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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슈 Apr 04. 2022

잠이 안 오는 밤 01

그때 만났었던 남자 이야기 (첫사랑 편)

잠이 안 오는 밤에 풀어놓을 이야기는 사랑이야기일 뿐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 그 감정이 사랑이었음을 느꼈을까 싶지도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그러한 감정들을 사랑이라고 느꼈으니 사랑 이야기라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첫번째 남자의 특징 : 미국시민이기는 하나 영어는 전혀 못했다. 엄청난 커리어우먼 엄마 밑에서 자랐지만 배운 것은 없었던 소년가장. 미국에서 태어나기만 했지 평생을 한국에서 살았던 한국남자. 또한 미성년자 성착취범이자 다수의 아동 성착취 영상과 불법 촬영물 소유자.


내가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느꼈던 나이는 열다섯 살의 이야기였다.

막 중학교 삼학년 진급을 앞두고 마주한 고등학생 동네 오빠의 매력은 가히 좋아하던 아이돌을 뛰어넘을 정도였다.

키 178에 멋진 교복을 입은 그 오빠는 어린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그 오빠는 나의 첫사랑으로, 연애라는 것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경험하게 해 주었다.

그 나이 아이들이 다들 그렇듯, 그 오빠는 멋있었고 영원을 약속하고 싶을 정도로 괜찮았다.

영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결혼이나 평생 함께하기 따위의 것들이 아닐까.


그 오빠는 수능 성적이 좋지 않아 재수학원에 가야 했고, 나는 그대로 중학교 졸업반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이민을 생각했었고, 실제로 그 나라에 집을 보러 가기도, 부모님 사업체를 보러 가기도 했었다.

실제로 나의 설득은 부모님께 먹혔고,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가족은 한국을 떠나지 않았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 오빠를 한국에 두고 떠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서로 영원을 맹세한 것도 더더욱 아닌 시점에서.

부모님께는 이민 가기 싫다고 떼를 쓰고, 내가 좋아했던 그 오빠에게는 막무가내로 메일을 적었던 기억이 난다. 중딩이 뭘 안다고 그런 메일을 적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오빠는 내 메일에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되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쯤 나에게 연락을 했다.


같이 도서관에 가자고.


꿈만 꿨었던 오빠와의 데이트를 앞두고 엄마 옷을 훔쳐 입을 궁리도 했었던 것 같다.

그날 처음으로 남산 도서관에 갔었고, 도서관 식당에서 돈가스를 함께 먹었던 기억이 난다.

여느 연애물과 다름없이 우리는 도서관에 가서 손도 잡고 책도 보는 척하며 서로를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크리스마스 이브날 우리의 데이트는 싱겁게 끝나는 듯했으나 나보다 훨씬 먼저 성인이 되어버린 그 오빠는 싱겁지 않았다.

눈이 살짝 오던 그날,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차갑고 따뜻하게 첫키스를 했다.


그 당시 막 고딩이 되던 소녀에게는 첫키스라는 거대한 경험은 상상보다 훨씬 거대한 사건이었다.

그 오빠는 어린 나에게, 앞으로 8키로만 빼면 나랑 사귀어주겠다고 말했다.

정말 텍스트 그대로 나에게 말했다.


"뚱뚱해서 사귀고 싶지 않다. 아직은 아니야. 살 빼면 예뻐해줄게"



지금의 나는 어디서 외모 지적질이냐며 펄펄 뛰겠지만, 그 당시는 그런 개념조차 없었기에

오빠의 사랑을 쟁취하겠다는 일념으로 한 달에 8키로, 그다음 다달이 1키로씩을 감량하며 뚱뚱에서 마름으로 진입을 성공했다.

그리고 우리는 나름 순조롭게 데이트를 하고 연애를 했었다.

1주년 기념과 오빠의 3수(..)가 끝난 기념으로 커플링도 맞췄고 같이 롯데월드도 갔으며

정말 청춘 연애물에 나오는 것은 다 해본 듯하다.


그러나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되는 연애였다면.. 글을 쓸 일도 없을지 모르겠다.

딱히 문제점이 없었다면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는 미성년 여성을 선망했으며, 실제로 불법 촬영물을 즐겨봤었고.. 화가 나면 수많은 욕을 퍼붓는 사람이었다. 맞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했던 욕설의 수위는 정말 어마 무시하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지금은 평범하게 사는 듯 하나... 전혀 평범하지 않던 인간이었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데이트 폭력이나 불법 촬영물에 대하여 가르쳐주지 않았고, 어떤 것이 잘못되고 있는지 알려주지도 배우지도 못했으니 나는 그가 내 인생 마지막 남자라고 생각했었다.

어린 나는 그를 위해 물심양면 서포트했으며,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지만...

그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같은 과 언니랑 바람이 나서 헤어졌다.

헤어짐의 열쇠는 내가 쥐고 열어버린 후에 잔뜩 후회한 것은 여담이겠지.


이때부터였을까.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는 엄청난 교훈이.. 나의 연애담에 필패 요소가 된다는 것이...

헤어지고도 몇 달이나 그의 싸이월드를 염탐하고 구글링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첫사랑의 엔딩을 바꾸어보자 했었던 나의 기억은 지금에 와서야

미성년 성착취에 찌들었고, 더불어 불법 촬영물을 즐겨보던 범죄자를 좋아했었던 철없는 시절로 정의되었다.


그와의 이야기를 십 년 넘게 곱씹으면서

그를 사랑했을 때 내가 생각했던 사랑이라는 감정 또한 돌아보게 되었는데,

그때 어린 내가 생각했었던 사랑은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며 그를 위해 헌신하고, 돌아오지 않는 사랑을 갈구하면서 돌려받을 수 없어도 괜찮아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오늘은 그 당시 애처롭게 사랑을 갈구했었던 나를 위로해주며 남자 보는 눈을 더 키웠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밤으로 잠에 들 수 없을 것 같다.



*딱히 만났던 남자들을 특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과거 남자들의 국적을 포함하여 이야기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유를 물으신다면, 경험과 통계에서 개인사를 바라보았고 이 땅의 여성들에게 공유하고 싶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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