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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Nov 06. 2024

나쁜 것에 대한 접근의 용이성이
만들어 가는 나쁜 사회

접근이 쉬우면 많이 하고, 접근이 어려우면 안하게 되는 인간 심리

영화 『미스 슬로운』의 주인공 슬로운은 최고의 로비스트다.

영화상에서 그녀는 총기 규제 관련 법률 제정에 찬성하면서

이 법률 제정을 막고자 하는 거대한 세력에 맞선다.


그녀의 주장은 단순하다.

총을 소지하고 싶은 사람이
총을 쉽게 가질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충동적으로 총을 소지하고 싶어진 사람이든

범죄 목적으로 총을 소지하고 싶어진 사람이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총을 소지하고 싶은 사람이든,

그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을 죽일 수 있고,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도구인 총은

소유하기가 힘들게 만들어야 한다.


슬로운 주장에 대한 찬반 입장을 떠나,

나는 그녀가 매우 심리학적으로

총기 소지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싶다.

또한 영화가 법의 제정과 같은 문제도

결국 심리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측면에 집중하고 싶다.


특별히 미스 슬로운에서 강조하고 있는

심리적 문제는 '접근성'이다.

인간은 어떤 것에 접근하기 쉬운지 아닌지에 따라

그것과 관련된 행동의 빈도가 달라진다.

집 앞에 도서관이 있어서

책에 접근하기 쉬운 사람들은 독서를 많이 하게 되지만,

버스타고 2시간을 가야 도서관이 있는 사람은

독서 빈도가 줄어들거나, 0에 가까워 진다.


술집이 집 앞에 있거나

편의점이 집 앞에 바로 있으면,

술 소비량이 증가한다.

그런데 술집에 가거나, 술을 사기 위해서는

차로 2시간을 가야한다면, 술 소비량이 줄어든다.


결제가 쉬워질수록 과소비가 늘어난다.

결제가 어려울수록 과소비가 준다.

저축에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

저축이 늘지만,

저축에 쉽게 접근할 수 없으면,

저축이 준다.

대출에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

대출이 늘지만,

대출에 접근하기 힘들게 하면,

대출이 줄고, 재정 건전성이 는다.


미스 슬로운이 총기 구입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 바로 이 접근성이다.

총기를 쉽게 구매할 수 있으면,

어디서나 총기 구매에 접근할 수 있으면,

사게 되는 빈도가 늘고, 사는 사람도 많아진다.

그런데 총기 구입을 아무나 못하게 한다면,

어떤 자격을 갖추게 하거나,

시험을 통과하게 하거나,

총기 구입 시장과 구입 루트를 좁힌다면,

총기 사용 허가를 6개월 마다 갱신하게 한다면,

총을 사용하는 것을 아주 불편하게 만들고,

귀찮게 만들고,

총을 소유하느니 그냥 안 하고 말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면,

이렇게 총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들면,

총을 구입하는 사람도 줄고,

자연스럽게 총기 소지자도 줄고,

총기 오발에 인한 가족 간 사망 사건이나,

사이코패스에 의한 총기 난사사건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담배에 대해서는 비슷한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담배가 나쁘다는 것은 모든 정부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담배를 피지 말라고 공익광고를 한다.

그러나 정작 담배에 접근하는 것을 힘들게 하진 않는다.

이런 공익광고는 생색내기에 불과하고,

보여주기 식에 불과하다.

정부가 정말 국민 건강을 생각한다면,

담배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힘들게 헤야 한다.

마약류처럼 취급해야 하는 것이다.

담배를 구매하기 위해 2시간씩 이동하게 만들고,

담배를 구매하려면 2시간을 기다리게 만들고,

담배를 구매할 때마다 서류를 잔뜩 내게 만들고,

담배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계속 건강 검진을 받게 만들고,

담배를 구매하기 위해 수많은 역경과 불편을 감수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에이씨. 더러워서 안 피고 말지.'라고 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담배를 이렇게까지 막는 정부를

적어도 우리나라 현대사에서는 본적이 없다.

최근 영국에서는 점진적으로 담배를 살 수 있는 연령을 올리면서

향후에는 흡연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률을 통과시켰지만,

우리나라는 정치인들은 이런 법안을 올릴 생각조차 안 하고 있다.


술이 고령화 사회에서 치매의 원인이라는 것이

속속 확인되고 있지만,

술에 대한 접근도 갈수록 쉬워지면 쉬워졌지,

술을 사는 것이 불편해지거나,

힘들어지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

심지어 도수가 강한 폭탄주도

쉽게 구해 먹을 수 있게 만들어서

자기 스스로 폭탄주를 만드는

불편함까지도 제거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결국 건강하게 살고 싶다면,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개개인이 스스로의 심리적 환경,

자기 주변의 심리적 접근성을 제한하는 수밖에 없다.

과소비를 줄이기 위해

카드를 모두 잘라버리고, 스마트폰 결제를 다 제거해버리고,

현금을 쓰는 사람들처럼 해야 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몸에 나쁜 것,

정신에 나쁜 것에 대한 심리적 접근성을

나라에서 제한해주기 않으니,

스스로 제한하고,

스스로 불편하게 만들고,

스스로 힘들게 만들어야 한다.


마셜 골드스미스가

『트리거』라는 저서에서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당신이 환경을 통제하지 않으면,

환경이 당신을 통제할 것이다."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


국희야 너는 어느 쪽이니?


*표지 그림 출처

사진: UnsplashTetiana SHYSHK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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