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이 되다니
살면서 처음으로 입맛이 없는 상태였다. 아무리 슬퍼도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 허기였는데. 끊임없이 먹어왔으나 갑자기 입맛이 뚝 떨어져 신기하기도, 무섭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는 가족들이 먹는 시간에 같이 먹어야 했고 그 외에는 절대로 군것질을 해선 안 됐다. 저녁 전에 배가 너무 고파 컵라면을 먹다 엄마한테 들켰을 때, 기껏 장 봐왔더니 라면이나 쳐 먹는다고 밥 얻어먹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난 뒤로 다시는 컵라면을 먹지 않았다. 늘 그렇듯 가족들과 저녁을 먹었는데, 조금 먹다 젓가락을 놓으니 엄마가 놀랐다.
“어디 아파?”
“입맛이 없어.”
뭔 일이냐며 웃던 엄마도 잠시 후 젓가락을 놨다.
한결같이 잘 먹어온 나였다. 살이 쪘어도 엄마는 늘 나를 먹이려고 했다. 언제나 내게 살 좀 빼라고 하면서도 새 밥을 안쳤고 멸치를 볶았다. 내가 좋아하는 닭개장을 끓이느라 불 앞에 한 시간을 서 있으면서도 살을 빼라고 했다. 다른 애들은 어리고 예쁜 나이에 예쁘게 사는데, 너는 그러고 싶냐면서. 내 앞에 가득 담은 밥과 국을 놓아주면서. 맛있어? 라고 물어봤다.
“별론데.”
“그럼 처먹지나 말든가.”
입을 쭉 내밀고 뒤를 돌고 선 엄마의 얼굴이 벌써 그리워져서 내 몫으로 퍼준 음식을 다 먹었다. 엄마는 설거지를 하면서 중얼거렸다. 다 퍼먹고 뭘 맛이 없대. 배가 불러 조금 걷고 싶었는데 늦은 시간에 기지배가 어딜 나가냐면서 붙잡혔다. 만화를 읽으면 만화를 본다고 혼이 났고 그림을 그리면 대가리에 든 거 없이 그런 거나 그리냐며 혼이 났다.
나는 언제나 먹으면서 죄책감에 시달렸다. 예쁜 나이에 예쁘게 살아야 하는데, 자꾸만 먹네. 거울을 보면 내가 싫었다. 살을 빼려면 덜 먹고 운동을 하면 되는데, 일을 하는 동안 힘을 내려면 덜 먹을 수가 없었다. 운동을 할 시간도 없었기 때문에 먹고 죄책감에 빠져있다, 다시 먹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20대 후반까지 그렇게 지내왔다. 그러다 30살이 되었고 입맛이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한 뒤 지금이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다.
덜 먹고 많이 움직였다. 하루에 두 끼는 먹어야 머리가 돌아갔기 때문에 밥을 반 공기는 먹으려 했고 세 시간씩 걸었다. 어떤 날은 네 시간씩. 밥을 먹고 나면 엄마가 먹으라고 주는 보조제를 두 끼 꼬박 챙겨 먹었다. 얼마나 먹던지 꾸준하게. 밥 반 공기를 다 먹기 힘들어 반의 반 공기를 먹어도 보조제를 먹었다. 안 먹으면 안 돼. 살쪄. 꾸준히 먹어. 그러다 보니 취직을 할 날이 왔고 10kg이 빠져있었다. 다시 뭘 먹고 싶지가 않았다.
