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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원 Nov 04. 2023

오늘도 지지고 볶는 중입니다.

' 무탈하게 잘 보내고 와서 아이들과 저녁시간 편안하게 보내자. 오늘은 꼭! '

출근길 운전하면서 속으로 되뇐다. 일하다 느낀 감정들을 집에까지 가지고 돌아와 죄 없는 아이들에게 짜증을 부리는 일이 부쩍 늘었다. 잠든 아이들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기도 여러 번. 마음 단단히 먹고 교문을 통과한다.


무난하고 성실하게 학창 시절을 보낸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지도하기 힘든 유형은 일단 들으려 하지 않고 도끼눈부터 뜨는 반항아가 아닐까?  눈앞에서 밤새 준비해 온 학습지를 쫙쫙 찢고, 수업 시간에 갑자기 자기들끼리 욕하고 싸우기도 하고, 책상 위에 교과서가 아닌 화장품을 늘어놓고 속눈썹을 정성스레 한 올 한 올 말아 올리고 있는. 이 외에 여러 가지 일들이 뇌리를 스친다. 아직도 깊숙한 저곳엔 까만 멍이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다. 초임 때는 이런 일이 있어도 다 내 무능인 것 같아서 말도 못 하고 끙끙 앓았다. 이후로 반항하는 학생들만 없다면 난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참 희한하다. 최근 1-2년간 양상의 변화가 감지되었다.

반항하는 학생이 없다. 그런데 왜 더 힘들지?  교권침해 심의건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올해 중2를 맡고 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인가 싶을 정도로 기본 태도가 안 잡혀 있다. (혹자는 코로나 원격수업 기간에 방치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업 시작종이 울렸건만 교실로 가는 복도에는 아직도 쉬는 시간인 듯 자유분방한 영혼들이 보인다. 꼭 수업 시작 직후에 화장실을 가겠다, 목이 너무 마르다고 떼를 쓰는 무리가 있다. 사물함 앞에서 느긋하게 교과서를 찾는 요 녀석은 오늘도 여전하다. 장난치며 돌아다니는 학생들까지. 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바로 하고, 수업을 시작하기까지 적어도 10분은 걸린다. 겨우 잡힌 수업 분위기를 누군가 바사삭 깬다. 그의 이름을 불러 제지한다. 기분 좋으면 헤헤 거리며 말로만 '죄송합니다' 하던 아이는  '쳇!' 하며 드러누워버린다. 예전처럼 살기등등한 눈빛을 하며 반항하는 학생들은 없지만 전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든다. 이 행동을 그냥 넘어갈 수도 없고, 열심히 하는 학생들에게 드는 미안함도 무시할 수 없다. 잠시 곤란한 고민을 한다. 잘못된 행동은 전염이 쉽다. 태도가 안 좋은 학생들이 늘어나고 그 반은 수업하기 힘든 반으로 입에 오르내린다. 틈틈이 읽고 있는 [도둑맞은 집중력]에 의하면 다시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로 돌아오는 데 평균 23분이 걸린다지만 분필과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이제 올해도 두 달밖에 안 남았네. 안 되겠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잡아야겠다.




"얘들아! 눈 감아보자!"

단 5초도 가만히 있기를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보인다. 그 와중에 실눈을 뜨고 장난을 하고 킥킥 거린다. 차분한 분위기를 애써 조성해 본다.


" 난 새 학기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어. 올해 만날 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 3월 2주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수백 명의 이름과 얼굴을 매치할 수 있게 돼. 내 이름도 모르는 샘이 이래라저래라 하면 난 싫을 것 같거든. 게다가 내 과목은 강의식으로 해서는 전혀 재미도 효과도 없어. 3월 첫 시간부터 지금까지 수업 후 15분 정도 할애해서 1:1 피드백을 해오고 있잖아. 그래서 너희들의 미세한 변화를 잘 발견해. 대답은커녕 목소리도 들릴 듯 말 듯 작았던 A가 이제 웃기도 하고, 목소리도 커졌구나. B는 지난 시간까지 이 단어의 4성을 3성으로 발음했는데, 오늘은 정확하게 잘하네. 직접 말한 적은 없지만, 이러한 일들은 너희들에 대한 나의 정성이고 노력이고 예의야. 한 명 한 명을 귀하게 대하겠다는 마음 가짐. 얘들아, 학교에서 단체 생활을 하면서 지켜야 할 것들이 있어. 이것들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할 때 선생님들께서 말씀하실거야. 잘못에 대해 지적을 받으면 얼굴에 수치, 민망, 반성의 기미가 어리거나 다음부터는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해야 하는데 요즘 내가 지켜보는 너희들은 그렇지 않아.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을뿐더러 심지어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듯 해맑게 웃으며 대충 지나가려고 해. 지도가 반복되면 삐치거나 그 수업 시간에 참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하기도 하고.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우리 다시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 보자. 수업 종이 치고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면 일단 자리에 앉기, 수업 시간에 큰 소리로 개인적인 대화하지 않기. 욕하지 않기. 이 세 가지부터 시작해 보는 거야. "

에휴, 잔소리가 필요 없는 모범생들이 끄덕끄덕하고 있고, 들었으면 하는 애들은 관심이 없다.

 몇 명에게나 진심이 가 닿았을까? 씁쓸함을 뒤로하고 교실을 나오는데 유명한 까불이 남학생 C가 90도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노트북과 짐을 들어주겠다며 따라왔다.


" 선생님, 아까 선생님 말씀을 들으며 생각을 좀 해봤어요. 선생님이 그렇게 노력을 많이 하고 계셨는데 제가 많이 죄송했어요. "

그 마음이 고마워 초코바 하나를 건넸더니, 손사래를 친다. (노트북 가방에 있는 사탕 하나도 지나치지 않고 달라고 졸라댔던 C가 아니던가.)

" 말 잘 듣고 공부 잘하는 애들 주세요. 전 못 받아요. " C의 말이 갑자기 훅 아파왔다.

" C야, 오늘 선생님이 한 말은 공부와 상관없어. 선생님은 C 네가 장난은 너무 심하지만, 인성이 좋아 예쁘더라. 넌 운동 좋아하잖아. 좋아하는 일 하면서 그 분야에 관심 가지고 공부하면 돼. "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아 C의 어깨를 두드리며 재촉한다.


" 다음 시간 교과서 준비해 둬야지! 어서 가. "

위의 글과 관련이 없는 사진. 힘을 주는 고마운 학생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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