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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슈 May 19. 2022

잠이 안 오는 밤 04

그때 만났었던 남자 이야기 (한국 연하남 편)

잠이 안 오는 밤에 풀어놓을 이야기는 사랑이야기일 뿐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 그 감정이 사랑이었음을 느꼈을까 싶지도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그러한 감정들을 사랑이라고 느꼈으니 사랑 이야기라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네 번째 남자의 특징 : 한국어가 아주 유창한 대구에서 자란 한국 남자. 그냥 그랬고 2살 연하였다. 잘해주기는 했으나 한국 남성 특유의 남성성이 진하며 개념녀를 좋아했음. 개드립과 디시 헤비유저.


지난 연애에서 느꼈던 언어의 벽을 결국 넘지 못했고, 남자는 어차피 비슷하니 껍데기가 멀쩡한 남자를 만나라는 외할머니 지론에 의하여 늦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잘생긴 연하남을 만나게 되었다.

시작은 별 거 없었다.


그냥 놀고 싶었으나, 유교 보이인 건지 책임감이 막중한 건지 사귀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에 사귀었다(...)


처음에는 한국어가 유창한 한국 남자라서 편했다. 이것저것 시키기도 편했고 재밌었다. 그러나 재미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없었다. 하지만 역시나 한국인이라서 그랬을까.

아는 후배가 여자 친구가 생리를 안 한다고 하여, 아는 정보를 알려줬더니...

그게 한국인 연하남 귀에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둘이 주먹다짐을 하고... 연하남은 나에게 큰소리치며 말했다.


나만 알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니야? 내가 이해해준다고!


그 당시에 그의 말은 너무 달콤했으며 세상 모든 책임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았으나, 금기의 페미니즘을 알게 된 이후로 그가 뱉은 문장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으며 헛웃음을 유발했다. 이것이 우리의 이별의 시발점이었다

내 몸의 대한 권리를 되찾겠다는 여성 동지에게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무엇이 나쁜 것일까? 대체 둘이 주먹다짐은 왜 한 거지? 정답은.... 자신의 여자 친구가 문란한 여성이라는 정보가 새 나갈까 봐 였다!


약 2년간 연하남과 만나면서 결혼에 대해 많이 생각했으며, 대학원 진학의 불씨가 되었다.

어느 한국 남성과 다르지 않게 그는 나의 대학원 진학에 대하여 부정적인 의견을 늘어놓았고....


여자가 가방끈 길면 뭐하냐? 어차피 애 낳으면 퇴사인데? 하지만 누나는 나 제대할 때 취직해서 얼른 돈 벌어놔! 누나 돈으로 결혼하자!



라는 말을.. 정말 군대 가기 하루 전까지 앵무새처럼 늘어놓았다.

아직 모르는 아이 같은 생각이긴 하지만 우리의 이별을 앞당긴 건 그 아이의 어머님이었다.


나는 한국에 가족이 없었기에 한국에 가는 것은 여행 삼아 가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데이트하고 싶다고 징징거리는 그 남자를 위해 스케줄 맞춰 티켓팅도 다 하고 에어비앤비 예약도 했는데... 서울로 떠나기 하루 전에 전화로 그 아이는 징징거렸다.


놀랍게도........


우리 엄마가, 내가 엄마보다 누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싫대. 한국 떠나기 하루 전날 서울 올라갈게.


페미니즘의 ㅍ정도는 알고 있었던 나였기에 그따위로 굴 거면 니 엄마랑 영원히 살라고 내뱉었고 그 아이는 묵묵히 잡아놓은 일정을 따라줬다.

하지만 어머님의 질투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질투일까 아들에 대한 무한 사랑일까 고개가 갸웃거리게 된다.)


그 아이가 한국 남자라면 해결해야 할 병역의 의무를 해결하기 위해 훈련소에 입소한 날이었다.

그 아이는 한국에서 입소 준비를 하고 있겠지만,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학교 수업 중이었고 매일 과제와 수업에 찌들어 살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미친 듯이 울리는 카톡 소리에 몰래 확인을 해보니 어머님으로 온 사진 약 70여 장.


우리 아들 자는 곳!
우리 아들 씻는 곳!
우리 아들 쉬는 곳!


이라는 캡션과 함께 도착한 군시설 사진들...


확신했다. 빨리 헤어져야지. 실제로 이 사진을 받고 한 달 뒤에 헤어짐을 통보했다.

그 아이는 이별 후에 어머님을 통해  나에게 택배를 보냈는데, 분명 아이는 나에게 줄 편지 몇 장을 넣었다고 했다. 비싼 EMS로 보낸 택배이기에 열어보았더니 편지는커녕 이상한 소스 같은 잡동사니만 잔뜩 들어있었고, 전화로 확인해본 결과 어머님께서(....) 편지만 골라 빼시고 이상한 것을 채워 보내신 것이었다.

너무 충격적이었고 헤어진 뒤에 알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었지만, 그녀의 기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헤어진 뒤에도 나에게 끊임없이 연락하셔서 우리 아들이 힘드니 다시 만나 달라고 재회를 종용하셨고

두 시간은 족히 넘는 통화가 반복되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약 세 번 정도의 통화가 이루어지고 그녀에게 말하면 안 되는 말을 해버렸다.


우리 아들이 힘드시다구요? 저도 엄마 있어요. 우리 엄마도 우리 딸 힘든 거 싫어하세요. 아주머니 그만 전화하시고 당신 아들 알아서 잘 챙겨주세요.


확실히 충격요법은 효과가 있었고 그 뒤로 다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이가 복학을 하고 나서인지, 군생활 중에서인지...

대학 내에서 나를 문란하고 페미니즘에 미친 여자로 만들어놨기에.. 다시는 한국인과 상종할 수 없어졌다.


추가로 나는 나름 유교걸로 그녀에게도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선물했는데, 그녀는 자신의 아들에게 내가 불쌍하다고 발언했다. 얼마나 못 먹고 자랐기에 이러한 차별을 당한 이야기를 공감하고 마음 아파하니라고......

충격적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잘 사는 동네에서 평생을 보냈고, 꽤나 유복하게 살았던 평생이었는데.........

모르는 아줌마에게 그런 취급을 당했다니....

현재에는 그러한 그녀도 가부장제의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기도하지만 그 당시에는 속으로 쌍욕을 했었던 것 같다.



모든 연애에는 교훈이 있다.

이번 연애에 있어서 교훈은, 한국 남자를 만나면서 더 이상 고생을 하지 말자였다.

너무 지겨웠고 내 통장과 시간이 불쌍했다.

그리고 한국 시월드의 존재 유무를 확인했다..

또한 절대 우리 엄마 불쌍해 우리 엄마 도와주고 싶어 (내손 말고 니손으로)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기로 다짐했다.




*딱히 만났던 남자들을 특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과거 남자들의 국적을 포함하여 이야기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유를 물으신다면, 경험과 통계에서 개인사를 바라보았고 이 땅의 여성들에게 공유하고 싶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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