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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브라운 Feb 13. 2024

갑자기 백수가 되었습니다.

#3 한숨


한 번 터진 눈물은 좀처럼 그칠 줄 몰랐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된 충격과 놀라움, 내일에 대한 막막함 그리고 아내에 대한 미안함. 이 감정들이 한 데 어우러져 날 괴롭혔다.


내가 뭘 어쨌다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사방이 불투명 유리로 되어있는 회의실이라 누가 보기라도 할 까봐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죽여 울었다. 다행히 그 시간 동안 누구도 회의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생각을 정리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격해졌던 마음도 안정을 찾았다. 아직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다음을 생각해야 했다. 이미 일은 벌어졌으니까.


여전히 내가 쫓겨나는 이유에 대해선 납득을 할 수 없었다. 팀장님이 말한 우리 회사와 옷이 맞지 않는 것 같다? 글쎄, 주 업무를 시켜보지도 않고 뭘 보고?

그렇다고 내가 공장에 있을 때나 현장업무를 볼 때도 대충대충 한 적은 없다. 회사의 배려에 감사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선 최선을 다 했으니까. 엄동설한의 추위에도 아무 불평 없이 현장으로 나갔고 엊그제까지도 현장팀 직원과 1박 2일간 1,000km가 넘는 지방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이런 거라니.


언제부턴가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같았던 대표습이 생각났다. 근데 정말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가 회사에서 업무적으로 물의를 일으켰거나 동료들과 불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특히나 대표님과는 마주친 적도 몇 번 없는데 왜 날 그렇게 대했던 걸까. 그리고 나에 대한 평가는 누가 걸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미리 한 번만이라도 얘기를 해 줬다면.

내 이러이러한 점이 좋아 보이지 않으니 앞으로 조심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이라도 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끝내 납득하지 못 이유로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게 너무도 찜찜했다.


근무는 언제까지 하는 게 좋을까?

이미 퇴사통보를 받은 마당에 일이 손에 잡힐 리 없었고 사무실에 나오는 것도 모양새가 웃긴 것 같았다. 언제든 나오지 않아도 된다 했으니 근무는 오늘까지만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지금 내게 무엇보다 급한 건 다시 일할 곳을 찾는 거니까.


아내에겐 뭐라 얘기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떤 변명이나 이유도 떠오르지 않았다. 무능력한 모습을 보여주긴 정말 싫지만, 지금은 솔직하게 말하는 게 가장 낫겠다 싶었다. 아내 생각에 울컥해진 마음을 진정시키고 회의실을 나왔다. 이제 정리를 해야 할 시간이다.


마지막 인사


회의실을 나와 같은 영업팀에 있는 *차장에게 갔다. 내가 계속 근무하게 됐다면 같은 팀으로 으쌰으쌰 하며 함께 일하고 있었을 사람.


"차장님, 잠깐 시간 되시면 저랑 얘기 좀 하실까요?"

"네 그러시죠 과장님."


우리 두 사람은 내가 방금까지 있었던 회의실로 들어왔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차장님, 방금 전에 인사 팀장님하고 얘길 했었는데.. 저 잘렸대요."

"네?"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차장에게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얘기해 줬다. 간간히 짧은 탄식을 내뱉으며 내 얘길 듣던 *차장은 내 얘기가 끝난 뒤 말했다.


"대표님껜 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것 같아요. 남 얘길 잘 안듣기도 하시고. 결국 이렇게 됐군요. 과장님 하고 같이 일하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정말 아쉽네요.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그런 *차장에게 난 괜찮다고, 물론 잘리는 이유가 납득은 안되지만 내가 뭐 어쩔 수 있겠냐며 대신 근무는 오늘까지만 하겠다 얘기했다.


"잘렸는데 사무실 출근하는 것도 웃기잖아요. 무엇보다 제가 못 견딜 것 같아요. 지금도 당장 가고 싶은데 그래도 오늘은 이제 몇 시간 안 남았으니까 참고 있으려고요. 지금 이대로 갑자기 짐 싸서 나가는 것도 영 이상하고.. 아 진짜 창피하고 민망하고 그렇네요."


퇴사 얘길 듣고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이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면 지금은 창피함이 내 마음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일 못해서 잘리게 된 무능력한 직원. 이게 현실이고 지금 내 모습이었다.


"제 생각에도 근무는 오늘까지만 하시는 게 좋을 것 같긴 하네요. 더 이상 출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빨리 이직준비 하시는 게 낫죠. 인사팀에는 제가 잘 얘기할게요."

"감사합니다 차장님, 부탁 좀 드릴게요."


*차장과 얘기를 끝내고 잠깐 바람을 쐬러 건물 밖으로 나왔다. 4층짜리 사옥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기도 오늘이 마지막이네.'


사무실로 올라와 자리에 앉았다.

시계를 보니 퇴근까지는 1시간 정도 남아있었다. 금요일이니 아마도 모두 칼퇴근을 할 것이었고 그렇게 기다렸다가 마지막으로 나가면 될것 같았다. 조용히 서랍 속에 있는 쇼핑백을 꺼내 개인짐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다이어리, 명함, 핸드폰 충전기, 칫솔 살균기 등 잡다한 것들이 꽤나 많았다. 천천히 짐을 챙겨 동료들 모르게 차로 옮겼다. 그러는 사이 퇴근 시간이 됐고 동료들은 퇴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주말 잘 보내라는 인사와 함께 하나, 둘 사무실을 떠났다.


그렇게 모두 나가고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나와 *차장이었다.

"차장님, 저도 이제 가볼게요."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서려는데 *차장은 배웅을 해 주겠다며 1층까지 함께 내려왔다.


"차장님 그간 감사했어요. 계속 같이 일했음 좋았을 텐데. 건강하시고요."

"네 과장님, 고생하셨어요. 더 좋은 곳 가실 거예요. 힘내시고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차장은 발걸음을 돌려 사무실로 올라갔다.


마지막 퇴근길


금요일 저녁이라 차들이 많았다.

평소보다 막히는 도로에서 평소 퇴근길처럼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이하이의 '한숨'이 나왔다.


누군가의 한숨 그 무거운 숨을

내가 어떻게 헤아릴 수가 있을까요

당신의 한숨 그 깊일 이해할 순 없겠지만

괜찮아요 내가 안아줄게요 정말 수고했어요


이별하면 세상 모든 이별 노래가 내 얘기 같다고 했던가. 오늘 회사에서 잘린 내게, 마치 한 번 들어보라는 듯 라디오에서 나오던 이 노래는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고생많았어.'


퇴근길, 꽉 막힌 도로 위 차 안에서 오늘의 두 번째 울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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