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 <물의 희롱>— 통제하지 않아도 흐르는 것들로

by 마음뚠뚠

물은 형태를 고집하지 않습니다.
담는 그릇에 따라 달라지고,
빛에 따라 색을 바꾸고,
바람에 따라 방향을 틉니다.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모리스 라벨의
물의 희롱 (Jeux d'eau)를 들을 때마다
저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이 자꾸 납니다.


라벨은 겉으로 보기엔 매우 정교한 사람이라고 느껴집니다.

완벽주의자. 섬세하고 계산적인 작곡가.
오케스트레이션의 장인.


그는 악보를 집요하게 다듬었고,

감정에 휩쓸리기보다
구조를 끝까지 정제하는 것 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종종
“차갑다”는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오래 듣다 보면
그 안에는 차가움이 아니라
절제된 감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의 희롱〉은
라벨이 비교적 젊은 시절에 쓴 곡입니다.

이 곡은 정말 화려한 기교로 시작합니다.
아르페지오가 반짝이며 흘러가고,
음표들은 서로 부딪히며 우다다 튀어 오릅니다.


겉으로 보면
물방울이 장난치듯 흩어지는 모습.


그러나 그 아래에는
단단한 틀이 숨어 있습니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완전히 흩어지지 않는 이유.


라벨은 물을 묘사하면서도
그 흐름을 철저히 고려했습니다.


그의 생애를 보면
그 역시 쉽게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전쟁에 참전했고,
이후 어머니의 죽음을 겪었습니다.

그 상실은 깊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슬픔을
폭발시키지 않았습니다.


대신
음악 속에 녹였습니다.


겉으로는 섬세하고 우아하지만
그 안에는
깊은 고독이 흐르고 있습니다.


〈물의 희롱〉을 다시 들으면
그 물은 단순한 장난이 아닙니다.


빛 아래에서 반짝이지만
깊이를 숨기고 있습니다.


라벨은
감정을 직접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통제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흐르게 두었습니다.


그 미묘한 균형이
이 곡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자주
모든 것을 붙잡으려 합니다.


감정을 설명하려 하고,
미래를 계획하려 하고,
흐름을 조절하려 합니다.


그러나 물은
통제 속에서만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흐르기 때문에
빛을 반사합니다.


라벨의 삶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계산했지만
삶은 계산대로 움직이지 않았겠죠.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흐름을 잃지 않았습니다.


〈물의 희롱〉은
그의 선언처럼 느껴집니다.


“나는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통제하지 않아도 흐를 수 있다.”


그 자유는
무질서가 아니라
깊은 이해에서 나옵니다.


저는 이 곡을 들으며
조금 덜 붙잡으려 합니다.


모든 것을 계획하지 않고,
모든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흐르는 대로 두는 것.


그렇다고 해서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은
형태를 바꾸면서도
본질을 잃지 않습니다.


라벨의 선율처럼.


https://www.youtube.com/watch?v=J_36x1_LKgg


https://www.youtube.com/watch?v=Wi1qXrKlC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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