취직을 하고 나서도 꾸준히 걸으려고 했으나 두 달이 지나고부터는 그럴 수가 없게 됐는데 살은 계속 빠졌다. 입맛이 계속 없었다. 일을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8kg이 더 빠졌다. 갑자기 무서운 속도로 살이 빠지니 겁이 나기 시작했다. 입던 옷을 모두 버리게 되어 새 옷을 샀는데 너무 작아서 이상했다. 이렇게 작은 옷이 내 몸에 맞았다. 가슴이 답답해 뭘 씹어 삼킬 수가 없고, 몸은 자꾸 마르는데 누구나 내게 예쁘다고 했다. XL에서 L로, L에서 M으로 내려가면서 이러다 내가 아주 작아져 사라지는 게 아닐까 했다. 그러면서도 걷는 일은 빼놓지 않았다.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일이 중요해져 밥 대신 밖을 선택했다. 저녁 시간이 되면 엄마가 밥 짓는 냄새가 났는데, 그걸 맡으면 울렁거려서 밖으로 나왔다. 걷다가 들어가면 모두 밥을 먹고 난 뒤였다.
자꾸만 살이 빠지니 엄마도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먹고 싶은 걸 만들어 주겠다고 했지만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맛에 중독되어 살아왔다. 입 안 가득 채우는 만족감은 목 안으로 내려가 배를 채웠다. 음식만큼은 내게 확실한 것만을 안겨주었다. 맛, 포만감, 일을 할 수 있는 힘, 눈에 띄게 접히는 살, 무거운 몸, 큰 사이즈의 옷, 사람들의 평가와 질타. 예뻐야 할 나이에 예쁘지 못한 내 머리채를 붙드는 말들. 온 세상이 나서서 작아지기를 종용했다. 작고 예쁜 옷을 입으려면 그에 맞게 말라야 했다. 나에게 한 평가가 아니었어도 모든 것들이 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말, 광고판의 문구, 인터넷의 문장, 다른 사람의 사진들. 아무것도 먹기 싫은 날이 계속되어 먹지 않았고 어지러워 멍하니 양치를 하던 저녁. 옆을 지나가던 엄마가 말했다.
“우리 딸 살 빠지니까 예쁘다.”
그럼 전에는 예쁘지 않았는지. 평소처럼 톡 쏘고 싶었지만 그럴 힘도 나지 않았다. 생각 없이 그렇지, 하며 웃었다. 씻을 기운이 없어 샤워기를 들고 거울을 보다 오묘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나로 살려면 포기해야 하는 것이 참 많구나. 진짜 싫었던 것은, 이제야 비로소 사랑을 받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랑을 받으려면 작고, 마르고, 말대꾸를 하지 않고, 생각을 덜 해야 했다. 지금까지 크고, 뚱뚱하고, 말대꾸를 하고, 생각이 많았던 내가 사랑받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던 것이다. 사랑을 받으려면 기운이 없어야 했다.
먹는 것에 미련이 사라지니 아무거나 먹고 싶지 않아 졌다. 하루 한 번 먹고 싶은 순간이 오는데 이왕이면 아주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그 맛을 기대했는데, 이미 아는 맛이었다. 어떤 것을 먹어도 같았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반드시 찾아 먹었으나 실망스러웠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순댓국을 먹으러 갔다가 익숙한 맛이라 눈물이 났다.
나를 즐겁게 해 줬던 것들이 더 이상 즐겁지 않다는 게 슬펐다. 내게 큰 가치가 있었던 것들이 모두 사라졌다. 맛에서 벗어나 다른 것으로 나를 채우려 했으나 다 같았다.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며 돈을 벌게 됐으나 내 시간이 사라졌다. 체중이 빠지고 예쁜 옷과 사랑을 받게 됐으나 내 모습은 사라졌다. 살아온 날들이 다 거짓말 같았다. 그건 진짜가 아니었던 것처럼.
