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네이비 글라스 Feb 24. 2021

아버지의 이름표

일상 속 감상

 예전부터 아버지가 가끔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중에 한 가지는 아버지가 자신의 모든 물건에 이름을 써 놓는다는 점이었다. 노트, 펜, 가방, 무선충전기, 모자, 옷, 차에까지 자신의 이니셜, 전화번호, 이름 등으로 표시를 반드시 해 두었다. 

 십 년도 훨씬 전에 우리 가족은 해외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라 사진을 찍으려면 디지털카메라를 가져가서 찍어야 했었다. 당시 아버지는 디지털카메라에 자신의 이름을 견출지에 써서 붙였고, 충전기에도 똑같이 했다. 그렇게 해서 가져간 디지털카메라로 한참을 찍었다. 그러다 배터리를 다 썼다. 가져간 충전기로 꽂았지만, 그 충전기는 다른 기계의 충전기를 잘못 가져간 것이었다. 열흘간의 일정 중에 겨우 하루 만에 방전된 카메라를 허무하게 바라보다 결국 현지에서 일회용 카메라를 구입해 아껴서 한 장씩 찍게 된 일도 있었다. 이렇게 평소에 아버지는 철저하고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을 강조해오다가 정작 필요할 때는 실수를 하고 마는 바람에 일을 그르치게 될 때가 종종 있어서 엄마는 답답해했다. 최근 구입한 필기구에도 역시나 아버지는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그 모습을 보고 그만 나는 무심코 엄마의 얼굴을 봤다. 그러자 엄마와 나는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웃음 속에는 ‘아버지가 또 그러시는구나.’ 하는 표정이 들어있었다.      

 얼마 전 티브이 예능프로그램을 보는데 한 연예인이 자신이 군 복무 시절에 머물던 부대 앞에 가서 기념사진도 찍고 그 시절을 추억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러면서 그는 부대 근처에 있는 가게에 들어가 군용품을 구경하고 구입을 했다. 그 가게 주인은 손님이 구입한 모든 물건에 손님의 이름을 새겨주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주인은 능숙하게 이름을 새기는 재봉틀에 가져가 순식간에 군용 모자에 이름을 박아주었다. 그러면서 그 연예인은 추억을 떠올리며 

 “그래, 군대에서는 모두 똑같이 생긴 물건을 쓰니까 자기 이름 새기는 게 필수지. 맞다. 그때 그랬지.”

 하고 웃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사실 나는 집에서 쓰는 물건들은 서로 다르게 생겨서 섞일 일도 없는데 왜 그가 작은 물건 하나에까지 이름을 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그 행동을 우스꽝스럽게 여길 때도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육군 부대에서 군 복무를 3년간 하고 제대를 했기에 아마 젊은 시절 그곳에서부터 이 습관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그의 행동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공감한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