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방 누나 방" 하며 26개월 될 둘째 해강이가 달려간다. 그곳은 누나랑 해강이랑 엄마랑 함께 자는 곳이지만, 누나 책이 가득 꽂혀 있고 누나가 '내방'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는지 누나 방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할머니가 신기한지 다른 방을 가리키며 이어 물으신다.
"그럼 여기는 누구 방이야?"
"해강이 방" 장난감이 놓인 그 방에서 줄곧 놀기 때문인지 내 책이 꽂힌 책장이 있는데도 그 방이 자기 방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아빠방은 어디야?"
"저기"
"그럼 엄마방은?"
잠시 생각하더니, "없어"
묻던 할머니와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내방은 주방이다!" 하고 쓴웃음으로 항변하듯 말했다. 아빠 혼자 자는 방에는 TV가 있어서 자주 들어가서 놀면서도 그곳은 아빠방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누나 방', '내방', '아빠방' 모두 어느 정도는 공유하는 공간이지만 다 각자의 공간이 있는데 엄마방은 없다.
얼마 전 오랜 친구 집에 놀러 갔다. 그 친구도 어린아이 둘을 키우고 있고, 교사이지만 휴직 중에 있다. 직업도 같고, 같은 공부를 했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고, 즐거워하는 지점도 비슷한 친구지만, 나보다 더 열정이 있고 그 열정을 눈에 보이게 만들어내는 친구다. 그래서 항상 동경하고 만나면 에너지가 되는 나의 "뮤즈"같은 존재다. 이제 막 초보운전 딱지를 뗐지만, 경기도에서 서울 북부까지 한 시간 반을 운전해서 찾아갔다. 그의 집에는 처음 가 보는데, 여느 집과는 다른 방 구성이 눈에 띄었다. 거실은 아이들 놀이공간, 안방은 자는 공간, 나머지 방은 하나는 남편의 서재, 그리고 남은 방 하나가 내 친구의 서재였다. 남편의 서재에는 책상이 놓여 있긴 했지만 책꽂이에는 대학 때 읽은 전공 서적이 꽂혀 있고, 방 중앙에는 다리미와 건조대 그리고 이런저런 살림살이가 놓여 있다. 친구의 서재에는 이제 막 서재에서 나온 듯 책과 종이들이 책상 위에 놓여 있고, 최근 친구의 관심사를 보여주는 책들이 꽂혀있었다. 내 친구의 서재는 '서재'라는 이름으로 살아있는 공간이었다. 책꽂이, 책상, 컴퓨터가 인테리어로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방 주인의 관심과 손길을 받으며 그곳에서 뭔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도 혼자 뭔가를 할 때 있는 곳이 있다. 주방에 놓인 식탁이 그곳이다. 나도 이곳이 싫진 않았지만 친구의 집을 다녀오고 나서 나만의 독립된, 그러니까 문을 닫을 수도 있고, 내가 관심 갖는 것들이 손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그런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해강이 방이라 불리는 놀이방에 접이식 책상을 펼쳤다. 아이들이 자고 난 뒤에는 이 방을 내 방처럼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그렇게 며칠 책상은 좁은 방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놀이 공간을 더 비좁게 할 뿐 내 삶에는 크게 다른 변화를 주지 않았고, 결국 이내 치워졌다.
그렇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만의 공간이 아닌 그런 공간이 필요한 삶을 살고 싶은 거다. 아직 둘째가 돌도 되지 않은 그 친구에게 혼자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많이 주어지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간을 살아있게 누리며, 부리는 그의 삶을 부럽고, 본받고 싶다.
그 친구는 매월 초등학생 조카들에게 책을 추천하며 관련 활동을 안내하는 "독서클럽" 계획표를 만들어 보내고 있다. 주말에는 그림책 관련 강좌를 듣고 있으며, 슬로푸드를 하는 친구와 요리와 그림책을 연계한 수업을 기획하고, 내년에는 그것에 관한 책을 발간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202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