적극적으로 재미를 찾아 나서야 했다. 예전처럼 친구들을 만나 술을 미친 듯이 먹어볼까. 노래방에 가서 소리를 질러볼까. 그것마저도 전과 같지 않았다. 이루면 행복할 것 같았던 모든 기대들이 하나씩 좌절됐다. 이제는 식당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렸다. 친구와 새벽까지 술과 음식을 먹고 돌아와 침대에 앉는 순간 구역질이 났다. 이상한 오기가 생겨 토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배 멀미를 앓는 선장처럼 괴로워하다 해가 뜨고 나서야 간신히 잠들 수 있었다. 술을 깨는데 조금 오래 걸렸다. 깨고 나니 다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마블 영화를 좋아했고 신작이 나오면 꼭 챙겨봤다. 전과 같이 즐거울 것을 예상하고 예매를 했다. 그렇게 깨고 부수는 영화를 보면서도 졸았다. 큰 소리와 밝은 스크린이 내 앞에 있는데도 어두운 곳에 가만있으니 잠이 왔다. 눈을 감고 있다가 중요한 대사가 들리면 영화를 보고, 다시 졸다가 중요한 장면인 것 같으면 눈을 떴다. 이럴 거면 유튜브 요약본을 보면 되지 않을까. 돈을 만 오천 원이나 주고 이렇게 달게 잘 일인가.
맛집이라고 해서 찾아가도 이 값을 주고 먹을 만한 맛인가 싶었다. 좋다는 전시를 가도 이 돈 주고 볼 만한 작품인가 했다. 예쁜 옷을 사도 이 가격이 맞는 건가, 읽고 싶은 책을 결제하면서도 종이로 만들 나무를 심어놓은 땅값인가 했다. 월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인데. 다 비싸지기만 한 것 같았다. 좋은 건 비싸고, 비싼 데는 이유가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행복이야 말로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거였는데. 다 틀렸다.
휴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 나와 내 방의 상태를 본 엄마가 말했다.
“밥을 처먹던지, 운동을 하던지, 영화를 보던지, 뭐라도 해!”
“기운 없어. 나가면 돈만 써.”
그렇게 먹지 말라고 하더니. 그렇게 나가지 말라고 하더니. 돈 아깝다고 같은 영화 네 번씩 보지 말라고 하더니. 이제는 뭘 자꾸 하라고. 자고만 싶은데 집은 또 시끄러워서 잘 수가 없었다. 일을 하고 카페에 나가서 책을 읽는 것이 나의 전부였다. 책을 읽는 것만큼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전문가에 의해 고르게 쓰인 문장과 이야기는 나를 다독여주었다. 온 세상의 모든 책을 읽고 싶었다.
책처럼 사람도 자신만의 서사가 있다. 각자의 장르와 등장인물, 결말까지. 내 인생의 장르는 뭘까. 한 사람의 성장이라고 생각해보면 드라마였고, 살아남기 위한 분투를 생각해보면 느와르였다. 발전이라는 말에 쫓겨온 것을 보면 스릴러 같기도 하고. 자꾸만 나 자신을 증명하고 정리하려 했던 것을 보면 논문인가 싶었다. 가장 궁금한 것은 결말이었다. 어떻게 끝이 날까. 작가는 나였고, 주인공도 나였다. 나를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 페이지가 덮일까. 가름 끈을 끼워 넣고 여기까지, 하며 마무리가 될까. 작가의 말까지 읽은 뒤 차분히 감상을 즐길 수 있을까. 여운이라는 것이 남았으면 했다.
만들어진 이야기를 읽어왔으나 이상하게도 늘 거기서 나를 봤다. 좋아하는 영화가 생기면 지겨워질 때까지 반복해서 봤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였다. 습관처럼 맥주 한 캔과 부숴놓은 생라면을 준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익숙한 시작에 마음이 설렜다. 언제나 그렇듯 재미있겠지. 이야기는 이어졌고 마침내 클라이막스처럼 내가 좋아하는 대사가 들려왔다.
‘살아가면서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건 없다. 넌 뭐든지 될 수 있어. 꿈을 이루는데 시간제한은 없단다. 지금처럼 살아도 되고 새 삶을 시작해도 돼…. 네가 새로운 걸 보고, 새로운 걸 느꼈으면 좋겠다. 너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후회 없는 삶을 살면 좋겠구나. 조금이라도 후회가 생긴다면, 용기를 내서 다시 시작하렴.’
누군가 내게 용기를 내라는 위로를 준 적이 있던가.
