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악은
삶을 거치고 나서야 이해됩니다.
로베르트 슈만의
<Träumerei>를 처음 들었을 때
저는 그저 “예쁜 곡”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한 곡이기도 하죠
저는 개인적으로
임윤찬의 트로이메라이 연주를 좋아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fp4UHImq9g
도입부부터 시간을 넓게 열고
한 음 한 음에 머무는 시간이 깁니다.
곡이 마치 꿈속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페달을 정말 깊고 길게 밟으면서
이어지는 화성이 부드럽게 섞여서
공간감이 정말 크게 느껴져
약간 몽환적입니다.
한 주제 끝에서 크게 숨 쉬어서 멜로디 고조 부분에서 시간 좀 더 확장되어서
이건 아이의 꿈이 아니라 어른의 회상으로 전 느껴집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ImVFozA0NI
손열음의 연주와 비교해 보면
그녀가 기본 템포가 자연스럽게 흐름 유지해서
과장 없이 담백하게 느껴지고,
페달을 짧고 정교하게 연주해
화성 분리가 또렷해
전체적으로 맑고 투명하게 느껴져
정말 동화 같은 어린이 느낌이라
지나간 꿈의 느낌의
임윤찬의 연주와 크게 비교가 됩니다.
다소 짧고, 조용하고,
크게 요동치지 않는 선율.
슈만의 생애를 알고 들으면
이 음악은 "예쁜 곡" 만은 아니더군요
슈만은 원래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선천적인 손가락 장애와 무리한 연습으로 인한 부상으로
연주자의 길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꿈이 먼저 무너진 사람.
그 대신 그는
작곡과 글쓰기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음악 평론가로 활동하며
젊은 작곡가들을 소개했고,
내면의 감정을 음악으로 풀어냈습니다.
그의 음악에는
늘 두 개의 자아가 공존했습니다.
충동적이고 열정적인 ‘플로레스탄’,
사색적이고 섬세한 ‘오이제비우스’.
극단과 극단 사이를 오가던 삶.
그는 연상의 클라라 슈만을 사랑했고,
오랜 반대 끝에 결혼했습니다.
클라라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고,
슈만은 그녀의 연주를 통해
자신의 음악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점점 흔들렸습니다.
우울과 환청,
불안과 침잠.
결국 그는 스스로 라인강에 몸을 던졌고,
이후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트로이메라이〉는
그가 비교적 젊었을 때,
《어린이 정경》이라는 피아노 모음곡 중 한 곡으로 쓰였습니다.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을 그린 곡들.
그중에서도 〈트로이메라이〉는
가장 조용합니다.
왜 그렇게 단순할까요.
아마도 슈만은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삶이 점점 복잡해질수록
기억은 더 단순한 형태로 남는다는 것을.
이 곡을 들으면
왼손은 반복되고,
오른손은 조심스럽게 노래합니다.
감정을 과장하지 않습니다.
눈물을 밀어 올리지 않습니다.
대신
가만히 놓아둡니다.
마치 슈만이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듯합니다.
슈만의 생애를 떠올리면
〈트로이메라이〉는
단순한 꿈이 아니라
“잃어버린 가능성에 대한 회상”처럼 들립니다.
피아니스트가 되지 못한 꿈,
완전히 안정되지 못한 정신,
그러나 끝까지 음악을 놓지 않았던 마음.
그의 선율은
날카롭게 울지 않습니다.
대신
기억을 부드럽게 만집니다.
기억이 부드러워진다는 것은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저
그때의 나를
조금 덜 가혹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상태.
슈만은
자신의 불안과 싸우며
음악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 음악은
우리의 불안도
조용히 감싸줍니다.
이번에 저는
기억을 다시 꺼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날카롭게가 아니라
조용히.
슈만의 선율처럼
흔들리면서도
부드럽게.
오늘은
완벽해지려 하지 않겠습니다.
조금 불안해도,
조금 모자라도,
그때의 나를
그대로 두겠습니다.
피아노 위에 남아 있는
짧은 멜로디처럼.
https://www.youtube.com/watch?v=3fhKaAX5d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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