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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자까 Mar 03. 2021

명예 고향 Heavensinki

 작년에 교환학생으로 반년간 머물렀던 헬싱키에 여행을 왔다. 나는 1년 전 도망치듯 한국을 떠나 겨우내 영하 15도를 웃도는 헬싱키에서 뜨겁고 찬란했던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는 사랑하는 친구 혬에게도 교환학생을 갈 거면 꼭 헬싱키로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르고 내 바람대로 혬은 반년간 헬싱키에 머물게 되었다. 나는 혬의 집에서 신세를 지며 함께 헬싱키를 여행하고 있다.    


 한국에 돌아온 뒤로 헬싱키에서 못하고 돌아온 것들이 생각나 가슴 한 켠이 저릿하고 아쉬웠다. 몇 개월이 흘렀을 뿐인데 벌써 아주 먼일 같아져서 슬프기도 했다. 나는 황홀했던 시간이 가져온 무기력을 극복할 동기가 필요했고 헬싱키를 다시 다녀오면 그때 사진을 보며 누워서 눈물 흘리는 일이 줄어들 것 같아 추억이 되기엔 좀 이른 듯한 시기에 다시 방문한 것이다.


 비행기를 타고 반타공항에 내리자 19년 1월 7일, 처음 핀란드 땅을 밟았던 날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공항에 있는 편의점에서 유심카드를 산 후 벤치에 앉아 낑낑대며 바꿔 끼웠던 일, 길을 잃을까 봐 구글맵 로드뷰로 수십 번씩 봤던 집 찾아가는 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잃은 나에게 날이 추우니 자기 집으로 가서 방법을 찾아보자며 호의를 베풀어 주었던 핀란드 아주머니까지...세상은 하얗고 눈 덮인 땅은 보송했지만 긴장감에 뜨겁게 굳어버린 몸으로 23kg 캐리어 2개를 끌고 가던 그 날의 서러움을 나는 기억한다.


 교환학생 파견 직전 학기에 나는 한국을 떠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행정적 절차들과 학교 교환학생 파견 부서와의 갈등, 엄마의 입원, 자취방 이사로 완전히 패닉 상태였다. 생애 처음 혼자서, 유학생으로서 북유럽으로 긴 여행을 떠나는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골절상으로 다리에 철심을 박은 엄마는 짐을 싸는 내 뒤통수에 ‘어떡하냐...잘 살 수 있겠어?’를 내내 연발했고 필요한 물건들을 사러 오전에 나갔다가 오후에 돌아오면 발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출국 날 밤새 엄마랑 오빠랑 이야기를 나누고 뒤숭숭한 마음으로 헬싱키행 비행기를 탔던 기억이 난다.


 배낭여행을 가본 적도 없고 혼자서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떠나본 적도 없는 나는 ‘휘바휘바!’ 한 마디를 머리에 담고 핀란드에 도착했다. 겨우 찾아 들어간 기숙사에서 주먹으로 입을 막은 채 응...응...만을 반복했던 엄마와의 통화를 마치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지금은 첫 날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행복했던 일 뿐이었다고 회상하지만, 그때 썼던 일기장을 보면 잿빛 글씨가 가득하다. 세상에서 그렇게 외롭고 쓸쓸한 일기는 없을 것이다.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강박과 부담, 아는 이 없는 낯선 환경에서의 예민함이 묻어난 글자들이었고 나는 언제나 그랬듯 재빨리 많은 것에 익숙해져서 더할 나위 없는 스물한 살을 보냈다.


 어제는 혬과 함께 사는 한국인 친구 민이와 저녁을 먹는데 민이가 한국에 돌아가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무엇이었냐 물었다. 퍼뜩 생각이 안 나서 얼버무렸는데 그럼 헬싱키에 돌아와서 무엇을 하고 싶었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살던 이타케스쿠스에서 사람들이 별로 없는 산책로를 노래 들으며 걸었던 거랑 파실라 공원에서 돗자리 깔고 맥주랑 감자칩 먹었던 거’라고 대답했다. 이 글의 시작 부분에서 ‘못하고 돌아온 것’이 생각나 저릿했다고 썼는데 나는 분명 ‘하고 돌아온 것’이 생각나 저릿했던 거였다. 시간을 돌려 그때를 다시 겪을 수는 없으니 나는 여행을 마친 후에도 더 오래, 천천히, 깊숙이 저릿했구나.    


 혬은 오늘 나한테 ‘너 좀 유해진 것 같다’라고 했다. 내가 얼마나 예민했고, 예민한 사람인지 알기에 그게 무슨 뜻인지 알지만 왜냐고 물었다. 혬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댔다. 그걸 들으며 그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난 일 년 동안 세상이 아주 넓다는 것, 세상엔 내가 모르는 게 아주 많다는 것, 세상은 무작위적이라 내가 예측할 수 있는 건 아주 작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은 까닭이라 생각했다. 그와 더불어 헬싱키는 나에게 알아듣지 못해도 반가운 언어, 이역만리 향수(香水), 휘바휘바 따위를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 헬싱키 도서관에 앉아 이어폰을 빼고 고막 주변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핀란드어를 들으며 이 순간 때문에 나는 또 저릿해지겠구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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