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리와 세리 Mar 09. 2020

나는 그때,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글쓴이, 세리


나는 그때,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며칠 전 사소한 일로 연인과 크게 다툰 적이 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다툼의 이유는 사소한 것이었다. 평소 거절을 잘 못하는 그가 또 어디선가 거절을 못하고 온 것이 화근이었다.  그리고 이런 다툼은 우리가 만나는 지난 4년 동안 아주 비일비재했다.

 휴대전화 판매 대리점 앞을 지나다가 판매원에게 팔을 붙잡혀 불필요한 얘기를 듣거나, 길에서 몇 시인지 물어보는 척 접근해 혹시 도에 관심 없냐는 사람들에게 붙잡혀 얘기를 듣거나, 또는 같이 일하는 동료가 준다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들을 차마 거절하지 못해 받아오는 등등, 거절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일들이 여럿 있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면 집에 돌아와 풀이 죽은 그를 보며, 나는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화부터 냈다. 거절하지 못하는 게 미덕이 아닌데 본인을 위한 기본적인 방어를 못하는 그에게 화가 났다. 

그런데 화를 내고, 핀잔을 주고, 다그치다 보니 그러고 있는 내 모습에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도대체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던 걸까?

 어느 연인들이 그러하듯, 우리도 갖가지 이유로 크고 작게 다투곤 했다. 모든 싸움의 시작엔 이유가 있었지만, 끝나고 보면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만큼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궁금한 건 더 이상 다툼의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왜 '이만큼이나' 화가 났냐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찾아낸 답은 이러하다.

그가 실수를 하고 후회를 할 때, 나는 그 모든 일의 결과가 마치 내 책임인양 괴로워하고 있었다. 불필요한 불건을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온 것은 그였지만, 그 물건들을 처리하는 일은 내 책임이라고 느꼈다. 판매원들에게 붙잡혀 시간을 뺏긴 것은 그였지만, 그 시간을 똑똑하게 쓰지 못해 손해를 본 것도 내 책임이라고 느꼈다. 그에게 왜 좀 더 똑 부러지게 행동하지 못했냐고 다그칠 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모든 일의 책임이 내게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괴로웠다. 모든 게 다 내 탓인 것만 같아서.

 

 비단 연인과의 관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옆에 앉은 동료가 본인의 엑셀 서식이 안 먹힌다고 짜증을 냈을 때도, 프린트 토너를 교체했는데 작동을 안 한다고 화를 낼 때도, 이런 문제들을 남일이 아닌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책임을 떠맡은 것은 분명 나였다. 누가 시키기도 전에 자진해서 문제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 불평하는 얘기를 들어놓으면 어느샌가 그 괴로움은 오롯이 내 것이 되어 정작 얘기를 꺼낸 친구보다 더 괴로워하곤 했다. 


 이 일을 글로 쓰고 보니, 그때의 자책감이 얼마나 황당한 것이었는지 더 확연히 느껴진다. 도대체 왜 나는 남의 일에 이다지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일까. 아무리 연인이라고 해도 결국은 타인이 아니던가. 어째서 나와 타인의 문제를 구분하는 '거리감'을 자꾸 잊는 걸까.

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나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모든 문제를 껴안으려 하고 있었다. 나의 이런 문제를 깨닫는 건 쉽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평소에 내가 말버릇처럼 '남한테 관심 없다'를 외치며 개인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더 확실하게 타인과 선을 긋고 싶었던 나인데, 어째서 마주하는 문제들에 있어서는 그러지 못했을까.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살면서 엄마가 내게 가장 많이 한 말을 고르라면 단연코 '애들 밥은'이다. 이혼 후 어쩌다 세 아이를 모두 맡아버린 여인에게 첫째 딸은 의지할 수 있고 믿을만한 구석이었을 것이다. 그 덕분에 나는 어리광을 부릴 여유도 없이 애어른으로 자라 버렸다. 하루 24시간 중 절반 이상을 집 밖에 있어야 했던 그에게 나는 믿고 집을 나설 수 있는 두 아이들의 가디언이자 아이들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는 매개체이자, 예측하지 못한 사고에 대해 추궁할 수 있는 책임자였다.

그리고 나는 내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인지 알아낼 겨를도 없이 내던져지는 질문들에 답을 해야 했다. 애들 밥은 애들은 뭐해, 밥도 안 먹이고 넌 뭐했냐, 집에서 빨래도 안했냐, 애기 사고 날 때 제대로 안 보고 뭐했냐 등등.


 밥은 나도 아직 먹지 못했다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 빨래도 아닌데 왜 내가 다 해야 하냐고 묻지 못했다. 그런 말을 하기엔 엄마의 처지가 너무도 딱하다는 건, 어린 내 눈에도 쉽게 보였기 때문에. 남동생이 내 손을 뿌리치고 도로를 건너가 트럭에 치이기 전까지, 손을 꼭 잡고 있었다고도 말하지 못했다. 그 상황에선 어떤 변명을 한들 통했을까. 

 해야 했던 답들을 할 시기를 놓치고 나니 이제 지나간 말들은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반항심이 커져 속에 있던 말들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기대했던 관심과 애정은커녕 사랑의 정의를 의심하게 하는 사랑의 매질만 당했다. 다만 그때의 혼란스러운 책임감만 어설프게 남아, 이젠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들이 모두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 분간이 안되게 되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나의 책임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내 탓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 때문에 매를 맞고 크다 보면, 어지간하면 모두 내 탓인가 보다 생각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보니 나와는 상관없는 일에도 비난을 받게 될까 봐 두려워졌다. 

 지금도 그 구분이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적어도 지금은 문제를 깨닫는 수준에는 다다른 것 같다. 이제는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희미한 점선을 찾는 법을 배워보려 한다. 


 나의 연인이 살면서 겪는 시행착오들은 나의 것이 아니다. 그가 손해를 감수하고 때론 후회를 하면서 얻게 되는 경험치들은 훗날 다른 결정을 하는 데 필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누군가 나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지 않듯이,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내가 해결해 줄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최소한 직접 도움을 요청받을 때까지는 너무 앞서서 고통을 끌어안지 말자. 그리고 불필요하게 화를 내지 말자. 

그가 가져온 물건들은, 스스로 치우게 하면 그만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1. 봉선화를 닮았다고 하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