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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브라운 Apr 04. 2024

갑자기 백수가 되었습니다.

#5 다시 시작


"여보, 난 정말 괜찮아. 오빠가 오늘 맘고생 많았겠네."


무척이나 길었던 오늘 하루에서 처음 듣게 된 두 살 어린 아내의 따뜻한 위로. 종종 누나 같은 느낌을 주는 아내의 위로를 받고 나니 이제야 이 악몽 같았던 하루도 끝이 나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계속 꼬이는 걸까? 한 번 잘 살아고 나름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자꾸 왜 이러는거야 정말.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장사의 꿈


최근 몇 년간 일이 잘 안 풀린다는 느낌 받고 있다. 특히나 몇 년 전 월급쟁이 생활을 때려치우고 야심 차게 시작했던 장사는 지금까지도 많은 후회를 남기고 있다. 삶은, 우리 인생은 수많은 선택의 결과로 이어지기에 어쩔 수 없이 결과론적으로 얘기할 수밖에 없고 그 점에서 본다면 장사를 선택했던 내 결정은, 정말 최악의 선택이었다 할 만하다.


뭐가 그리 조급했을까. 천천히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아르바이트로 경험도 해 보면서 준비했으면 좋았을걸, 그땐 무조건 바로 장사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 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함, 아무리 봐도 이 자리가 딱인 것 같은 성급함, 시작하기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무모함까지.


유명한 프랜차이즈 매장이긴 했지만 이렇게 급하게 시작한 장사가 잘 됐을 리 만무하다. 물론 그 어떤 점주보다 열심히 일했음은 자부한다. 생계가 걸린 일이기에, 가게에 있는 동안은 정말 머슴처럼 일했다. 하지만 세상 일들이 열심히 했다고 모두에게 그 노력을 보상해주진 않는다. 야속하지만 나도 예외는 아니었고.


40년 넘게 살아오면서 시도했던 가장 큰 도전이 처참한 실패로 끝나버린 순간이었고 그랬기에 내가 느낀 좌절감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할 수만 있다면 그때의 선택을 되돌리고 싶 마음이 크다.


꼬꼬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이후 어렵게 다시 들어간 회사도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일단 붕 떠버린 몇 년의 공백은 내 선택지를 예전보다 훨씬 좁혀버렸고 최선이라 믿었던 선택도 녹록지 않은 현실의 벽을 마주하며 후회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후회의 시작점을 찾아 시간을 거슬러 가보면 그곳엔 언제나 장사를 결심했던 순간의 내가 있었다. 내가 그때 결정만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왜 그렇게 조급하고 성급했을까. 이 후회는 늘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내 자존감을 저 깊은 바닥 아래까지 끌고 내려갔다.


이런 상황에서 조급한 마음에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들어간 회사였기에 결국 오래 버티지 못했지만 다행히도 한 번의 기회가 더 찾아왔다. 모든 조건이 괜찮아 정년까지 있어야겠다 생각하며 입사했던 이 회사. 그랬던 이곳이 하루아침에 나를 잘라버렸다. 이제 바닥에서 올라갈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그 아래에 또 바닥이 있었던 거다.


내일까지만


하루가 지나 토요일이 됐다.

오늘은 아내와 제부도로 바람을 쐬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아내와 했던 약속이기도 했지만 나도 이대로 집에만 있고 싶지 않아 아내와 집을 나섰다. 그런데 집을 나서고 얼마 되지 않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말했다.


"날씨가 내 기분을 아는 것 같네."


제부도에 들어와 점심을 먹고 바닷가가 보이는 카페에 갔다. 아내와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며 비 오는 바다를 잠시 멍하니 바라봤다. 하루가 지나니 마음  진정돼서 제 일을 냉정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결과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니 이번에도 그럴 것이었다. 분명 내게 어떤 문제가 있었리라. 인사팀장님이 말했던 '회사에서 바라는 영업과장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던 게 이유였겠지. 회사가 바랬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패기 있고 자신감 있는 모습,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상대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안, 관부서와의 협업능력, 팀을 잘 이끌어 갈 수 있는 리더십, 또?


여전히 아쉬운 건 내겐 이런 것들을 보여줄 기회 자체가 없었다는 점인데, 어쩌면 평소의 모습에서 이런 면들이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본연의 업무를 했던게 아니라 그간 OJT기간이라 공장과 현장으로 돌아다니기 바빴는데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마음 한구석엔 진짜 내 일이 아니란 생각이 있었을지도.


이제와 이런 생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이유가 무엇이 됐든 확실한 건 내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 이것만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 다시 회사에 들어가는 것.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해서 내 경력을 살릴 수 있는 회사로 들어가리라.


한참을 골똘히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있다 나란히 앉아있는 아내의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눈이 마주친 아내가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

"응.. 왜 잘렸나 싶어서."

"그래서, 이유를 찾았어?"

"음.. 글쎄, 뭐 인사팀장이 말했던 회사가 원하는 영업과장으로서의 모습이 없었기 때문이겠지? 결국 내가 부족했던 거지 뭐."


내 얘기에 아내는 '뭐라 위로의 말을 해줘야 하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봤다.


"아이고 됐어. 위로 안 해줘도 돼. 마음 많이 진정됐어. 고마워 정말. 너도 많이 놀랐을 텐데 괜찮다 해줘서."

"아니야, 난 진짜 괜찮아. 이참에 조금 쉬어간다 생각하자. 천천히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잖아. 나 신경 쓰지 말고 일단 며칠 좀 쉬어. 얼마나 놀랐겠어 겁도 많은 아저씨가."

"놀라긴 많이 놀랐지. 근데 또 하루 지났다고 정말 괜찮아졌어. 내일까지만 좀 쉬고 월요일부턴 아침부터 노트북 들고 도서관 가서 취업포탈 샅샅이 뒤질 거야. 암만 생각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는 더 좋은 회사 들어가는 거, 이거 하나밖에 없는 거 같아. 두고 봐. 정말 좋은 회사 들어갈 거야!! 복수할 거야!!"


아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둘이서 멍하게 바라봤던 비 오는 날의 바다가, 따뜻하고 향기로운 커피가 한 목소리로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그래, 난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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