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위로는
너무 늦게 도착합니다.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고,
감정이 한 바퀴 돌아
조용히 가라앉은 뒤에야
그 위로가 우리 곁에 옵니다.
그럴 때
요하네스 브람스가 잘 어울립니다.
특히 그의 인터메초를.
브람스는 젊은 시절부터
큰 기대를 받았던 작곡가였습니다.
스무 살이 조금 넘었을 때
슈만은 그를 보고
“새로운 길을 열 인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는
그에게 오래 남는 그림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
베토벤 이후의 작곡가라는
무거운 자리에서 음악을 써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늘 단단하고 깊었습니다.
쉽게 웃지 않았고,
쉽게 울지도 않았습니다.
브람스의 말년 피아노 작품들은
특별히 더 조용합니다.
큰 형식도,
화려한 기교도 없습니다.
대신
작은 선율이
조용히 이어집니다.
그중에서도
인터메초 Op.118 No.2는
가장 유명한 곡입니다.
마치
늦은 밤 창가에 앉아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처럼.
https://www.youtube.com/watch?v=dxiMbPo7iGU
조성진의 연주를 들으면
이 곡의 온도가 더 또렷해집니다.
그는 브람스를
과장하지 않습니다.
소리를 크게 밀어붙이지 않고
멜로디를 조용히 둡니다.
왼손의 화성은
천천히 흐르고
오른손의 선율은
숨을 고르듯 이어집니다.
그 연주를 듣고 있으면
브람스의 음악이
왜 말년에 더 작아졌는지
조금 이해하게 됩니다.
젊은 시절의 음악은
세상을 향해 말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음악은 점점
자신을 향하게 됩니다.
브람스의 인터메초는
그런 음악입니다.
누군가를 설득하려 하지 않고
무언가를 증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곁에 앉아 있습니다.
위로도 그렇습니다.
젊을 때의 위로는
빠르고 강합니다.
“괜찮다”라고 말하고
“다 지나간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위로의 방식도 달라집니다.
말하지 않습니다.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저
같이 앉아 있습니다.
브람스의 음악처럼.
조성진의 연주를 들으며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위로는
언제나 제때 도착하는 것은 아니지만
늦게라도 오면
그 나름의 온도가 있다는 것.
젊은 날의 위로가
불꽃이라면
브람스의 위로는
난로의 온기 같습니다.
크게 타오르지 않지만
오래 남아 있는 열.
오늘도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급히 정리하지 않겠습니다.
브람스의 인터메초처럼
조용히 두겠습니다.
늦게 도착한 위로가
이 음악 속에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