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라이프
알람을 맞춰 두었지만 언제나 그보다 이르게 눈을 떴다. 눈을 뜨는 건 7시. 알람이 울리는 건 9시. 2시간 동안 누워서 뒹굴다가 알람이 울리면 끈 뒤, 그제야 이불을 걷어냈다. 내가 정해놓은 하루는 9시부터 시작이기에 그것에 맞춰 일정을 시작한다. 아침에는 도저히 입맛이 없어서 있는 것을 대충 먹게 되지만 무엇을 먹는지에 따라 점심에 먹을 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정성을 들여서 먹어야 했다. 오늘의 메뉴는 잡곡밥, 달래간장, 김, 멸치볶음. 모두 엄마가 해주었다. 본가를 나왔으나 여전히 엄마의 밥을 먹고 있었다. 완전하게 집을 나온 것 같지 않아 조금 찜찜한 기분을 느끼다가도 이렇게 챙겨주는 엄마에게 고마워졌다. 나에게는 아침 식사가 가장 중요해 어떻게든 맛있게 먹는다.
혼자 살기 시작하고 몇 주는 대충 있는 반찬을 두고 바닥에 쪼그려 앉아 밥을 먹었다. 그렇게 습관이 들었는데, 친구를 초대하여 밥을 같이 먹은 뒤로는 뭘 먹어도 점잖이 차려 먹게 됐다. 친구 앞의 내가 너무 급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밥을 먹고 있었다. 음식을 예쁘게 담거나, 맛을 즐기며 먹는 식사와 너무 오래 멀어져 있던 것 같았다. 조금씩 거칠어지는 생활의 방식을 실감할 때마다 혼자가 된 내가 낯설었다. 독립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너무 쉽게 변해버린 것 같았다. 이렇게 지내다가는 더욱 대충 살게 될 것 같아 일부러 그릇을 잔뜩 꺼내고 상을 차렸다.
설거지는 밥을 먹고 바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 종일 음식 냄새가 났기에 귀찮음을 이겨내야 했다. 밥을 먹고 바로 설거지를 하는 것. 독립의 첫 번째 규칙이었다. 그 규칙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나를 조금 들쑤실 줄도 알아야 했다. 나는 집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집이 일터이고 일터가 집이 됐다. 출근과 퇴근이 없는 삶이 쾌적할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나의 오만이었다. 출근을 한다는 것은 일을 할 직장과 쉴 수 있는 집이 분리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컴퓨터를 켜면 출근이 됐다. 잠옷을 입고 있으면 뭐든 편하게 하게 되어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좌절하기를 여러 번.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은 해야 했기에 최선을 다했다.
사실은 아니다.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은은한 죄책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해서 되겠어? 내 마음의 소리가 나를 다그쳤다. 나는 아직 글렀구나, 반성을 하게 되면서 숙연한 마음이 든다. 뭐든 열심히 해야 할 텐데. 반성의 효과는 30분이다. 1시간 간격으로 반성을 해줘야 그나마 뭔가를 한다.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주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채찍질을 하게 됐다. 아프다. 그래서 내게 당근을 주기로 한다. 겉옷과 담배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바람에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있는 듯했지만 햇볕이 따뜻했다. 두 계절이 서로의 자리를 바꾸고 있는 게 느껴졌다. 실내에만 있으면 바깥에 뭐가 다니는지, 뭐가 변하는지 알 수가 없다. 예전에는 그걸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다. 겨울이 가는지, 봄이 오는지. 매번 바뀌는 시간들을 다 알 필요 없다고 말이다. 사람들의 소리도 그저 소음으로 느껴지던 때였다. 공공장소에서는 조용히 해줄 수 없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그걸 반성하는 중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친구를 만나 신이 나면, 애인을 만나 즐거우면, 가족과 행복하면 좀 큰 소리로 떠들 수도 있는 건데. 남에게 그렇게 인색하게 굴었으니 나에게는 어땠을까.
