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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국희 Apr 07. 2021

불행 과학에서 행복 과학으로

왜 우울증 연구자는 행복을 연구하게 되었는가

'저 사람 왜 저래?' 우리는 이런 말을 많이 듣고, 많이 한다(적어도 속으로).


이 질문은 그 사람의 정체를 묻는 철학적인 질문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한 원인을 추적한 후, 다음에 그런 행동을 할 만한 상황을 예측하기 위한 과학적 질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질문을 집중적으로 탐구했던 분야가 바로 심리학(심리 과학, Psychological Science)이다.


흥미로운 점은 '저 사람 왜 저래?'라는 심리학적 질문이 긍정적인 상황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누군가가 일을 열심히 잘하고 있다. 뭔가에 집중하고 있고, 성취를 보이고 있다. 지금 누군가가 아주 건강하고,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고, 새로운 환경에서도 차분하게 적응을 잘한다. 이렇게 뭔가 잘하고 있는 사람에게 우리는 '저 사람 왜 저래?'라고 하진 않는다.


누군가 무척 우울할 때, 누군가가 갑자기 화를 낼 때, 누군가 공격성을 드러낼 때, 누군가 엄청 흥분해서 웃다가 갑자기 흐느끼면서 울 때(무섭다), 누군가 허세가 가득하고 실제로 이룬 것은 없을 때, 누군가가 뭔가에 중독되었을 때(약물, 도박, 게임, 스마트폰 등), 그리고 누군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것이 알고 싶어 진다. 그래서 범죄심리학이 대중들의 관심을 받는 것 아니겠는가?


이처럼 사람들은 뭔가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 마이너스적인 측면을 보았을 때, 인간 심리에 관심을 가진다. 이를 전문 용어로 인간의 부정 편향(Negativity bias)이라고 부른다. 심리학에서 편향이라는 말을 쓸 때는 보통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진화적으로 그러한 성향이 발전했으며,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탑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둘째, 그래서 그런 편향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별 소용이 없다는 의미다. 셋째, 그런 편향을 연구한 심리학자 본인도 그 편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다.


부정 편향도 마찬가지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 뇌에 탑재되어 있는 시스템이고, 그래서 그런 편향이 있다는 걸 알아도 그런 편향이 쉽게 줄어들진 않으며, 심리학자 본인도 부정 편향을 가진다. 마틴 셀리그만(Martin E. P. Seligman)이라는 유명한 심리학자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사람은 현재 행복에 대해 연구하고 있지만, 이 사람의 원래 연구 주제는 행복이 아닌 '학습된 무기력'과 '우울증'이었다.


셀리그만의 연구를 잠깐 소개하면 어디선가 분명히 들어봤을 것이다. 박스가 두 개 있고, 각각의 박스에는 개가 들어 있다. 박스 바닥에는 전기 충격이 오는 패널이 깔려 있고, 개들은 언제 전기충격이 올지 모른다. 여기까지는 두 박스가 동일하다. 그런데 한 박스에는 천장에 나무토막이 걸려 있는데, 그것은 사실 전기 충격을 멈출 수 있는 레버이다. 그래서 나무토막이 있는 박스에 있는 개는 전기충격이 올 때, 나무토막을 건드리면 전기충격을 멈출 수 있다. 그런데 다른 박스에는 이 나무토막이 없다. 그 개는 전기충격이 오는 것도 모르지만, 언제 끝날 지도 모르며,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실제로 실험이 시작되었다. 두 박스에는 무작위적인 간격으로 동시에 전기 충격이 가해졌으며, 차이는 스스로 멈출 수 있는 레버가 있는지 없는지 밖에 없었다. 전기 충격이 가해진 타이밍과 시간은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레버가 있는 방과 없는 방에 동시에 전기충격이 가해졌고, 레버가 있는 방에 있는 개가 레버를 건드리면 동시에 멈췄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레버가 있는지 없는지를 제외하곤 모두 동일하다.


