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대는 구직중 8 >
뜬금없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겠다고 하자 걱정해 주던 친구가 전화했다. 어떻게 됐냐고? 아직 합격증이 나오지 않아 기다리는 중이라고. 친구는 답답하겠다 했고, 나도 이도 저도 아닌 시간이 쉽지는 않다 했다.
마치 출발선에 선 경주마처럼 시험을 치고 결과만을 기다렸다. 결과만 나오면 '준비 ~ 땅 '하고 달려가려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금요일에 시험을 치르고, 혹시나? 떨어질까 조마조마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이 되니 합격되었단 문자가 도착했다. 이제 시작인가 하며 얼른 가서 도핑 테스트부터 했다. (요양보호사는 직업적 특성상 약물 관련 도핑 테스트가 필수이다) 도핑 테스트를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그 결과를 취합해서 보내는데 일주일이 걸리고, '아기다리고기다리'던 합격증이 나오기까지는 다시 1주에서 2주가 걸린단다.
달리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4월 중순부터 지금까지 합격을 향해 달려오고, 합격만 하면 당장 다음 주부터 출근을 하게 될 듯한 기세로 달려왔는데, 공부를 하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아닌 시간에 어쩔 줄 몰랐다.
급한 마음에 합격증이 나오기도 전에 취업 정보를 훑었다. 그 중 '급구'라는 곳이 눈에 띄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했는데, 면접을 와보란다. '이러다 합격증 나오기도 전에 취업부터 하는 게 아냐?', 설레이는 마음으로 한 주간보호센터를 방문했다.
주간보호센터, 혹은 주야간 보호센터는 요양보호사가 취업할 수 있는 시설 중 한 곳이다. 이른바 '노치원'이라 칭해지는 곳, 요양보호등급 중 5등급이나 인지 지원 등급 등을 받으신 어르신들을 낮동안 보살펴주며 여러 신체적, 인지적 활동 지원을 하는 곳이다.
방문을 한 곳은 한 건물의 8층에 위치한 곳이었다. 내가 도착하니 어르신들이 한참 걷기 연습을 하고 계셨다. 그분들을 뒤로 하고, 센터장 방으로 들어가 면접을 보는데 나 말고도 다른 한 분이 더 면접을 보러 오셨다. 나는 신참답게(?) 어르신들 송영(집에서 어르신들을 모셔오고 데려다 드림)을 하지 않는다는 센터장의 자부심넘치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와 함께 온 분은 경험자답게 페이를 지불하는 조건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문하였다. 그게 참, 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보면 이상적인 조건이었는데, 구체적인 질문으로 들어가니 고개가 갸웃해지는 상황이 드러났다.
더구나 나처럼 합격증이 나오지도 않은 사람의 손이라도 빌어야 할 만큼 이번 달에 단 한 분을 남기고 요양보호사분들이 모두 그만 두신다는 것이었다. 왜 쎄함은 과학이라고 하지 않던가. 바로 그 쎄함이 느껴졌다.
당장 취업을 하고 싶은 마음과 뭔가 이상한데 하는 느낌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나는 학원에 문의를 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급한 마음에 취업을 했으면 그 내가 원하던 '월급'도 제대로 못 받았을 지도. 그렇게 한바탕 해프닝을 겪고 나니,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구슬을 꿸 합격증도 없이 서두르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가 싶었다.
▲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 웅진지식하우스
윈터링(wintering)이라는 용어가 있다. 겨울살이, 겨울나기라 해석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캐서린 메이는 <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라는 책을 통해 '윈터링'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생의 겨울이란,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거부당하거나 대열에서 벗어나거나 발전하는데 실패하거나 아웃사이더가 된 듯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인생의 휴한기이다.
일정에 맞춰 진행되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뭐라도 하려 하는 나의 모습이 어쩌면 '안티윈터링 증후군'이 아닐까 스스로 진단해 보았다. 안티윈터링 증후군은 내가 만들어 낸 용어인데, 인생을 살아가며 잠시라도 자신이 '윈터링'의 상황에 빠져들까 조바심을 내는 심리적 불안 증세 같은 것이다.
그건 비단 취업을 앞둔 긴장감 넘치는 상황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돌아보면 학창 시절 새로운 학년에 진급을 하면 어서 빨리 이 새 반에 적응하고, 새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아이들을 키울 때면 버젓하게 아이들을 키워야 하고, 경제적으로 안정을 구가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나를 다그쳤다. 즉, 내 삶에 폭풍한설이 몰아치면 어쩌지, 삶이 휴지기를 맞이하면 어떡하지 , 인생의 아웃사이더가 되면 어떻게 해 하는 마음이 늘 나를 무언가라도 하고, 무언가라도 붙잡도록 만든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러한 나의 강박이 나의 열정을 불러 일으키고, 그래서 열의에 넘치게 도전을 하게 만들고, 관계에 애를 쓰게 만들었지만, 삶의 성취로 인해 내 삶에 방점을 찍으려고 하는 나의 시도들이 늘 생각만큼 수확을 하는 게 아니었으니, 겨울의 시간을 맞이하면 어쩔 줄 몰라 했었다. 본의 아닌 이 잠깐의 휴지기에도 쩔쩔 매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에서 캐서린 메이는 말한다. '인생에는 한껏 높이 비상하는 순간이 있는가 하면, 아침에 일어나기조차 버거운 순간들도 있다. '고. 둘 다 정상이고, 둘 다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그리고 '변화는 늘 일어나게 마련이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은 그에 대처하는 자세'라는 것이다.
나는 인생의 쉼표는 커녕, 숨표도 호들갑스럽게 어쩌지 어쩌지 하다, 합격증도 받기 전에 취업을 한다며 서두르는 해프닝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던 듯하다. 덕분에 항상 '유비무환'의 태세를 갖추었지만, 상황을 좌지우지 못할 때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는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캐서린 메이는 그녀의 책에서 윈터링에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첫 번째 기술이란 다름 아닌 '겨울'을 인정하는 것이다. 슬프면 슬프다고, 헤매이면 헤매인다고. 뭐 또 가르쳐 주면 곧이 곧대로 잘 따라하는 것도 내 캐릭터니까. 케서린 메이의 지침을 따라가 보련다.
바늘 허리 묶어서 꿰맬 수 없는 상황, 답답하지만 기다려야 하는 상황, 지금 이 상황을 그대로 바라보기, 그리고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아니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답답하다가 아니라, 말 그대로 '숨표', 그 자체로 이 여유를를 숨 쉬어 본다. 언젠가 나중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 지금 내가 보내는 이 '하릴없는 시간'을 그리워 할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