부딪히고 깨져도 다시 힘을 내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이겨내는 것보다 포기하는 게 쉽다. 모두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이전의 나는 어땠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좋았던 일도 있었을 텐데. 그런 기억들 덕분에 살아간 순간도 있었을 텐데. 사는 게 즐거웠던 날이 없었던 것만 같았다.
쉽게 눈물이 났다. 쉬는 날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갔다가 서점의 책들이 너무 좋아 눈물이 났다. 내가 좋아하던 것이 여전히 좋아서. 카페에서 책을 읽다가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어르신들의 웃음소리에도 눈물이 났다. 손녀와 영상통화를 하는 어르신의 표정과 할머니, 보고싶어! 라고 외치는 손녀딸의 목소리가 맑아서. 집 앞 복지관 유치원의 애기들이 노란 가방을 메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도 참지 못했다.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다가 설거지를 하며 빼끔 고개만 내민 엄마가 좋아서, 종일 축구를 하고 돌아와 피곤해 씻고 잠든 조카의 코 고는 소리가 좋아서. 세상만사 좋은 일들이 이렇게나 많았는데 그걸 모르고 있던 게 사무쳤다. 커피가 맛있었고, 간장 계란밥이 맛있었다. 모든 게 슬픈 것 같았으나 다 좋은 것들 뿐이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다 아름다운 걸까.
출근을 하는 동안에는 진료 보러 가는 시간을 잘 조절해야 했다. 토요일 근무가 끝나고 급히 가야 병원 마감 전에 상담을 하고 약을 받을 수 있었는데, 유독 참을 수 없는 날이었다. 상담을 하다 울었더니 선생님이 내게 휴지를 주셨다. 습관처럼 사과를 했다. 내가 힘들다는 말을 하거나, 운다면 듣는 사람은 피곤하고 귀찮을 테니까.
“죄송해요. 혼자서 울 수 있는 공간이 없어요.”
“혼자서 울지 않아도 됩니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도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제일 앞자리 구석에 앉아 창밖을 보면서 숨을 죽였다. 하지만 코를 훌쩍이는 소리나 눈물을 닦아내는 손을 감추지는 못했다. 내 뒤에 앉아있던 사람이 다른 자리로 피해 갔다. 버스 안에는 사람이 많았지만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테니 내가 우는 모습을 보여줘도 상관없었다. 내릴 때가 되어 벨을 누르고 일어나 뒷문 앞에 섰다. 와중에도 눈물을 훔치고 있었는데. 문 앞에 엄마가 앉아있었다. 내 뒤에 있다가 자리를 이동한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의 표정이 잊히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에 잠시 앉아있었다.
30살이 되어서까지 길바닥에서 울 줄은 몰랐는데. 울다가 지쳐서 잠들었다가 다시 일어나 또 울고. 끊임없이 울었다. 그렇게 눈물이 없던 나였는데. 방 안에 있다가 눈이 빨갛게 부어 밖으로 나오면 엄마는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울고 나면 조금 살만해졌다. 침대 밑에 눈물로 뭉쳐놓은 휴지들이 쌓여갔다.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울지 못한 만큼 쏟아내는 거라고. 지금 울지 않으면 40살의 내가 더 울게 될 거라고. 이제야 진짜 인생을 사는 것 같아 서러운 마음을 다 풀어냈다.
며칠을 울기만 하다가 갑자기 배가 고파져 밥을 먹었다. 먹은 뒤엔 걸었고, 걷고 난 뒤엔 씻었다. 그리고 푹 잤다. 아침이 왔는데, 전처럼 싫지가 않아 출근도 잘했다.
반복적으로 기계가 도는 소리, 견딜 수 없는 나의 실수, 의심되는 확신들이 이어졌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너무나 좋았던 것들이 지루해지는 날이 오고, 정말 별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를 감동시킨다. 사랑했던 것들이 더 이상 내게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이 서러웠다. 거울 속 변해버린 내가 여전히 낯설으나 익숙해지고 싶었다. 이제는 이게 내 모습이라고, 다독이고 싶었다. 용기를 내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