길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웃는 게 즐거워 보여 나까지 기분이 좋았다. 비록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었지만, 냄새 때문에 골목에 숨어서 피우고 있었지만. 저렇게 환한 웃음이 일상에 가져오는 효과를 알기에 나도 웃을 거리를 찾아 핸드폰을 열었다. SNS 피드를 넘겨보며 주변인들의 소식을 읽다가 화면을 껐다. 잠깐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도 없이 새파랗게 맑았다. 담배를 다 태울 때까지는 얼마든지 깊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가만히 서서 심호흡을 하듯 몸에 힘을 뺐다. 연기가 나의 바깥으로 흩어졌다. 다 태운 꽁초를 버리고 집으로 올라갔다.
퇴근이 따로 없었기에 적당한 시간에 일로부터 나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했다. 내가 나를 퇴근시켜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내일 해야 할 일들은 내일 하기로 했다. 일을 마치고도 외출복을 갈아입지 않고 생활을 했다. 집이라고 편하게만 있으면 일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밸런스를 맞추는 게 중요했다. 일을 마무리하고도 노트북이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져 화면을 닫았다.
할 일을 하고 시간이 남으면 책을 조금 읽었다. 요즘엔 읽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도입부를 조금씩 읽다가 얼결에 함께 읽고 있는 책이 몇 권은 됐다. 철학, 소설, 에세이, 시. 최승자 시인의 씁쓸함을 안고 이슬아 작가의 명랑함을 닮고자 김초엽 작가의 세계에 들어가 니체의 말을 듣는 상태다. 이렇게 읽으면 뭐 하나 제대로 배울 수가 없었다. 한 세계를 진득하게 읽어내고 배워가고 닮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감상의 정석이기에 강박적으로 그렇게 읽어왔으나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인정한 뒤로는 그냥 이렇게 읽기 시작했다. 뭐가 됐든 읽는다는 것이 중요한 거 아닌지. 그렇다고 또 읽지 않는 게 중요하지 않다면 그건 또 아니고.
읽다 보면 또 쓰고 싶어 져서 다시 노트북 앞에 앉게 됐다. 쓰다가 무릎이 아파 정신이 들었다. 같은 자세로 너무 오래 앉아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잠시 일어나 스트레칭을 했다. 몸부림에 가까웠지만 일단은 움직였다. 그렇게 몸을 풀다가 전에는 이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해도 몸이 튼튼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고기도 막 먹고, 커피도 네 잔씩 마시고, 한 끼는 안 먹어도 되고. 괜히 영양제를 한 알 먹고 다시 노트북에 앉았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빠르게 흘러 벌써 밤이었다. 바깥은 어두워지고 내 방은 밝아진다. 내가 언제 불을 켰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눈치 빠른 오후의 내가 불을 잘 켰구나 싶다. 노트북 앞에 앉아 오늘 뭘 했는지 정리를 하다 그저 그런 하루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와는 또 다르고, 내일도 오늘과는 다르겠지만 비슷했고, 비슷할 것만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그렇다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지는 않겠지만.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다를 테지만. 생활 반경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하루가 새삼스러웠다. 그래서 내일은 뭔가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딱히 할 게 없어 또 그저 그랬다. 무릎이 자꾸 시큰거리는 게 조금 짜증이 났다.
하루를 마치는 의식으로 꼭 샤워를 한다. 오늘 묻은 때와 냄새를 없애고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일이 꼭 필요했다. 거울을 보니 어제의 나와 같아 보이는데, 10년 전의 나와는 너무나 달라서 조금 놀랐다. 이것도 새삼스럽지만. 나에게도 과거가 있다는 게 가끔은 머쓱하다. 내 나이를 내가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디로 나이를 먹은 건지 알 수가 없었는데. 나는 얼굴로 나이를 먹고 있었구나. 정통으로. 세월의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다. 삶이란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나이 들어가는 나를 매일같이 감당해야 하는 일인 것 같았다.
오늘도 버틴 것인지, 살아낸 것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으나 이래도 저래도 나의 날인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렇게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