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에세이
한여름 복날이 되자 우리 집 주방에서 무언가 보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코끝에 전해왔다. 하얀 닭백숙을 먹으면서 나는 문득 지난봄에 춘천에 가서 먹었던 닭갈비가 생각났다.
춘천 하면 닭갈비와 막국수가 대표적으로 떠오른다. 예전에 춘천에 가서 닭갈비를 먹은 것이 여러 번이지만 특히 지난봄에 갔던 김유정 문학촌에 있던 한 닭갈비 가게는 더 기억에 남았다.
강원도 춘천에 가서 소설가 김유정이 살던 마을을 둘러보았다. 정겨운 시골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바닥은 흙으로 된 비포장 길이 굽어져 있었다. 그 사이로 졸졸 흐르는 실 계천이 있었다. 실처럼 가늘게 물길이 나 있었지만 그 날은 그 물조차 흐르지 않아 조용했고, 물길이 난 땅은 가물어 갈라져 있었다. 실 계천을 따라 나있는 굽이진 좁은 흙길에는 듬성듬성 잡초들이 나 있었다. 마을의 좁은 길을 둘러싼 작은 동산 같은 초록색 풀 뭉치로 보이는 것들 안에서는 풀벌레 소리가 퍼지고 있었다.
고요함 속에서 햇살은 꽤나 뜨겁게 내리쬐었다. 인적이 드문 듯 보였지만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가끔씩 인가가 나왔다. 사람이 보이지 않았지만 집마다 진돗개가 ‘월월’ 외치며 자신이 집을 잘 지키고 있다고 알려줬다. 그곳은 정말 김유정의 소설에서처럼 감자를 캘 것 같은 소박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별하지 않은 것이 특별한 느낌의 마을이었다.
고개를 들어 마을 전체를 바라보니 둥그런 테두리 안에 좁은 길 여러 개가 갈래갈래 이어져 있어서 마치 미로 같기도 했다. 그곳의 색은 흙갈색과 초록 풀색이 어우러져 있었다.
천천히 마을을 둘러본 후 잠시 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가곡 소리가 귓가에 정겹게 들려왔다. 소리가 은근히 크게 울려 퍼지고 있어서 그 선율을 따라 걸어가 보니 한 가게가 나왔다. 그곳은 간판에‘춘천 닭갈비’가 크게 쓰여 있었다. 시골길을 따라 걷다가 노랫소리를 듣고 나타난 닭갈비 식당에 발길이 닿았다.
식당은 조금 허름한 듯 보였지만 노랫소리에 맞춰 흥겹게 들어갔다. 원탁형 은색 테이블이 곳곳에 놓여있었고, 가게 주인은 반갑게 맞이했다.
닭갈비와 막국수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창문을 통해서 바깥에 마을 풍경을 내다봤다. 상추와 초록의 풋고추가 상에 차려지고 시원한 물 한잔씩 마시며 한낮의 더위를 식혔다. 곧이어 동그란 불판에 큼직큼직하게 썰린 닭갈비가 야채와 함께 양념에 버무려지며 불에 익느라 ‘치-익’하는 소리를 내었다. 고기와 야채가 조금씩 익어갔고 붉은색이었던 양념이 고기와 어우러져 불에 익으면서 조금씩 밝은 빛이 돌았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닭갈비 조각을 들어 상추에 싸서 먹으니 출출했던 배가 차오르며 기분까지 넉넉해져 갔다. 시원하게 양념에 버무린 막국수까지 젓가락으로 둘둘 말아 입에 넣으니 그 맛이 입안에서 퍼지며 시원해졌다. 가게의 주인은 우리에게 소설가 김유정에 대해 잠시 얘기를 해줬다. 그는 마을에서 잘 사는 집에 살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비록 단명한 것이 안타깝지만 그의 작품들은 교과서에까지 실려 우리에게 생생하게 살아있다.
닭갈비도 먹고 마을을 산책하니 소설 <봄봄>에서 장인과 예비사위의 몸싸움하던 장면과 얄밉게 아버지 편을 드는 점순이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소설의 배경이 된 동네에 가서 보니 어떻게 해서 그 소설이 탄생되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점순이’와 ‘나’의 이야기도 그곳에서는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 있었다.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조심스럽게 애정을 표현하는 점순이와 그런 그녀를 미쳤다고 생각하는 눈치 없는 ‘나’의 둔감함을 익살스럽게 나타내어 소설을 보는 사람들이 절로 웃게 된다.
맛있는 닭갈비와 꾸밈없이 소박한 느낌의 평화로운 산골마을 여행을 하고 나니 춘천이 더욱 정겹게 느껴졌다. 다음에는 다른 계절에 가서 또 다른 정취를 느끼고 돌아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