이렇게 몇 번을 반복한 후, 개들을 다른 박스로 옮겼다. 이번에는 정말로 두 박스 모두 동일했다. 박스는 벽을 통해 두 구획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두 구획의 넓이는 동일했다. 구획을 나누는 벽은 개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점프해서 넘어갈 수 있을 만큼 낮았다. 두 구획의 바닥에는 모두 전기 패널이 깔려 있으서 전기충격이 올 수 있다. 다행인 것은 두 구획 모두에 동시에 전기충격이 오진 않는다는 것이다. 한 구획에 전기충격이 오면, 다른 구획은 전기충격이 오지 않는다. 이 말은 한 구획에 전기충격이 올 때, 다른 구획으로 넘어가기만 하면 전기충격을 쉽게 피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험이 시작되었다. 먼저 앞서 레버가 달린 방에서 스스로 전기충격을 멈출 수 있었던 개는 예상대로 행동했다. 한 구획에 있다가 전기 충격이 오면, 다른 구획으로 훌쩍 넘어가서 쉽게 전기충격을 피했다. 그런데 레버가 없던 방에 있던 개는 뭔가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자포자기한 듯이 보였다. 한 구획에 전기충격이 오기 시작하자, 그냥 웅크리고 앉아서 그 전기충격을 받으면서 고통스러워했다. 뭔가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셀리그만은 이후 인간을 대상으로도 비슷한 연구 결과를 얻는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를 통해 셀리그만이 얻은 결과는 명확했다. 인간과 동물은 통제할 수 없는 고통과 실패를 지속적으로 경험하면, 무기력에 빠지고, 우울해진다는 것이다. 이를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고 부른다.


마틴 셀리그만(Born: August 12, 1942)


부정 편향이 있는 인간들은 환호했다. 우울증의 원인을 밝혀낸 것에 만족한 것이다. 우울한 사람들을 보고, '저 사람 왜 저래?'라고 질문을 던졌더니, 셀리그만이 '그건 학습된 무기력 때문이야'라고 답해준 것이다. 자. 그런데 이렇게 우울증의 원인을 알았으니, 이들에게 다시 '통제권'을 주면, 다양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면, 우울증이 나을까? 아쉽지만, 그런 식으로 해결이 되면, 병이 아니다. 그렇게 해결이 되었다면, 그 사람은 일시적으로 잠깐 우울해졌을 뿐이지, 우울증이라는 정신질환에 걸린 것이 아니다. 그게 안 되니까. 약물치료도 하고 상담도 하는 것이다.


셀리그만은 바로 지점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리고 다음의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울한 사람이 왜 그럴까라고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밝혀도 우울한 사람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더 중요한 건 뭘까?'


답은 분명했다. 처음부터 우울해지지 않는 것이다. 우울증에 이미 걸리면 늦는다. 그 사람이 왜 우울증이 걸렸는지 밝혀도 되돌리기에는 좀 늦었다. 더 중요한 것은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그럼 우울증에 걸리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삶의 통제권을 평상시에 적절히 유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 자신이 무기력해지지 않도록 평상시에 나 자신을 관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그 누구도 행복을 유지하는 방법, 내 삶이 무기력해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고 있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 치료되는 과정을 살펴본 것도 셀리그만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이 사람들에게 '당신의 삶의 주인은 당신 거예요. 당신은 능력이 있어요. 당신은 당신 삶을 통제할 수 있어요'라고 말해주어도 소용이 없다. 그런데 이들이 우울증 약을 먹은 후, 어느 정도 상태가 호전되면, 그때부터는 이 말이 효과가 있다. 우울할 때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먹혀들지 않던 말이, 조금 나아지니까, 약을 먹고 조금 행복 지니까 먹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 내 삶의 통제력을 적절히 유지하려고 마음을 먹기 위해서는 현재 우울한 상태여서는 안 된다. 내 삶을 관리하고 싶은 동기가 부여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어느 정도 행복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셀리그만은 1998년 미국심리학회 회장 취임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그동안의 심리학은 인간의 부정적 측면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부정 심리학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부정적 측면에 주목한다고 해서 부정적 측면에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긍정적 측면에 대해 배우고, 긍정적 습관을 익히는 것에 관심을 가질 때, 그리고 실제로 행복해질 때 부정적 측면이 제거됩니다. 찬물이 나오는 수도꼭지와 더운물이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는데, 찬물이 나오고 있는 수도꼭지를 잠근다고, 더운물이 나오는 건 아닌 것처럼요. 더운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를 틀어야 더운물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우리 심리학은 관점을 전환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긍정 심리학(positive psychology)입니다."


라고 말이다.


바로 이때가 심리학은 불행의 과학에서 행복의 과학으로 전환된 원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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