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시칠리아노〉 — 반복이 나를 지탱하는 방식

by 마음뚠뚠

어떤 날은
강해지는 것보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감정은 오르내리고,
생각은 자주 바뀌고,
마음은 쉽게 기울어집니다.


그럴 때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시칠리아노〉를 듣습니다.


부드럽게 흔들리는 6/8박자.
느리고 단순한 리듬.

같은 패턴이 조용히 반복됩니다.


이 곡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격정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시칠리아노’라는 이름은
원래 목가적인 춤곡 형식에서 왔습니다.


잔잔하게 흔들리며
마치 물결처럼 이어지는 리듬.


왼손은 일정하게 흐르고,
오른손은 그 위에서 노래합니다.


같은 리듬이 계속됩니다.
그러나 그 반복은 지루하지 않습니다.


조금씩 다른 숨,
조금씩 다른 울림.


https://www.youtube.com/watch?v=wmRtH0TYkwc&list=RDwmRtH0TYkwc&start_radio=1



항상 임윤찬의 연주를

먼저 찾게 됩니다.


그의 바흐는
과장되지 않습니다.
속도를 과하게 늦추지도,
감정을 덧붙이지도 않습니다.


대신
반복을 그대로 둡니다.


왼손의 패턴을
한 번도 가볍게 넘기지 않습니다.


같은 리듬이 돌아올 때마다
그는 그 자리에 정확히 놓습니다.


그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복을 ‘버티는’ 것이 아니라
반복을 ‘신뢰하는’ 느낌.


바흐의 음악은
위로를 직접적으로 건네지 않습니다.

“괜찮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냥 흐름을 유지합니다.


한 박자도 서두르지 않고,
한 마디도 무너지지 않게.


그 구조가
감정을 안전하게 담습니다.


삶도 그렇습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자리에 앉습니다.


그 반복이 때로는 지루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반복이 저를 지탱했습니다.


바흐의 〈시칠리아노〉처럼
크게 변하지 않는 리듬이
하루를 붙잡고 있습니다.


임윤찬의 연주를 보면
젊은 연주자가
이 오래된 반복을 얼마나 존중하는지 느껴집니다.


그는 감정을 얹기보다
구조를 드러냅니다.


같은 패턴이 돌아올 때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단단하게.


반복은
퇴보가 아니라
정제입니다.


격정은
순간적으로 우리를 들어 올립니다.


그러나 반복은
오래 붙들어 줍니다.


바흐의 시칠리아노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지만
천천히 자리를 잡습니다.


바람이 불어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 나무처럼.


오늘도 하루는 반복됩니다.


그러나 그 반복이
저를 갉아먹는 것이 아니라
저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겠습니다.


같은 리듬,
같은 박자,
같은 자리.


그 위에서
조금씩 더 깊어집니다.


바흐의 시칠리아노처럼.



https://www.youtube.com/watch?v=FHqytGT0lqo

랑랑의 시칠리아노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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