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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한결 Jan 12. 2021

두렵지만 처음이니까 괜찮다

누구에게나 위로와 격려는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낯설다.


성장하기 위해선 아픔이 필요하다지만 때론 좌절로 이어져 남은 생마저 위태로워지는 경우가 있다. 시련이 깊어질 때 인생의 참맛을 알 수 있다고도 하는데, 현실은 운명의 모진 바람을 정통으로 맞으면 온몸이 휘청거린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언젠가는 가장 먼 곳으로 떠나는 순간이 온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 마주한 현실은 말문을 막히게 하고, 앞으로 살아갈 의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함은 이런 날에 대비하라는 인생의 진리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많이 웃고, 많이 표현한다. 웃으며,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는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눈부신 봄 햇살 아래 밝은 미소를 짓게 하기 위해서다. 어쩌면 그리움에 눈시울이 붉어질지도 모르지만.


사랑한다는 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있지만, 나처럼 지역적인 정서가 깊으면 어색한 사람도 있다. 경상도 사나이는 표현에 어색하다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것이 한번, 두 번 해본 결과 부드럽게 이어지기도 한다. 말 그대로 처음이 낯설고 어렵지, 일단 내뱉고 나면 다음부터는 어색함을 뒤로하고 계속하게 된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경우에는 손을 잡아준다든가, 가볍게 안아주는 것으로 위로가 된다. 사람은 서로의 온기를 느낌으로써 편안한 감정을 느끼는 존재니까. 내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자신의 존재 자체로 즐거운 삶을 살아갈 자격이 있다. 청춘이 죄는 아닐 테니 굳이 즐거움보다 고통일 이유는 없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싫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 마치 청춘이라면 당연히 아파도 된다는 말처럼 잿빛 현실을 겪어보지 않은 이의 어설픈 충고로 보일 수 있다. 과연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이 세대를 사는 젊은이의 아픔을 얼마나 많이 이해하기에, 이 세대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봤기에 그런 의견을 보태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가뜩이나 힘들어하는 청춘에게 짐 하나를 더 던져주는 느낌이 든다면 오해일까. 나는 제목만으로 충분히 거부감을 느껴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진 않았고, 여전히 관심이 가지 않는다.


책 제목이 내포한 의미,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문장 속에 숨겨진 진의가 무언지 홀로 생각해본다. 분명히 위로되라는 뜻으로 쓴 글일 테다. 청춘의 시절, 이것저것 해보다 실패하면 시련의 아픔으로 성장이 더디게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남들보다 몇 걸음 뒤처진다 해서 인생행로가 확 짧아지는 것은 아닐 테니 더욱더 용기 내란 말일 테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경험을 한 인생 선배로서 하는 말이니 제대로 새겨들어야 할 문장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키진 않지만, 확인 차원에서라도 언젠가 읽기는 해야 할 텐데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기약할 수 없다.


두렵지만 처음이니까 괜찮다.


나 자신을 위로하고자 마음속으로 되풀이하는 말이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그 일이 처음일 때 실수하는 것이 겁나서 머뭇거릴 때 항상 나를 지켜준 말이기도 하다. 괜찮아. 처음이잖아. 처음이니까 실수해도 괜찮아. 그러니까 두렵지만 일단 해보는 거야. 그러다 실수하더라도 처음이니까 괜찮다며 나를 다독인다. 물론 누군가 이렇게 말해주면 더욱더 위로된다. 나도 처음에는 어색하고 실수가 잦아서 힘들었다는 누군가의 말이 얼마나 많은 공감을 불러오는지 경험해본 이는 안다. 나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 경험자로서의 일체감은 공감이라는 따스한 감정을 낳고, 신뢰라는 타인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처음 마주하는 모든 일은 두렵고 낯설다. 실수에 대한 두려움, 실수로 인해 다시는 도전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좌절감의 경험, 다른 경우지만 비슷한 실패 경험들이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을 주저하게 만든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유명한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보면, 어쩌면 내가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선택을 해야 하고, 새로운 일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이때 우물쭈물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한 발을 내딛는 일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위로와 격려는 필요하다.


어른이라고 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이 없으랴. 나는 오히려 어른의 모습을 한 성장한 아이의 자태로 세상을 살아가는 중이라고 믿는다.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지금, 작은 일에도 크게 감동하는 중이고, 내가 한 작은 행동이 타인에게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음에 항상 조심하며 세상을 살아가려 한다. 젊음을 무기로 함부로 휘젓다 나와 척을 둔 몇몇을 경험하고서 생의 태도를 바꾸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조금 더 일찍 그렇게 살지 못했음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가진 본연의 마음은 여리고 약한데 들키지 않으려고 강하게만 밀어붙이던 모습은 살아남기 위한 투쟁의 단면이었으리라. 아무것도 없었던 나에게 가진 것이라도 빼앗기지 않으려 욕심부린 경솔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고 여린 아이가 웅크리고 있는데 누가 볼까 봐 두려웠나 보다.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던 모든 순간의 내가 이제는 안쓰럽고 애처롭다. 다가가 손을 내밀어 과거의 나를 위로해본다. 괜찮아. 다 괜찮아. 힘들게 살아온 네 삶, 넌 최선을 다했어. 지금에서야 위로하는 나를 용서해줘. 하지만 이제 다 지났으니 그걸로 충분해. 그러니 아파하지 마.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또 앞으로 그렇게 살아갈 거야. 작고 여린 마음을 품고 거친 풍파 속을 헤쳐나갈 거야. 그러니 겁먹지 마. 넌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 라고. 삶은 여러 모습이 있고, 다양한 삶을 사는 누구에게나 위로와 격려는 필요하다. 다 괜찮다는 위로와 격려가.



Written By The 한결

2021.01.12 대한민국 남해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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