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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원 Dec 09. 2023

한 해 돌아보기

2023년 소회(所懷)

 겨울이 깊어가고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간 것 같아도 찬찬히 생각해 보면 한 해동안 다양한 일이 있었다. 그 안에서 웃고 울었던 일들을 생각하며 만감이 교차하는 시기가 바로 12월이 아닌가 싶다.


 올해는 좋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시작했다. 하루도 힘든데 일주일에 이틀이나 겸임을 나가야 했고, 학교에서는 겸임 교사에 대한 배려는커녕 수업 시수를 한 시간 더 늘려 놓았다. 2월 다이어리에는 고사성어 웹툰 제작 프로젝트 수업을 연구하면서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끄적인 흔적이 있었다. 혹시 올해 말에 겸임 생활을 잘 보내고 나서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하며 여유로운 웃음을 지을 날이 있을까? 설마...





 3월 2일. 이런. 개학날부터 겸임 학교로 출근이라니. 극내향적 성격의 소유자로서 보따리장수처럼 낯선 교무실에 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를 하고 주섬주섬 노트북을 연결했다. 앗, 연결이 안 된다. 다들 바쁜 개학날이기에 타 학교에서 온 겸임 교사에게 친절히 안내해 줄 여유는 없어 보인다. IP주소 부여, 쿨 메신저와 프린터 연결 요청을 하러 담당자를 한참 찾아다녔다. 시간이 흐르고 늘 따로 눈 마주치며 인사해 주시는 선생님이 생겼고 일주일에 이틀이지만 학생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착실히 라포를 형성해 갔다. 겸임은 가는 날 수업을 몰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연강을 한다. 지루하지 않게 수업 내용을 안배하고, 중간에 활동이나 영상 수업도 계획한다. 걱정과는 달리 이 학생들은 시골에서 시작했던 신규 시절 순박한 학생들을 떠올리게 했다. 모든 학생들이 맑고 따뜻한 눈빛을 보내주었고, 목청이 터져라 발음을 따라 했다. 수업이 개운하게 잘 이루어졌을 때 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취와 기쁨을 느낀다. 이거면 되었다. 이 사랑스러운 학생들에게 한정된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다. 이미 공부를 포기한 학생들에게 중국어는 모두 시작점이 같으니 누구든지 잘할 수 있다. 선생님이 쉽게 가르쳐줄 테니까 포기하지 말고 잘 따라오라고 다독였다.  한 명 한 명 각자의 상황에 맞게 자기소개 대본을 만들었고, 정확한 발음으로 읽기 연습을 하고, 가장 마지막으로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게 연습했다.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훌륭한 중국어 자기소개 실력이 완성되었다. 일주일 전 일대일로 말하기 수행평가를 했다. 그동안의 고마움과 칭찬도 마음껏 전하고 싶어서 넉넉하게 두 시간을 계획했다. 모두 완벽하게 말하기 연습을 해 왔고, 마음이 몽글몽글 감동이 밀려왔다. 1년 동안 지켜본 한 명 한 명의 성장 과정을 이야기해 주었다. 진심을 담은 아낌없는 칭찬도 함께. 사춘기 조용한 몇몇의 학생들은 단답형으로 한 마디 '네'하고 들어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눈빛이 반짝이고, 입꼬리가 실룩실룩한다. 환호성을 지르며 연신 '감사합니다'를 외치는 학생들도 있다. 쉬는 시간마다 학생들은 교무실에 와서 말동무가 되어 주었고 너무 조용해서 말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한 여학생은 2학기 중반을 지나던 어느 날, 손편지와 사탕을 종류별로 담아 예쁘게 포장한 상자를 내밀었다. 또 한 학생은 수업이 끝나고 본교로 복귀할 때 꼭 주차장까지 배웅해 준다. 다음 주 2차 지필 평가를 보고, 또 2주가 흐르면 이 학생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게 될 것이다. 교사 생활에 잊지 못할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해 준 U중학교 학생들에게 애정을 듬뿍 담아 행복을 빈다.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가 되면 좋을 텐데, 정말 옛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지.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으니. 내년엔 겸임을 안 나가도 되니 담임을 맡아 평화로운 만기(한 학교에서 4년 동안 근무, 마지막 4년 차) 생활을 누려야지 했는데 이런. 갑자기 중국어반 한문반 학생들을 섞어서 반을 편성한다고 한다. 당사자들과의 충분한 협의도 없이 무슨 근거로 이렇게 반 편성을 하면 생활지도가 더 편할 거라 단정하는 것일까.


 행복한 일은 물론 잘 풀리지 않았던 일들도 무수히 많았던 한 해를 보내며, 괴롭지만 현실을 직시해보려 한다. 일이 잘 안 풀렸다고 해서 올해가 좋은 해가 아니었나? 그건 아니다. 일이 주인공이 아니라 그 일을 겪어나가며 생각하고 성장하는 나 자신이 주인공이니까. 이 과정을 통해 무엇이 소중한지 알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양보할 수 없을 만큼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할 때 즐겁고, 슬플 때는 언제인지 등.


  이렇게 나를 키운 2023년, 내게 소중한 한 해였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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