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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브라운 Jun 22. 2024

우리 가족, 첫 여행을 떠나다

#2 달라도 너무 달라


둘째 날 아침.


숙소가 넓을 거라는 큰형의 말이 무색하게 방이 두 개밖에 없었던 탓에 지난밤 작은형과 난 거실에서 잤다. 침대방에선 부모님이 주무시고 남는 방은 예민한 큰형에게 양보했다. 원체 예민해 집에서 같이 살 때도 화장실 수도소리에도 잠을 설치던 큰형. 이에 반해 나와 작은형은 머리만 갖다 대면 바로 잠드는 타입이라 거실이 넓고 편했다.


핸드폰 알람 소리에 눈을 떠보니 아침임에도 해가 비치지 않았고 설마 하는 마음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봤더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제 일기예보를 통해 비가 올거란걸 알고는 있었지만, 예상은 했지만 막상 내리는 비를 보니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첫 가족여행인데.. 어제만 해도 해가 쨍쨍했는데! 하필 오늘!


오늘 일정은 양양에서 출발해 강릉을 훑고 삼척으로 내려가는 여정이었는데 이렇게 비가 와버려서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졌다. 아침을 대충 해결하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아침 댓바람부터 대책회의를 했다. 어떻게 온 여행인데, 날씨가 흐리다고 마냥 숙소에만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회의를 하면서 우린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여행에 있어서 아빠와 난 관광파, 큰형과 둘째 형은 휴양파라는 걸. 아빠와 난 비는 오지만 그래도 우산이 있으니 갈만한 데는 가보자는 의견이었고 형들은 비 오는데 그냥 숙소에서 쉬는 게 어떻겠냐고, 숙소가 있는 삼척으로 이동해 그쪽에 있는 예쁜 카페에 가 있는 게 어떻겠냐 했다. 엄마는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계셨고 본의 아니게 이번 여행의 일정을 짰던 난 괜한 의무감에 어떻게 해서든 상황을 마무리해야겠다 싶었다.


결국 일단 가기로 한 강릉 경포대로 출발하고 가서 거기 날씨를 보고 생각하자 했다. 숙소를 나와 양양에서 가기로 했던 곳 중 하조대 한 곳만 들렀는데 비는 왔지만 풍경이 너무나 예뻤다. 저 아래에서 거세게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비 오는 날과 잘 어우러져 멋진 풍경으로 다가왔다. 아 그런데 비가 많이 와서 그랬나.. 내 폰으로 찍은 사진이 없다.


강릉으로


비가 제법 내려 얼른 차로 돌아온 우리는 경포대로 출발했다. 강원도는 참 넓다. 하조대에서 경포대까지도 거리가 35km나 됐다. 하긴 이번 여행은 속초/양에서 강릉을 거쳐 삼척까지 이동거리만 100km가 넘는다. 이 거리면 서울에서 천안까지 가는 거리다.


경포해변에 도착하니 역시나 비가 내리고 있었고 차에서 내리니 거센 바람이 우릴 맞이했다. 비는 둘째치고 바람이 너무나 강하게 불었다. 기온도 낮아 생각지도 못한 추위에 맞닥뜨려 도저히 해변을 거닐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부모님도 조금 걸으시더니 추우시다며 차 안으로 들어가자 하셨다. 고민이 깊어졌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던중 아내와 강릉에 왔을 때 갔던 아르떼뮤지엄이 생각났고 비도 오고 날씨도 추우니 실내로 가는 게 어떻겠냐며 부모님과 형들을 설득해 결국 그곳으로 향했다. 일단 실내라는 말에 추운 날씨가 부담이셨던 부모님은 좋다 하셨고 아르떼뮤지엄을 모르고 있던 형들은 '조명이랑 영상으로 만든 가족 체험형 뮤지엄'이라는 내 말만 듣고선 당최 어떤 곳인지 모르겠다 했다. 난 일단 가보면 안다고, 생각보다 괜찮으니 걱정 말라며 형들을 안심시켰다.


아르떼뮤지엄



결과적으로 아르떼뮤지엄은 안 왔으면 정말 서운했을 곳이 됐다. 부모님과 형들은 시작부터 끝까지 연신 감탄사를 내뱉기 바빴다. 나도 한 번 와보긴 했지만 다시 봐도 정말 멋있었다. 비가 와서인지 사람들이 엄청 많긴 했는데 그래도 구경하는 내내 사진도 많이 찍고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특히나 엄마가 맘에 들어하셔서 기분이 뿌듯했다. 관람을 끝내고 나오시며 엄마는 "아따, 안 왔으면 서운할 뻔했어야." 라며 좋아하셨고 아빠도 와보길 잘했다며 만족해하셨다. 형들 역시 나중에 강릉에 오게 되면 애들과 한 번 다시 와야겠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아르떼뮤지엄을 나와 점심식사를 마쳤는데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결국 형들은 먼저 삼척 숙소로 가서 체크인을 한 뒤 쉬고 있겠다 했고 난 부모님을 모시고 안목해변 카페거리에 들렀다 가기로 했다.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왕 온거, 무얼하든 가족이 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 좋을텐데. 물론 형들이 직업상 평소 휴식이 부족하다는 건 잘 안다. 그래도 이번 여행에선 피곤하더라도 부모님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주길 바랐는데. 가족이라도 마음이 다 같을 순 없는거니까.


안목해변


형들이 먼저 삼척으로 출발하고 난 부모님과 안목해변 카페거리에 갔다. 평소에도 사람이 많은데 비까지 오니 여기 있는 대부분의 카페들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몇 개의 카페를 들어갔다 나온 끝에 다행히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고 아빠의 '맥심처럼 단 커피'와 엄마의 '프리마 안 들어간 커피'를 주문해 가져왔다. 아빠는 아직도 친구분들과 여행을 가시면 그곳의 유명한 곳들은 다 가보신다 하셨다. 이런 부분은 내가 아빠를 많이 닮았다. 나도 여행을 할 땐 휴양보단 무조건 관광이니까. 이번 여행 계획을 짤 때도 아빠는 양양, 강릉, 삼척의 가볼 만한 곳들을 검색해서 많이 보내주셨다.


엄마는 이렇게 바다 보이는 곳에 아들과 앉아있으니 너무 좋다고 하셨다. 확실히 요즘 엄마의 얼굴이 많이 좋아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여기저기 아프신 곳도 많고 식사도 많이 못하셔서 걱정이었는데 언젠가부터 표정도 밝아지셨고 말씀하실 때 목소리도 꽤나 활기차시다. 언제까지고 이런 모습이시길.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아마도 생애 처음이었을 부모님과의 셀카를 찍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 까, 이제 슬슬 일어나자는 아빠의 말씀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자리를 정리했다.

형들에게 전화를 해보니 체크인을 하고 숙소에 들어왔는데 역시나 삼척도 비가 내리고 있다 했다. 오늘 저녁은 숙소 근처의 대게집에 예약을 해뒀는데 숙소로 픽업을 와준다고 해서 일단 숙소에 도착하면 좀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부모님을 모시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삼척을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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