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전쯤일까? 건대 앞에서 커피숍에서 친구를 만났다. 무역회사를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는 정장 차림으로 검고 네모난 스마트폰을 꺼내며 이렇게 말했다.
"야~요즘엔 문자로 얘기 안 해. 카톡 하지"
문자 한 통에 요금이 부과되던 때,
무제한 요금제도 없던 때,
문자에 띄어쓰기를 넣는 건 사치였다. 메시지의 내용을 다시 생각해서 한 두 문자에 담아내야 했다. '^^ ;) ㅋ ㅎ ㅜ'이런 기호로 무미건조해 보일 수 있는 문자를 적셨다. 그때도 특별한 날에 이름만 바꾸어 단체문자를 보내는 풍토를 한탄하기도 했다. 핸드폰은 저마다 다른 색, 모양이 었는데, 그 당시 나는 SKY에서 나온 터치폰을 썼던 기억이 난다. 펜을 가지고 내장된 게임을 즐길 수도 있고, 밀어서 올리고 내릴 수 있었던 핸드폰으로 기억한다. 처음으로 화면을 터치해서 입력하는 나름 혁신적인 폰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메시지를 보내도 모두 무료라는카카오톡이 스마트폰의 그 어떤 요소보다도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도 빨리 스마프폰으로 바꾸고 싶었다. 왜? 문자가 공짜니까.
나의 이십 대, 소개팅 참 많이 했다. 지금은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얼굴도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잊고 싶지 않은 추억이 있다.
헤어지고 나서 오는 첫 문자. 답신을 기다리는 설렘.
카톡을 사용하고 나서는 소개팅한 적이 많지 않지만, 참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숫자가 없어졌는데도 답이 없다.'왜 확인하고도 답이 없지?'라는 의문과 불만을 하게 된다. 신뢰가 충분한 관계라면 바쁜가 보다 하고 기다릴 수 있지만, 이제 막 만난 사이라면 답신까지의 그 공백에 수많은 의문을 던지며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했던 기억이 난다. "Talk". 의미대로 '대화'는 '메시지'와는 다르게 실시간이어야 한다는 기대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편지, 이메일과 문자메시지 경우에는 내가 메시지를 보냈다 하더라도 상대가 바로 확인하고 답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고, 확인하고 답을 할 때를 기다린다는 통념이 우리에게 있다. 하지만, Talk은 내가 던진 얘기에 상대가 바로 답을 할 것, 해야 한다는 기대가 있다. 실제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과 연관 짓게 되니 말이다. 과거 네이트 온, MSN 메신저를 사용해서 채팅을 하던 때를 떠올려보면, 혹여나 두 개의 대화창을 열어 놓고 "양팅"을 하면, "너 양팅 하냐?"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그것도 일종의 '대화'의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카톡의 매력에 빠졌다. 얼마든지 무료로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고, 심지어 외국에 있는 친구와 가족과도 문자, 음성, 영상까지 무료 통화가 가능하다. 연수 시절 전화카드를 사서 일주일에 한 번이나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서둘러 전화를 끊어야 했던 때를 떠올리면, 혁신은 혁신이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과 상태 메시지로,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것도 보이고, 힘든 감정도 드러내 보이고 싶은 욕구도 충족시킬 수 도 있었다. 전 남자 친구, 연락을 할 수는 없지만 궁금한 친구의 사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관음증의 욕구도 총족시킬 수 있었다. 아마 노출증과 관음증 욕구로 유지되던 싸이월드가 쇠락하는데 카카오톡도 한몫을 한 것 아닌가 싶다.
그런 신세계 카카오톡이 지금은 벗어날 수 없는 굴레가 되었다. 지난 1년 동안 2G 폰을 사용하다가 돌아온 결정적인 이유가 카카오톡이기도 하다.
내 카카오톡 앱에는 10개 이상의 단체 톡방이 있다. 어린이집 전체 엄마방, 어린이집 우리 아이방, 교회 순방, 친구들과 단체톡 방 등등. 친구들과의 단톡방이야 사정을 이야기하고 메시지와 전화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 가능한데, 어린이집 공지를 주고받아야 하는 단톡방, 같이 업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방만큼은 그럴 수가 없다. 나 때문에 단톡방에서 의견을 교환할 수 없고, 재차 나에게 공지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나의 소신(?) 때문에 그들에게 지울 용기가 없다.
카카오톡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고, 통화도 하지 못한 친구들이 있다. 가끔 프로필 사진을 열어 보며 혼자서만 안부를 확인한다. '잘 지내고 있구나' 아마 카톡에서 확인하지 못했더라면 전화 한 번 하지 않았을까? 한 번쯤 만나자고 하지 않았을까? '카톡 덕분에 이렇게 라도 소식을 알 수 있구나'란 생각에서 점점 '카톡 때문에 서로 여전히 닿아있다고 착각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 그 친구도 '카톡 봤으면 나 아기 낳은 거 알면서 연락도 안 하네'하고 서운해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든 울려대는 카카오톡 알림음. 알람을 꺼 놓으면 되긴 하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톡을 남기고 기다리고 있을 거란 생각에 정기적으로 스마트폰에게 다가가 카톡을 확인한다. 그리고 답을 하기 시작하면 대화가 시작되고, 그 순간 옆에 있는 사람은 소외된다. 그게 남편과 친구일 때는 서둘러 톡을 마무리 짓지만, 순간 옆에 있는 사람이 아이일 때는 쉽게 방치하고 톡에 빠져 든다. 아이는 놀아달라고 떼를 쓰고 나는 아이에게 짜증을 낸다. 그리고 이 카카오톡 때문에 또 이렇게 되는구나 하고 화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