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소천지라는 곳이 있다. 백두산 천지를 닮아 작은 천지라는 뜻으로 소천지라 이름 붙였다 한다. 그 곳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뾰족한 바위 위로 비틀거리며 올라가 사진만 찍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가자니 꽤나 용기가 필요하더라. 그래도 들어갔다. 나보다 용기가 큰 그는 멀리까지 헤엄쳐 나갔다. 그 곳에서 엄청 큰 물고기를 보았노라고 소리쳤다. 놀다보니 사람들이 더이상 신경쓰이지 않았다. 둘만 있는 것 같았다. 물이란게 원래 들어가라고 있는 거 아닐까. 여행 중 물에 몸을 담그면 너무나 자유스럽고 신이 난다. 여행이 풍만해진다.
소천지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오늘은 텐트가 아닌, 이 곳에서 하룻밤을 보낼 예정이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노을을 보며 휴식을 취했다. 여러날 백패킹을 하는 중에 따뜻한 물과 침대가 있는 곳에서 하룻밤 쉬어가면 그렇게 편안하고 아늑할 수가 없다.
우리는 제주의 동쪽으로 향했다. 제주의 동쪽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성산일출봉이 아닐까. 그는 이곳에 와본 적이 없다고 해서 오늘의 목적지인 비양도에 가기 전 성산일출봉에 한 번 올라보기로 했다. 거대한 성산일출봉의 광경이 멀리서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우리는 짐을 맡겨두고 가볍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성산일출봉을 오르는 길에는 다양한 형태의 바위들이 우리를 즐겁게해주었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등 뒤로 제주 바다의 풍경이 펼쳐졌다. 우리는 난간에 기대어 우리가 지나온 길, 우리가 들릴 곳들을 찾아보았다. 해가 뜨거웠다. 갈증이 나고 더웠지만 쨍한 햇볕 덕분에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었다. 성산일출봉 정상의 푸르름도 더욱 빛이 났다.
백패킹 3대 성지가 있다. 굴업도, 선자령, 비양도가 그것이다. 우리는 첫 백패킹을 제주에서 시작했음에도 비양도에 와보지 못했다. 이번에 비로소 백패킹 3대 성지를 클리어하게 되었다. 비양도로 가려면 배를 타고 우도로 들어가야한다. 우도를 가로 질러 반대편까지 걸어가면 마침내 비양도를 만나게 된다. 평온한 제주 섬풍경이 좋았다. 제주의 밭들은 검은 비닐봉지가 씌워져 있지 않아 푸르름이 예쁘다. 붉은 흙에 가지런히 심겨진 작물들이 귀여워보였다.
비양도에 도착했다. 너른 잔디밭에 벌써 텐트 여러동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바다가 내다 보이는 적당한 자리에 집을 지었다. 텐트만 쳐두고 갈 곳이 있어 바로 자리를 떴다. 비양도로 들어가는 길에 아름다운 바다를 보았다. 그 곳에서 물놀이가 하고 싶었다. 우리는 짐을 풀지도 않고 텐트 안에 고스란히 던져둔채 바다로 나왔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면 샤워를 해야해서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물놀이 하고 싶은 곳을 만났으니 우선 몸부터 담그고 보자고 했다. 걱정은 뒷일로 미뤘다. 모래사장에 에메랄드 빛 바닷물이 넘실거렸다. 우리는 바닷물에 몸을 맡겼다. 물놀이를 끝내고 나와 동네 주민분께 여쭤보니 샤워가 가능한 근처 카페를 알려주셨다. 다행히 그곳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까지 마치고 나왔다. 몸이 가볍고 개운했다.
남들 다 가는 곳엔 괜히 가기 싫은 그런 마음, 누구나 다 있지 않나? 나도 그랬다. 그런데 이름 난 데는 이유가 있더라. 텐트 앞엔 바다 뒤로는 잔디가 펼쳐져있다. 제주 바람이 춥지도 덥지도 않게 불어왔다. 발치엔 우도 땅콩먹걸리가 있고 그 옆엔 라면이 맛 좋게 끊었다. 모두가 매너를 잘 지키고 소소하게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냥 좋더라. 그냥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것이 좋더라.
비양도의 밤이 깊었다. 날이 좋아 우리는 늦은시간까지 텐트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달이 너무 밝아 주변을 산책했다. 헤드랜턴이 필요 없을 정도로 주변이 달빛에 빛났다.
이제 제주도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우선 배를 타고 우도를 나왔다.아침 뱃시간에 맞추기 촉박하게 출발한 터라 빠른 걸음으로 항구까지 걸어야했다. 숨이 찼다. 항구에서 가까운 곳에 버스 터미널이 있어 그 곳에서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캠핑과 함께 하는 여행은 언제나 다채롭다. 이번 여행도 제주 바람과 푸르름을 잔뜩 즐기고 돌아갈 수 있어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