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담 조셉 Dec 21. 2023

감정 쓰레기통

사람은 아마도 하루에 몇 만 번의 감정을 느낄 거다. 

원시적인 감정부터, 그저 스쳐 지나가는 가벼운 감정. 

다시 어떤 계기로 스멀스멀 올라오는 묵혀둔 감정일 수도 있고. 어떤 이는 그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테고 어떤 사람은 소화하기가 버거워 다시 속에 집어넣는 경우도 있을 거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에게는 어떤 묵은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 있을까. 


아빠의 사업이 실패하고 우리가 오랜 고생길에서 겨우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무려 10년의 세월이 지나고 내가 20대 후반즈음이 되었을 때다. 그땐 집안 막내인 나도 사회에 나가 돈을 벌 때라 이제 바닥 친 인생이 바운스를 타고 오를 때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방에 곰팡이 냄새가 퀴퀴하고 바퀴벌레 나오는 대학가 뒷골목 집에서 이제는 온기 훈훈한 아파트에서 부모님은 살게 되었으니 그간 고생했던 세월은 결국 이리 마무리 되는구나 하고 생각해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갑자기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 

지난번"목마름으로"라는 글에서 적었던 것처럼, 엄마에게 과거 일을 반추하며 나를 믿어주지 않은 케케묵은 과거 일을 다시 꺼내어 억지 사과를 받아내는 일도 그러했다. 나는 그 지난 고생길이었던 10년 동안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IMF라는 특수 상황이었고 그런 고생을 일부러 자식에게 시키는 부모님은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원망이나 나쁜 감정들로 가족이 와해되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무엇에 기인해서 그런 마음이 드는 걸까.

원망하지 않는다고 선만 그어놓고 마음 깊은 곳에서는 원망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었던 걸까. 

이제 마흔인데 갱년기가 좀 일찍 온 건가? 


그땐 너무 사는 게 바빠서 내가 힘든 마음인지 위로받고 싶은 마음인지 내색할 겨를이 없었다. 물론 부모님도 그럴 여유가 없었고. 

오빠는 괜찮은 학과를 택해서 바로 밥벌이가 가능했지만 나는 어문계열이라 더 어정쩡한 사항인 것도 그랬다. 교환학생을 독일로 다녀오고 나서 독일 병이 걸려 '어떻게 다시금 독일로 나갈 수 있을까'를 한창 고민하던 그때에, 독일 항공 루프트한자 승무원으로 들어가면 한 달의 반은 거기에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덥석 면접을 보러 갔다. 아빠는 내게 루프트한자와 관련된 기사를 오려서 내게 주었고 나는 그때 아빠 몰래 그 기사 스크랩을 다 쓰레기통에 버렸다. 독일에 미쳐있던 나에게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게 유학을 보내주겠다는 당당한 선언이 아니라 기사 스크랩 따위라는 게 그냥 비참했다. 그리고 서류 면접을 통과하고서 2차 면접을 안 갔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 부모님이 무리를 해서 내 유학을 보내주었더라면 우리는 아직도 곰팡이 서린 그 대학가 뒷골목 작은 집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선택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그때 내 상황이,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그 굴레가 그땐 비참했다. 

모든 속사정을 우리 가족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내색할 수가 없었다. 

너무 열심히 살고 있는 엄마가 있기 때문에 힘들지만 힘들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훗날 엄마는 내게 고생 많이 했다며 등을 토닥여주었을 때 나는 그런 감정들이 다 소화가 된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아니었던가보다. 그리고 나는 한국을 떠나왔기 때문에 툭 터놓고 말할 기회가 없었기도 했고 서로 다른 곳에서 열심히 살아내기가 바빴으니까. 


원망이 아니라고 했지만 지금 반추해 보면 일부 원망이 맞았던 거 같다. 




사사건건 모든 일이나 감정들을 부모님께 알리지 마.
그리고 니 그 과거 이야기도 이제 그만 접어. 
말하고 싶다면, 정말 이 말이 도움이 되는 말일까 한 번 더 생각하고 해.

최근에 싸움닭이 된 거 같다며 남편은 왜 내게 울분이 남아있냐고 물었다. 

엄마와 통화하고 한가득 과거 얘기를 또 읊고난 나를 보더니 남편이 너는 이제 마흔이지 않냐고 한다. 

몇 번을 되풀이해야 너는 벗어날 수 있는 거냐. 너의 말에는 적지 않은 가시가 있기 때문에 그 모든 화살을 나이 드신 부모님을 향해 겨냥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했다. 

어른이 되어 좀 더 성숙하게 우회해서 표현한다 손 치더라도, 나의 과거 일이기 때문에 감정이 안 담길 수는 없을 테니, 그 완급 조절이 쉽지는 않다. 그리고 나도 반복하는 나 자신이 이젠 지겹다. 부모님의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고 과거는 과거일 뿐인데, 왜 연연하느냐 말이다. 



과거의 감정을 청산을 해야 되는데 나는 이 감정의 찌꺼기를 어디다 덜어내야 홀가분해질까. 

브런치.... 

글 밖에 없는 거 같다. 개인사를 다 일일이 나열해서 지금 상황을 요밀조밀 다 설명할 수는 없더라도 나는 브런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뚜껑 열린 채로 저녁 먹고 앉아서 글을 적다 보니 벌써 한 편이 완성이다. 

적은 글을 다시 읽어보니 화장실 다녀온 거처럼 한결 개운한 것도 같다. 




작가의 이전글 아무나 되어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