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느새 밤이다
친할머니가 월경날 허리에 두르라고 사 준 작은 장판 비슷한 것을 켜 발 언저리에 둔다.
수족냉증 때문에 식었던 발이 조금씩 데펴 진다.
작업할 때 쓰는 책상은 침대 옆에 바싹 붙여 두어, 이 시간에는 이것두것 올려 둔다.
푸른 빛을 내면서 바글바글 빠르게 끓는 커피포트와 500 미리가 넘게 들어갈 정도로 크면서 유리로 되어있어 아주 예쁜 유리컵,
책에 줄을 그을 때 쓸 입시 때 쓰던 2H 연필, 역시나 책에 사용 할 얇은 인덱스가 그것이다.
선물로 받은 여러 가지 맛을 조금씩 맛볼 수 있는 차 티백 세트에서 발견해, 마음에 들어 따로 한 박스를 시킨 영귤차를 아주 예쁜 유리컵에 넣는다.
한 티백을 몇 번이고 뜨거운 물을 리필해 우려먹을 때, 매번 부엌까지 오가니 흐름이 끊겨 구입한 커피포트에 전원을 킨다.
금방 끓어올라 좋긴 하지만 그만큼 당장 차를 마실 만한 적당한 온도를 넘기기 쉽상이니 주의한다.
하지만 오늘도 온도 조절에 실패해 여분의 상온의 물을 부어 온도를 맞춘다.
차가 서서히 우러나 물의 색이 변해간다.
핸드폰으로 배경음악을 튼다.
가사가 없어야 하고, 소음으로 느껴지지 않아야 하고, 적어도 30분 이상의 길이여야 한다.
이전에는 ASMR 유튜버의 '깊은 숲속의 도서관 ASMR' 이었고,
지금은 영화 <윤희에게> 노래 모음집이다.
며칠 전 집 근처 독립영화관에서 재개봉해주어 볼 수 있었다.
여전히 좋았고 음악이, 나레이션이, 여전히 좋아 찾게되나 보다.
윤희와 준은 이 밤을 어떻게 보낼까.
소임을 다 한 핸드폰은 시야에 걸리면 용건이 없어도 괜히 들여야 보게 되니 이불 밑으로 숨겨버린다.
다 읽지 못한 책을 펼친다.
가끔씩 나오는 모르는 단어들은 사전을 찾아 메모장에 뜻과 함께 적어둔다.
다시 핸드폰을 숨긴다.
가끔씩이라고 했지만 부끄럽게도 그 경우가 많을 때도 있어 그럴 때는 핸드폰이 나오고 들어가는 일이 잦아진다.
한글에도 이렇게나 모르는 말들이 많구나.
마음에 박힌 문장들은 책상에 올려둔 2H 연필로 줄을 주욱 긋고 인덱스를 붙인다.
주욱- 그을 예정이었는데 언제나 조금씩 삐뚤댄다.
에세이의 경우 저자가 추천하거나 인용하는 책의 문장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 경우엔 책 위에 세로로 인덱스를 붙인다.
나와 결이 맞는 작가가 추천하는 책은 높은 확률로 또다시 결이 맞기 때문이다.
눈꺼풀에 무게가 더해지는 시간이 가까워진다.
눈 건강에 좋지 않을 걸 알지만 방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킨다.
무게가 더 무거워지면 불을 끄는 것 조차 귀찮아질 걸 아니 그리 한다.
발이 제 온도를 찾고 그에 더해 따듯해졌다
책을 마저 읽어간다.
눈꺼풀이 아우성을 친다.
책 사이에 마음에 드는 책갈피를 꽂아 책상 위에 둔다.
방에 불은 이미 꺼져있으니 무드등의 전원만 끈다.
이불을 비집고 들어간다.
오늘도 어느새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