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메리크리스마스
색이 빠진 낙엽들을 떨구어가는 나무 밑에 하나 둘 떨군 잎을 담은 포댓자루가 놓여져있는 걸 보고 있자니 어느새 겨울이었다.
계절냄새가 바뀌어가는 걸 눈치챈 시점부터 크리스마스 준비는 시작되어야 한다.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당일보다, 그날을 기다리는 설렘을 즐기는 것 같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겠다.
퇴근을 한다. 버스에서 내려 5분 정도 걷다 보면 아파트 단지가 눈에 닿기 시작한다. 그러면 시선을 대각선으로 올려 저어기 위를 바라보며 걷는다.
운 좋게 하늘이 맑은 날이면, 야야 달 지금 진짜 선명하고 예뻐 빨리 봐. 얼른. 그런 메세지를 바로 친구에게 보내는 게 겨울 퇴근길의 소소한 루틴이자 재미다.
시린 공기가 뺨을 스치는 걸 마다하고 한참을 볼 만큼 달이 예쁜 그런 날이 있다. 만져볼 수도 없지만 분명 이 공기의 온도와 상반되게 딱 적당히 따뜻할 것만 같다.
예쁜 걸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적지 않은 행운이다.
어제도 어김없이 아파트 단지가 보이기 시작하고 위를 보려고 했는데 그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게 있다.
아파트가 보이고, 늦은 시간인지라 대부분이 어두워진 창문이 보이고, 그 중 한 곳에 무언가 반짝반짝.
노란 점들이 촘촘히도 이리저리 얽혀있는 게 딱 눈에 들어왔다. 아 겨울이구나.
혹시 다른 창문들에도 있을까 한참 고개를 들고 걸어갔다.
그 결과 서너 개의 빛나는 창문을 더 발견해 열심히 줌을 당겨 찍어 메세지를 보냈다. 야야 트리 발견!
벚꽃과 낙엽이 아름다운 이유는 고개를 젖혀 경치를 감상할 여유조차 없는 이들에게도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기 때문이란다.
그 날 트리들이 베란다에, 그것도 바깥에서 아주 잘 보이는 쪽에 있었던 것은 거기가 제일 적합해서, 혹은 딱히 둘 곳이 없어서, 아니면 그냥 아무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이 계절의 설렘을 나누려는 누군가의 낭만이 이유일지도 모른다고 멋대로 생각해보았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우연히 발견한 낭만은 기쁘기만 하다.
우리 집 트리가 바깥 이들에게도 잘 보일지 모르겠다. 내일은 조금 더 잘 보이는 곳에 옮겨놓아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