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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주 Jan 12. 2023

예술기행 ‘씨클롭’, 숲 속 외눈박이 괴물

키네틱 아티스트 장 팅겔리의 유토피아

씨클롭 전경 (앞쪽 얼굴은 니키 드 생팔의 '거울의 얼굴',  Crédits : Photo © Patricia Lecomte)


씨클롭(Le Cyclop)은 키네틱 아티스트 장 팅겔리 (Jean Tinguely)가 그의 아내이자 조각가인 니키 드 생팔 (Niki de Saint Phalle)과 예술인 동료 베른하르트 루긴뷔흘 (Bernhard Luginbühl), 리코 베버(Rico Weber), 다니엘 스포에리(Daniel Spoerri)의 협력으로 제작한 강철 350톤이 소모된 높이 22.5미터(건물 7층 높이)의 거대한 기념비적 조각 작품이다.      


씨클롭(Cyclop)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클로페스(Cyclopes)를 가리키는 단어로 이마에 눈이 박힌 거인을 가리킨다. 장 팅겔리는 십여 년 동안 파리 남동쪽 에손(Essonne) 지역 밀리 라 포레 (Milly-la-Forêt)의 숲 한가운데에서 예술인 동료들과 함께 유토피아적 우정의 연대로  모험을 하며 외눈박이 괴물 씨클롭을 완성한다.     


몸이 없는 거대한 머리에는 황금색 외눈이 박혀있다. 표면은 거울장식 때문에 햇빛에 반짝인다.  씨클롭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니키 드 생팔의 '거울의 얼굴' 이다.  이빨이 빠진 입에서는 물이 흐르는 긴 혓바닥이 미끄럼틀처럼 지상으로 떨어진다. 관객은 씨클럽을 관람하면서 에펠탑과 봉피듀 센터 공사장에서 주워 온 거대한 철근 구조물을 재발견하게 되고, 장 팅겔리의 공간을 가득 채우는 ‘메타 맥시’(Méta-Maxi, 1971—1975)와 '메타 하모니' (Méta-Harmonie, 1981) 작품에서 메커니즘의 압도적 에너지와 재치 있는 유머를 체험하게 된다.     


씨클롭 디테일(장 팅겔리의 '메타 맥시', Photo by ean-Pierre Dalbéra)


장 팅겔리는 스위스 현대 조각을 대표하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 예술가이다. 미술과 기계를 결합해 독특한 작품을 창작했는데 주로 못쓰는 기계를 조합하고 버려진 잡동사니를 작품의 재료로 사용했다. 스위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1952년 첫 번째 부인 에바 애플리(Eva Aeppli)와 함께 파리로 이주한다. 당시 미술계를 주도하던 추상 표현주의를 혐오하던 그는 1960년 10월, 누보 레알리즘(Nouveau réalisme) 선언문에 서명하면서 본격적으로 예술과 삶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새로운 예술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그 해 에바와 이혼한 팅겔리는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Phalle)과 예술적 교류를 하기 시작하면서 연인으로 발전하고 1971년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1963년 말, 장 팅겔리와 니키 드 생팔은 '밀리 라 포레' (Milly-la-Forêt) 도시 근처 에손(Essonne) 지역 '쑤와시 슈흐 에꼴르' (Soisy-sur-École)에 있는 댄스 바 '오 슈발 블렁'(Au Cheval Blanc)를 구입하여 정착한다.


장 팅겔리와 니키 드 생팔,  작업실  'Au Cheval Blanc', 1964 (사진출처: Kender Janos & Shunk Harry)


1968년에 장 팅겔리는 친구인 조각가 베른하르트 루긴뷔흘(Bernhard Luginbühl)과 함께 다양한 예술 분야를 결합하는 유희적인 인터랙티브 공간으로 꾸며진 거대한 조각 건축물 프로젝트 ‘기간톨륨(Gigantoleum)을 기획한다. 이 건축물은 서커스, 박람회장, 극장, 영화관, 레스토랑, 심지어 수천 마리의 새가 있는 거대한 새장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제작 비용이 비싸고 너무 야심 찼기 때문에 자금을 지원하려는 후원자를 찾지 못한다.


장 팅겔리는 니키 드 생팔과 함께 밀리 라 포레의 '부와 데 뽀브흐'(le Bois des Pauvres)숲에 이 프로젝트를 구현하기로 결정하는데 그것이 바로 현재의 씨클롭이다. 처음에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머리'(La Tête)였는데, 팅겔리의 최초의 프로젝트 아이디어 스케치에서 따온 제목이다.  

