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청첩장은 비행기 티켓 모양이었다. ‘From Single To Married.’ 언어도 문화도 다른 ‘유부월드’로의 편도행 티켓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일상의 모든 순간을 여행처럼 살아내고자 하는 다짐의 산물이었다. 며칠의 고민 끝에 적은 초대 문구의 시작은 이러했다. ‘여행이 취미인 연인에서, 일상이 여행인 부부로 보다 큰 균형을 찾아가려 합니다. 지난 5년처럼, 함께하는 매 순간 여행하듯 설레는 마음으로 소중하게 보내겠습니다.’ 그로부터 다시 또 5년이 지난 지금은 ‘매 순간’의 허구성을 깨달으면서 ‘대부분의 순간’을 달성코자 노력 중이다.
그 일환으로 결혼 후 신혼집을 시작으로 이사를 다닐 때마다 동네명을 넣어 ‘○○여행’이라고 불러왔다. 그러다 최근 놀거리와 맛집이 풍부한 성수 근방으로 이사를 오면서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가 있다. 이름하여 ‘토요성수’. 매주 토요일 저녁에는 예외 없이 전동 킥보드를 타고 동네 맛집을 탐방한다. 미리 알아보기보다는 발길 닿는 대로 가다가 마음 맞는 데가 보이면 들어가 보는 식이다. 고급스럽거나 유명한 곳일 필요도 없다. 그저 낯선 곳을 걷고 헤매며 그날 몫의 행운을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대부분의 맞벌이 부부가 그러하듯 우리도 요리보다는 외식이 더 자연스럽다. 어차피 주말 이틀 중 최소 한 끼 이상은 사 먹는 것이 보통인데, 당연한 일상에 정기성과 테마를 부여하니 그럴듯한 놀이가 되었다. 이 별것 아닌 사소한 장치가 요즈음의 일상을 설레게 한다. 앞선 일정이 있더라도 저녁 먹을 시간이 되면 들뜬 마음으로 후다닥 자리를 정리한다. “오늘은 어느 쪽으로 가볼까?” 여행이 별건가. 평일이라는 긴 일과를 마친 후 주말이라는 이름의 여행이 시작된다. 관성에 젖은 일상도 이름 붙이기에 따라 한층 더 특별해질 수 있는 것이다.
기약 없이 막힌 하늘길이 야속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 대신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국내로 눈을 돌리고 다시 그 안에서 전에 몰랐던 행복감을 발견해 나가고 있다. 그러던 중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유례없이 긴 장마가 더해졌다. 가뜩이나 조심스러운 여행을 이렇게 원천봉쇄해 버리다니.
이럴 때 아쉬운 대로 일상 여행법을 추천한다. 살고 있는 동네의 새벽길을 걸어본 일이 있는가? 매번 지나치기만 했던 식당의 문턱을 넘어본 일은? 밖으로 나설 필요도 없다. 배달음식 시켜 먹기, 집에서 영화 보기와 같은 별것 아닌 일상일지라도, 조금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 나름의 멋진 여행이 될 수 있다. 돌아보면 여행이 좋았던 까닭은 대부분 ‘그때 그 장소’가 아닌 여행 중이라는 사실 그 자체 때문이었다. 사소하지만 귀한 순간들을 알고 놓치지 않고 기뻐하는 것. 하루하루를 최대한으로 곱씹으며 아쉬운 마음으로 놓아주는 것. 아무래도 당분간은 그렇게 수련하는 마음으로 지내야겠다.
*동아일보 2020.08.04자 게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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