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낯선 곳에 머물다.
익숙함은 편안함의 대체어가 아니다. 그런데도 두 단어의 쓰임새가 같은 경우가 많다.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는 공간에 들어서면 한없이 편안하다. 낯선 공간에서 느끼는 익숙함에 온몸이 나른해진다. 근육이 이완되고 편안함이 느껴진다. 과연 이곳이 처음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다른 공간에 이르면 낯선 느낌에 서먹할 텐데 그렇지 않음이 이상하다. 곰곰이 이유를 생각하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내가 찾던 곳과 무언가 통했음이 기분으로 표현되었기에 그러한 것이리라.
글을 쓰다 막히고 답답하면 종종 다니지 않은 길로 걸어가 본다. 늘 다니던 길의 유혹에 넘어가 익숙함을 선택하면 결국 남는 건 제자리걸음일 뿐이다. 채우고 싶은데 쉽게 채워지지 못함은 결국 내가 가진 소재의 한계가 드러나는 반증일 테다. 이때 필요한 것은 새로움이다. 당연하지만 이 새로움은 늘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길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처음 마주하는 골목길의 구조, 흔하게 느껴지던 냉이의 억척스러운 생, 짧은 겨울 한낮의 작은 볕에 무말랭이를 말리며 허투루 허비하지 않는 우리네 이웃의 삶까지.
모든 것은 시간의 연장선에 있다.
무말랭이 한 조각을 들여다보다 고들고들한 기억에 잠시 눈을 감는다. 무와 배추 농사가 끝이 나면 배추는 김장독으로 대부분 사라지지만 무는 한겨울을 땅속에서 난다. 무를 저장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구덩이다. 구덩이 한쪽 출입구에 구멍을 뚫고 나머지는 볏짚과 흙으로 덮어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고, 공간을 채워 공기의 흐름을 최소화해 바람이 드는 것을 방지한다. 구덩이는 농가에서 즐겨 애용하는 저장 방법인데, 한겨울 아삭한 무를 맛보기 위해서는 고단하더라도 이 작업을 해둬야 한다.
잘 익은 아삭한 무를 잘게 잘라 겨울 볕을 듬뿍 먹이면 말랭이가 된다. 간장과 고춧가루를 적당히 버무려 밥상 위에 놓으면 반찬으로 제 몫을 다한다. 말린 무말랭이는 겨우내 우리 집 반찬거리 일등 공신으로 늘 한자리를 꿰찼던 존재다. 고들고들한 말랭이 끝 맛은 바다에서 태어난 진미를, 아삭한 첫맛은 잘 익은 곶감을 떠올리게 한다. 입에서 느껴지는 이런 감각은 오래도록 밑반찬으로 자리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시장에 널리고 널린 게 반찬거리이고, 밥을 대신할 식자재가 차고 넘친다. 쌀을 주식으로 하던 시대가 가고 대체재로 우리의 끼니가 바뀌고 있으니 점점 서구화된 몸과 마음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모든 것이 시간의 연장선에 있다는 사실이다. 잘못된 끼니가 결국 내 몸을 망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글쓰기란 시간을 담는 과정이다.
익숙함을 뒤로하고 낯선 길을 걸은 대가로 소재 하나가 생기고, 그럭저럭 하얀 백지가 점점 문장의 손짓과 발짓으로 채워진다. 볕에 놓아둔 무말랭이 한 조각에 어릴 적 기억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무에 관한 추억도 되새기고, 아득한 옛 시절의 가난했지만 정겨운 풍경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시간이 펼쳐놓은 무대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더라도 늘 새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할 수 있는 까닭은 어제와 오늘이 분명 다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사람들은 글쓰기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시간은 어제와 다르게 흐르고, 다녀간 흔적은 단지 장면으로만 기억되기에 하루가 너무 아쉽다. 시간이라는 무대에 나라는 배우를 세우고, 기록이라는 근사한 무대 장치로 내 목소리를 새겨두는 일은 문자가 으뜸이다. 아울러 이 모든 것을 읽고 공감해주는 훌륭한 독자가 있으니 얼마나 즐거운가? 기억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기에, 흔적으로 남기고픈 우리네 열망을 문자라는 도구를 이용해 하나의 기록으로 남겨두는 일이 필요하다.
나무는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매일 한 줌의 빛이라도 쐬어야 잎을 통해 꾸준히 생명에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한다. 빛은 시간의 다른 모습이고, 잎은 문자라는 도구와 일맥상통하여 결국 기록이라는 나이테를 만들어낸다. 위로만 성장하고 옆으로 자라지 않는 나무는 오랜 시간을 견뎌내지 못한다. 나무가 나이테를 해마다 삶의 흔적으로 기록하는 이유는 따스한 햇볕에 즐거워하고, 모진 비바람에 힘겨워하던 자신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해마다 한 올씩 자신의 몸 가장 깊숙한 곳에 새겨둠으로써 비로소 성장한 자신을 세상에 떳떳이 내보이기 위해서다. 나이는 먹지만, 나이테를 새기지 않는 나무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글쓰기는 자신의 생에 나이테를 새기는 일이다. 매일 조금씩 기록함은 자신의 과거를 현재로 되살리며, 나아가 앞으로 도래할 미래의 삶에 훌륭한 밑거름을 비축하는 일이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맞이하는 내 모습에 조금 더 당당하기 위해서라도 조금씩 자신을 문자로 표현해 보는 일은 필요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쓰지 못함은 결국 핑계라는 과거가 되어 씁쓸한 미래에 한숨만 불러올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문자로 이루어진 숲에서 사는 상상을 해본다. 숲은 문자라는 나무로 가득 채워져 있고, 문장은 산과 산이 되어 산맥을 이룬 곳에 내가 서 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행간이 놓이듯, 문장으로 이루어진 산과 산 사이에 계곡이 있어 무더운 여름 시원한 쉼터가 되고, 한겨울에도 그리 차갑지 않은 생명수가 되는 문자화된 숲에서 사는 멋진 상상을 지금도 하고 있다. 시간은 여러 형태로 담을 수 있으나, 감정까지 오롯이 타인에게 전달하는 일은 역시 글쓰기가 제격일 터, 오늘 하루의 마무리를 자신만의 문장으로 대신하는 것도 좋을 성싶다.
Written By The 한결
2020.12.30 대한민국 남해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