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 무너지지 않게 붙잡는 멜로디

by 마음뚠뚠

사람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 문장의 말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한 곡의 음악이 될 때도 있죠.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멜로디가 그렇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처음부터 강하지 않습니다.


대신
천천히 올라옵니다.


낮은음에서 시작해
조금씩 숨을 넓히고
선율이 길게 이어집니다.


그 멜로디는
감정을 밀어 올리기보다
감정을 붙잡습니다.


무너지지 않도록.


사실 라흐마니노프는
한 번 크게 무너진 적이 있습니다.


1897년
그의 교향곡 1번 초연은
혹독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혹평 속에서
그는 깊은 우울에 빠졌고
몇 년 동안
거의 아무 곡도 쓰지 못했습니다.


작곡가에게
침묵은
가장 긴 어둠입니다.


그 시간을 지나
그가 다시 쓴 곡이
바로 피아노 협주곡 2번입니다.


그 곡의 첫 화음은
조용하지만 단단합니다.


마치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하는 순간처럼.


처음에는
낮은 종소리 같은 화음이
천천히 쌓이고
그 위에
긴 멜로디가 펼쳐집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그때부터
‘붙잡는 음악’이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viN1tuXbzc&t=905s


조성진의 연주를 들으면
그 멜로디의 힘이 더 또렷해집니다.


그는 라흐마니노프를
감정으로만 연주하지 않습니다.


왼손의 화성을 단단히 두고
선율을 길게 이어 갑니다.


그래서 음악이
흘러가면서도
흩어지지 않습니다.


특히 2악장의 선율은
마치 숨을 고르는 시간처럼
조용히 이어집니다.


그 멜로디는
눈물을 터뜨리게 하기보다
마음을 딱 붙들어 줍니다.


라흐마니노프의 멜로디는
특별합니다.


짧지 않습니다.
길고 깊습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은
그 선율을 따라가며
자신의 감정을
조금씩 정리하게 됩니다.


마치
손을 잡고
어두운 길을 건너는 것처럼.


삶에도 그런 순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완전히 괜찮아진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시 무너질 것 같지도 않은 상태.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음악이
우리의 마음을 붙잡습니다.


라흐마니노프의 멜로디처럼.


오늘도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그런 멜로디가
천천히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선율이
여전히 흐르고 있으니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QEoDyuUZ06Y


https://www.youtube.com/watch?v=sxln9hAJQ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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