장 팅겔리의 '머리'(La Tête) , 씨클롭 최초 아이디어 스케치 (사진출처: Le Cyclop)


당시 장 팅겔리와 니키 드 생팔, 둘 모두 돈이 없었다고 한다.  니키 드 생팔은 '부와 데 뽀브흐'(le Bois des Pauvres) 숲 속 토지 취득의 맥락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우리는 돈이 거의 없었다. 땅을 사는 방법? 그 아이디어는 우리가 사는 곳 근처인 밀리 라 포레의 숲에서 나왔다. 건물을 짓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곳이라서 땅은 거의 헐값이었다. 우리는 밀리 라 포레의 시장을 만나러 갔고 […] , 우리는 다른 예술가들에게 참여를 요청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소유하고 싶지 않다고 결정했다. […] 장 팅겔리는 우리가 아는 가장 부유한 사람에게 땅을 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즉시 위대한 친구 장 드 메닐을 떠올렸다. 그는 우리의 제안에 동의했고 심지어 그가 산 작은 땅을 추가해 주었다. 현재 그 땅은 프랑스 정부의 소유가 됐다. ”( 닉키 드 생팔, "닉키의 글" , 팅겔리 박물관 전시회 Tinguely@Tinguely 카탈로그, Basel, 2012)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작업 자금은 장 팅겔리 혼자서 조달해야 했기 때문에 건축가 없이 그와 동료 예술가들이 모든 작업을 감당해야 했다. 전체 조각품을 완성하는데 10년이 걸렸고 공간이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채워지고 완성되기까지 15년이 더 걸리게 된다.  


씨클롭 디테일(장 팅겔리의 메타 하모니, Photo by © Tadashi Ono)


씨클롭 디테일(다니엘 스포에리의 '별호텔의 뒤집힌 침실', Photo by © Tadashi Ono)


씨클롭 디테일 (에바 애플리의 '추방자들에게 경의를'Photo by © Tadashi Ono)


씨클롭 디테일 (장 팅겔리&필립 부베레 '소극장', Photo by © Tadashi Ono)


씨클롭은 숲에 있었기 때문에 외부인에 의해 훼손되는 일이 자주 발생하였고 관리가 쉽지 않았다. 1987년 장 팅겔리는 씨클롭의 보존과 보호를 위해 작품을 프랑스 문화부에 제공하기로 결정하게 되고 씨클롭은 프랑스 국립조형예술센터 씨넵(Cnap, National Center for Plastic Arts) 컬렉션에 정식으로 귀속된다. 1988년 문화부는 작품의 관리를 씨클롭 협회 (Le Cyclop Association)에 위임하여 관람객 관리와 홍보를 위탁한다. 1991년 장 팅겔리가 사망하자 니키 드 생팔은 자금을 지원하여 조각품을 완성하였고 1994년 5월 씨클롭은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에 의해 정식 개관되어 대중에게 공개된다. 이때 니키 드 생팔은 더 이상 어떤 작업도 추가할 수 없다면서 씨클롭의 완성을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1994년 5월 24일 프랑스 대통령의 씨클롭 취임식 명판. 아티스트에게 알약 (RU 486)을 넣으라고 적혀 있는데 연결된 작은 기구에 아스피린을 넣어야만  명판을 볼 수 있다


씨클롭을 국가에 기증할 당시, 필립 부베레 (Philippe Bouveret)는 유머가 가미된 프랑스 대통령의 취임식 명판을 작품  '일반 테이블' (The Generic Table)으로 디자인한다.  이 작업은 속이 빈 몸체를 보이거나 사라지게 하기 위해 압력을 낮추거나 높이는 역할을 하는 루디온(ludion)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다. 우측 상단에 위치한 코인 투입구에 아스피린 알약을 넣고 레버를 작동시키면 작품이 작동되는데, 봉인이 해제된 후 다음과 같은 글귀가 화면에 나타난다.


"1969년에 시작된 씨쿨롭 조각은 1987년에 국가에 제공되었으며 1994년에 공화국 대통령인 프랑수아 미테랑(François Mitterrand)과 자크 투봉 (Jacques Toubon) 문화부 장관이 취임했습니다. "


아스피린의 약효가 모두 사라지면 글귀도 사라진다.  


-참고자료-

Le Cyclop 홈페이지

Niki Charitable Art Foundation : LE CYCLOP THEN AND NOW, 2020년 10월 12일

Museum Tinguely: Tinguely@Tinguely 전시회 도록,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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