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나보다 앞서 있을 때 - 번외

by 마음뚠뚠

어떤 연주는
설명보다 먼저 도착합니다.


듣는 순간
이해하기 전에
이미 마음이 움직입니다.


임윤찬의 연주를 들었을 때가 그랬습니다.


그의 연주는
크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과장된 몸짓도 없고,
감정을 밀어붙이는 표정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음악은 아주 또렷하게 들립니다.


아니,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남습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많은 사람들이
그 연주를 보고 놀랐습니다.


속도나 기술 때문이 아니라
음악이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디까지 가야 할지 알고 있는 사람처럼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이어집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PJL488cfRw




베토벤을 연주할 때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격정적인 음악인데
크게 과장되지 않습니다.


감정은 분명히 있는데
감정이 그다지 앞서지 않습니다.


구조가 먼저 서 있고
그 위에
감정이 툭 던지듯이 놓입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음악이 나보다 앞서 있을 수 있겠구나.”


우리는 보통
감정을 먼저 느끼고
그것을 표현하려 합니다.


하지만 임윤찬의 연주는
이미 음악이 그 자리에 있습니다.


연주자는
그것을 따라갑니다.


그래서 그의 연주에는
억지로 만드는 느낌이 없습니다.


설명하려 하지 않고,
보여주려 하지 않고,
그저
흐르게 그냥 둡니다.


가끔은
그 태도가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무언가를 더하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일.


내 감정이 아니라
음악 자체를 앞에 두는 일.


그의 연주를 들으며
나는
내 일상도 비슷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내가 앞서려고 하지 않고
흐름을 먼저 두는 것.


감정을 밀어붙이기보다
조용히 따라가는 것.


다소 불편해도

한 발짝 떨어져서 나를 볼 수 있는 그런.


음악은
항상 거창한 순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 일 없는 날에
더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


그때
그의 연주는
이상하게도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듭니다.


음악이 나보다 앞서 있을 때
나는 조금 더 편해집니다.


따라가도 괜찮고,
멈춰도 괜찮고,
그저 듣고 있어도 괜찮은 상태.


그래서 가끔은
그의 연주를 틀어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 흐름을
조용히 따라가 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JtPggFNZQU&list=RDGJtPggFNZQU&start_radio=1


https://www.youtube.com/watch?v=PEFY8NZuUT8



https://www.youtube.com/watch?v=d9tl9SycJ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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