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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인류학자 Apr 28. 2020

브런치 나눠 먹을 때, 잃게 되는 것

아이 친구 엄마들과 브런치 약속을 했다. 동네 유명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카페 옆으로는 계곡물이 흐르고 내부에는 오래된 소품 가지들이 있으며 제대로 된 하와이 코나 커피를 파는 곳으로 비싼 커피값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육아와 가사로 지친 우리에게 그곳에서 브런치 약속은 한 끼니 이상의 의미이다. 치아바타, 크루아상, 에그 샌드 위치, 함박스테이크. 유명세만큼 다양한 메뉴들이 있었다. 모인 이들은 모든 것을 맛보고 싶은 마음에 같이 나누어 먹기로 하고 모든 메뉴를 하나씩 시켰다. 이내 메뉴는 나왔고, 예쁜 쁜 접시에 예쁘게 놓인 음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 같았다. 먹기에 아깝다는 말이 딱 맞았다.


그러나 우리는 다 같이 나누어 먹어야 하기에 순식간에 그 모든 메뉴를 조각내어 여러 접시에 다 나누어 담았다. 그리고 내가 안 먹은 메뉴는 어떤 것이 었지? 이거 맛있어서 하나 더 먹고 싶은데 다른 사람이 먹어야 하니까 안 되겠지? 눈치를 보기도 하고 머리를 쓰기도 하며 그날의 브런치를 마쳤다. 결국 접시에는 모두의 눈치의 결과로 선택되지 못한 샌드위치 몇 조각이 남겨져 있었다.



한 참이 지난 오늘 아침. 한병철의 '시간의 향기'를 읽다가 그날 그 브런치가 생각났다.  왠지 모를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그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브런치의 사전적 의미야 아침과 점심 중간에 먹는 끼니를 뜻하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브런치'가 갖는 이미지는 이렇다.


첫 째, 카페에서 먹는다. 집에서 먹는 늦은 아침과는 다르다. 그건 '아점'이지 '브런치'가 아니다.

둘째, 아름답다. 남다른 분위기의 카페에 예쁜 플레이팅으로 그곳에 앉아 있는 나로 하여금 오늘은 특별한 날,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는 기분을 들게 한다. 당연히 나도 잘 차려입고 나게 되기 마련이다.

 '브런치'는 배를 불리는 한 끼 식사라는 생존적인 의미 이상이다.  공간의 아름다움, 음식의 맛과 멋, 함께하는 이와의 관계, 구해 받지 않는 시간들을 향유하는 실존적인 의미다.

 

그날의 브런치의 아쉬움은 단순히 보면, 예쁘게 놓인 음식을 나누어서 시작된 것 같지만 사실은 모든 메뉴를 맛보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이 시작이었던 것 같다.


'이것도 먹고 싶고, 저것도 먹고 싶으니, 다 시켜 내 것도 먹고, 니 것도 먹어보자' 일종의 욕이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이 내가 선택한 것을 향유하는 것을 놓치게 다. 이러한 심리가  메뉴 선택에만 국한된 것일까..


음식을 나누어 먹은 덕분에 모든 메뉴를 골고루 맛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접시를 왔다 갔다 하고, 함께 한 사람들을 신경 쓰는 부산함이 그 공간에서, 그 음식을 나누며, 함께 한 사람과 나누는 여유가 주는 즐거움을 덮어버렸다.


내가 시킨 메뉴가 어떤 것이든 간에 상관없이..

나에게 주어진 메뉴를 찬찬히 보고 나름의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었는데...

포크와 나이프로 먹고 싶은 재료의 조합을 섞어 입에 넣고 '음~'하는 감탄을 터뜨릴 수 있었는데...

네가 시킨 메뉴의 플레이팅을 감상하기도 하고, 그의 감상평을 들어볼 수 있었는데...  

내 메뉴의 아쉬움을 느끼고, 다음에는 다른 것을 먹어보아야겠다는 미련 섞인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도 있었는데...


그 모든 체험과 감정을 향유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을 '맛보기'만 했다.



SNS 속에 화려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보며

다른 일을 했더라면,

다른 사람을 선택했더라면,


수많은 비교,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으로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을 향유하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오랫만에 브런치 약속이 있다.

다른 메뉴에 대한 아쉬움이 있더라도 오늘은 내 메뉴를 시켜 온전히 그 시간을 향유해야지.

그러다 한 포크 상대에게 맛보라며 건내는 그런 여유는 갖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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