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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슈 Apr 05. 2022

잠이 안 오는 밤 03

그때 만났었던 남자 이야기 (마카오 연하남 편)

잠이 안 오는 밤에 풀어놓을 이야기는 사랑이야기일 뿐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 그 감정이 사랑이었음을 느꼈을까 싶지도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그러한 감정들을 사랑이라고 느꼈으니 사랑 이야기라고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세 번째 남자의 특징 : 한국어라고는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밖에 할 수 없었던 마카오 국적 남자. 유복했고 정말 탐나는 엄마를 갖고 있었음. 연하였고 과하게 잘해줬음. 전남친이자 현 남편의 친구이기도 함(...)


개쓰레기 같은 놈에게 질려버렸던 나는 몸이 멀어졌을 때 정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러던 와중 어학원에 새로 입학한 나름 잘생긴 남자가 내 눈에 띄었다.

한국 여자 프리미엄을 갖고 있었던 나는 어학원 유일의 한국 여자로서...

그 남자랑 꼭 한 번 놀아봐야겠다는 굳은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불과 한 달만에 나의 데이트 상대가 되었고 우리는 꽤 진하게 만났었다.

나의 연애사 중 가장 짧은 기간의 그였지만, 나쁘게 헤어지지 않았던 기억 덕분인지

현 남편(...)의 친구라는 점에서인지 아직도 가끔 안부를 묻고 셋이 놀러 가기도 한다.


그 당시 개쓰레기 같은 놈과 헤어지고 있었다부터 시작하여, 나는 연하남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개쓰레기와의 정리가 얼추 끝났다고 생각하여, 소셜 네트워크에 럽스타그램을 올렸었는데..

개쓰레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만나고 있는 애는 너 그러고 산 거 아냐? 꼭 말해라. 누가 너 같은 걸 만나주냐? 정신 차려라"



나는 남자의 사랑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인간이었지만 아니면 말고 라는 마음으로 도박을 했다.

연하남에게 나의 원죄를 털어놓은 것이다.

마구 화를 내며 나에게 전 남자 친구들과 같은 쌍욕을 할 줄 알았었는데 연하남의 반응은 이색적이었다.

정말 이색적이었고, 한국에서는 경험해볼 수 없었던 대답이었다.


"뭐야. 개쓰레기가 나한테 말하래? 별 것도 아닌 걸로 난리네. 야 신경 쓰지 마. 다 그러고 살아."


내가 생각했던 반응과는 전혀 달랐으며 마치 내일 뭐 먹고 싶어? 따위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들은 듯한 사람처럼 반응했다. 이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나의 원죄가 마치 리트머스지처럼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아이의 반응에 감동을 받아서 왜 개쓰레기와 못 헤어지고 아직도 힘든지에 대하여 털어놓았다.

그의 반응은 명쾌했고 단순했다.


"그게 정말 사랑이라고 생각해? 너는 충분히 가치 있고 인생을 즐겨야 해"



라고 대답하며 나에게 차분하게 왜 자신이 놀라지 않았었는지, 그게 왜 지옥에 갈 사건이 아닌지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연하남과 만난 뒤로 피임약 복용을 끊었었다. 콘돔을 사용해달라고 애걸복걸하지도 않았었다. 나에게 피임은 상식이라며, 실제로 중고등학교 때 상식 (실제 과목이름이 상식이다..) 이라는 과목에서 여러 번 배웠다고 이야기 하며, 몇 번이나 강조했었던 아이였으니까.

그리고 고해성사로 울음 범벅이 되어있는 나에게 조용히 권했다.


"내가 잘은 모르겠지만, 페미니즘이라는 게 있어. 그게 너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그의 한 마디는 나를 개쓰레기와의 지옥에서 구원해줬고 (현재로는 전혀 구원이라고 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쨌든 현인을 만났다라고는 생각한다.) 내 인생의 방향을 틀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와는 여자 친구 남자 친구 사이로는 한두 달을, 파트너로 서너 달을 지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가 살고 있던 도시로, 무려 그 아이가 내주는 돈(!)으로 여행을 다녀왔고 그것이 내 인생 처음의 커플 해외여행이었다. 그는 나를 언제나 배려했고 힘 쓰는 일은 물론, 사소한 것 하나까지 다 신경을 써주었다. 물론 나에게 욕도 하지 않았고 단 한 번도 손찌검을 하지 않았다. 불법 촬영물도 전혀 보지 않았다.


달달한 스윗남과 계속해서 만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달달 스윗남도 문제점이 다분히 있었다. 무결점한 남자는 없다는 것으로 내 지론이 굳혀져갔다.

우리는 개같이 싸우고 풀고를 반복하다, 데이팅을 끝냈고 시간이 흐른 후 친구 사이로 돌아갔다.


이 연애에서 얻은 교훈은

여자의 인생에서 무해한 남자는 없다 라는 것이었다.

또한 덤으로 사귀지 않아도, 내 마음을 모두 주지 않아도 충분히 남자와 재밌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딱히 만났던 남자들을 특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과거 남자들의 국적을 포함하여 이야기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유를 물으신다면, 경험과 통계에서 개인사를 바라보았고 이 땅의 여성들에게 공유하고 싶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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