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히 기억한다. 초등학교 시절,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 하얗게 그어진 출발선 뒤에서 ‘준비!’ 소리에 맞춰 자세를 취할 때의 긴장감.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엉덩이를 치켜든 채로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1, 2초 남짓한 그 시간이 나는 유난히도 싫었다. 그렇다고 달리기를 못 하냐고 하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다. 다만 모두가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 출발이라는 호령 소리를 기다리고 있을 때의 그 긴장감이 죽도록 싫었을 뿐이다.
긴장을 잘하는 편이다. 많은 이들이 그랬겠지만 고3 때에는 소화장애까지 걸렸다. ‘수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하고 막혀와 뭘 먹어도 체기가 올라왔다. 취업준비생 때는 면접을 앞두고 남몰래 엉엉 울어버린 적도 있다. 막상 면접장에 들어가면 그렇게 떠는 편도 아닌데, 대기할 때의 그 긴장감만 생각하면 속이 울렁거렸다. 하다못해 어학시험만 해도 마찬가지. 고사장, 수험표, OMR 카드, 시험지 넘기는 소리는 늘 나를 도망가고 싶게 만들었다.
긴장을 잘하는 사람이 안 그래도 긴장도가 높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나마 의식적으로라도 긴장감에 익숙해지고자 노력해온 탓에 그럭저럭 잘 살아내고 있다. 김연아 선수의 ‘너무 많이 연습해서 하나도 안 떨려요’라는 말을 바이블 삼아 스스로의 노력을 탓하며 일부러 더 자주, 많이, 출발선 위에 나를 세웠다.
때때로, 매일 오늘 몫의 출발선 위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출발 신호에 맞춰 전력질주하지 않으면 낙오될지도 모르는. 크게는 입시, 취업, 이직, 출세와 같은 굵직굵직한 것들이 있을 것이고, 작게는 당장 오늘의 출근이 그렇다. 매일 아침 문을 열고 집을 나서는 순간 우리의 전력질주는 시작된다. 이따금 도망치고 싶지만 묵묵히 전진하는 이유는, 트랙을 이탈하는 데에 어쩌면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간혹 지칠 때에는 퇴근길에 서점을 산책한다. 요즘 인기 있다는 책들의 표지를 하나하나 읽는 것만으로도 제법 위안이 된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오늘은 이만 좀 쉴게요’,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괜찮아’. 유행처럼 쏟아지는 힐링 에세이들이 대체로 뻔하고 유사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2030대 독자들을 중심으로 이처럼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것은, 그만큼 이 뻔한 위로와 울림이 간절했다는 방증일 것이다. 멈추고 싶은 욕망과 힐난하는 시선 가운데, 단단해지고 싶은 선언적인 외침이 어쩐지 아리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글귀, ‘지금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주로 교실 급훈으로 자주 등장하고, 나역시 몇 번이고 책상머리에 붙여 놓았다. 당시에는 명언이라고 고개를 주억거렸는데 다시 보니 조금 이상하다. 그냥 내일 뛰면 안 되는 걸까? 누구에게나 내일 뛰더라도 오늘은 멈춰 쉬고 싶은 날이 있다. 매일 쉬지 않고 걷는 삶과 가끔 뛰더라도 종종 멈추어 쉬는 삶.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선택의 문제일 뿐. 그러니 오늘이 혹시 그런 날이라면 오늘 당신,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