 함께 만나는 멤버가 세 명이다. 그 중 나는 '호구지책'으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고, 다른 한 명의 친정 어머니와 동생은 파킨슨에 걸리신 아버님 간호를 위해 자격증을 땄다 했다. 지난 번 모임에서 그 얘기를 듣더니, 미래에 대한 보험으로 자기도 자격증을 따겠단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둘러 싼 우리 세 사람의 상황은 공교롭게도 이 자격증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 요양보호사 교재 © 보건복지부
내가 수업을 들은 학원의 기수는 40 명 쯤으로 시작했다. 그 중 열 명 남짓 되는 사람들은 간호조무사와 사회복지사로 현업에 계신 분들이었다. 일반적으로 요양보호사 교육 과정은 두 달 간의 교육 과정과 2주 간의 실습 과정을 거쳐야 하는 반면, 사회복지사나 간호조무사 자격증이 있으신 분들은 42 시간의 교육과 8일 간의 실습만 거치면 됐다. 현직에 계시지만 또 다른 미래에 대한 보험으로 따러 오신 분들이셨다.
그렇게 자격증을 이미 가지고 계신 분들이 빠지고 나면 남은 인원은 서른 명이 안됐다. 나이 분포로 보면 사십 대가 다섯 명 정도, 오십 대가 열 명 정도, 나머지가 60대, 혹은 그 이상이었다. 내가 속한 기수가 보편은 아니었지만, 다음 기수 분들도 비슷한 상황인 거 보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기 소개를 하는 시간, 자격증을 따러 오신 분들 중 넉넉하게 잡아 1/3 정도가 가족 간병을 하기 위해서나, 대비하기 위해 자격증을 따러 오신 분들이셨다. 전통적인 관습으로 보자면 가족 중 누군가가 아파서 간병을 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건강보험제도가 발전하며 이제는 개인 간병 시간의 1/3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불하는 정도가 되었다.
어머니와 딸이 함께 자격증을 따러 왔다. 그 집은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가족 간호를 받고 계시는 중이라고 하셨다. 또 다른 분은 그동안 당뇨에 암 투병을 하는 남편을 간병하느라 허리가 굽어 버리셨다고 한다. 한참 아프실 때는 엄두도 못 냈는데, 이제 조금 여유가 생기셔서 자격증을 따러 오셨단다. 시어머니가 나이가 드셔서 따라 해서 온 며느님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공부도, 실습도 늘 버거워 하셨다. 몸져 누운 남편을 간병하다 자격증을 따러 온 분은 정작 당신도 뇌 관련 약을 드셔서 집중하는 걸 힘들어 하셨다.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보장이 되는 제도 덕에 가족 간병의 숨통이 트였고, 저마다 사연을 가진 분들이 그 혜택의 온기를 얻으려 하셨다.
물론 해프닝도 있다 했다. 이른바 재가 요양 보 호가 3시간을 보장해 주는데 반해 그 1/3 금액을 제공하는 가족 간병의 시스템이 아쉬워 가족 간병을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바꾸어 하는 '조작'을 해서 제도를 이용하다, 된서리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며 수업 중 경고에 경고를 들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은 출결이 엄격하다. 국가 공인 자격증이고, 내일 배움 카드로 신청한 사람들은 일정 시간 일을 하면 수업료를 환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수업 시작하고 끝날 때 '수기'로 체크를 했었는데 서로 체크를 해주는 등 출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다 보니 이젠 앱을 깔고 매 시간 시작과 끝에 확인을 해야 출결이 되는 엄격한 과정을 거치도록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재가 요양 보호 역시 시작과 끝이 집에 부착된 전자 관리 시스템을 통해 관리되어 '야매'로 하는 것이 여의치 않게 되었다니. 제도와 제도의 행간, 그 사이에서 사람들의 횡보가 있다.
함께 수업을 듣고, 함께 카톡 방도 만든 수업 동기들, 그런데 정작 자격증을 받고 가족 간병을 차치하고 요양보호사로 일하게 되었다는 사람들은 다섯 손가락을 꼽게 될 정도뿐 이었다. 수업을 듣고 자격증을 따도 그걸로 당장 뭘 해보겠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러니 한 주 걸러 전국에서 시험이 치뤄지고 수많은 요양보호사들이 배출되는데도 늘 구직 구인이 멈추지 않는 상황이 된다.
우선은 미래를 위한 보험으로 따놓겠다는 후배처럼, 이른바 '장농 면허'들이 많다. 함께 수업을 들은 올해로 70대이 되었다는 남성 분은 6월에 요양보호사 자격 시험을 시작으로 준비 중인 자격증만 세 개가 된단다. 그 분이 따려 준비하신다는 자격증 중 '소방 안전 관리사' 역시 퇴직한 사람들에게 인기 자격증이란다. 함께 일하는 요양보호사 님도 자랑스레 자신이 자격증이 정말 많다며, 요양보호사에 앞서 장애인 활동지원사 자격증을 가지고 활동하려 하셨다고 말씀하신다. 이 분들만이 아니다. 퇴직 후 제 2의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고시 동네인 노량진의 분위기가 바뀔 정도라니. 나 역시도 다른 무엇보다 확실한 '쯩'을 기반으로 노년의 삶을 구축해 나가려 했으니 당장은 아니라도 '보험'으로 이러 저러한 자격증 만한 게 없다는 게 나이든 사람들의 고육지책인 듯하다.
▲ 요양보호 © 핀터레스트
그리고 요양보호사로 활동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정작 주간보호센터나 요양원 같은 시설보다는 집으로 방문하는 '재가 요양 보호'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함께 수업을 들은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그래도 괜찮은 분들을 만나면 재가 요양 보호가 덜 힘들고,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다며 선호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 세 시간, 아니 한 집을 더해 하루 여섯 시간이라면 노년의 직업으로 여유를 누리며 충분히 할 만한 일이다 싶은 것이다.
더구나 최근 주간 보호센터가 4,50대를 선호하고, 요양원도 66세로 정년을 책정하는 추세에서, 연령 제한이 없이, 때로는 함께 친구처럼 지낼 나이 드신 분을 더 선호하는 재가 요양 보호가 나이든 분들에게는 꽤나 매력적인 일의 영역일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실습을 나가서 뵈니, 같은 아파트 단지 옆 동에서 이웃으로 지내다 재가 요양 보호를 하게 되신 분도 있고, 비슷한 연배라 언니 동생하며 지내시는 분들도 계셨다.
한 달에 한번씩 개설되는 교육 과정, 한 주 걸러 치뤄지는 시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요양 보호사 자격증에 도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