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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Nov 10. 2023

아무나 되어라.

그저 뚝심 있는 아이로 성장해주었으면. 

아이를 키우다 보니, 욕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왕이면 내 아이 머리가 똑똑했으면,

게다가 운동도 잘했으면,

프랑스어도 한국어도 2개 국어가 완벽했으면,

나는 가끔 무섭다. 

이 모든 것을 아이가 어렵게 이루어 냈다면, 나는 다음 희망사항 목록을 아이에게 줄줄 쏟아낼지 모른다. 


얼마 전 초등학교를 들어간 첫째가 국어(프랑스어) 그리고 산수, 이렇게 두 과목 학습 평가서를 받았는데 산수 부문에서 숫자의 순차 연결과 관련된 1문항 점수 외에는 다른 모든 영역이 100점 아니면 최상위 수준이었다.

그래봐야 그 수준이란 게 기본적인 것이겠지만 담임선생님께 또래에 비해 잘한다는 얘기도 곧잘 듣기도 했고 꼬물 꼬물하던 게 벌써 자라 이런 걸 받아오니 내가 그날은 참으로 감개무량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타고나기를 "한국" 엄마로 태어나 그런가 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엄마는 벌써부터 할머니 설레발로 초등학교 이제 입학한 아들을 소르본느 의대를 보내자고 한다. 아빠는 전화기 너머로 아들 교육을 앞으로 다부지게 시켜보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제 어렴풋이 스케치북에 밑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 아이에게 벌써부터 풍경 수채화 한 작품 잘 만들어보란 소리다.

난 그런 부모님의 성화에 심드렁하게 반응할 뿐이다.  

그 그림이 수채화가 될지 유화가 될지 데생으로 남을지 그저 아들의 인생 숙제일 뿐. 


요즘 한국에선 흔히들 아이가 좋은 대학을 가는 선조건으로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적당한 무관심 그리고 할아버지의 재력을 꼽는다는데 나는 그 세 가지 문항에 다 해당사항이 없다. 난 프랑스에 사는 한국엄마라 다소 열의만 있을 뿐 다른 엄마들과 만나며 자주 소통하는 사람도 아니요,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와 프랑스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에 낄 때가 없어 뒤로 물러나 방관하고 있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남편이 대신 아이의 숙제를 봐주거나 학교로 선생님을 만나는 일이 더 잦으니 두 번째로 교육에 대한 남편의 무관심은 애초에 기대할 수가 없다. 세 번째로 양쪽부모님 다 평범한 일반 가정 수준이라 손자 교육에 대한 적극적 투자는 일찍이 접었다. 

어쩌면 그래서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아이가 공부 머리는 충분한데 내가 여기 시스템을 잘 모르고 무지하여 혹여 그 나이에 제때 해야 되는 학습 그런 걸 놓쳐서 내 아이가 낙오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은 늘 있었다. 오랜 고민 끝에 그건 내 섣부른 기우이라는 결론을 냈다. 나는 언젠가 '내가 그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가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무엇보다 내 자식을 믿기 때문에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그다음 날부터 나는 편히 두 다리 뻗고 잠을 잤다. 그리고 내가 앞에 말한 삼박자를 충분히 갖추었다 해도 결국 훗날 아이의 선택이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다르다 하면 나는 그냥 기분 좋게 포기할 마음을 갖기로 했다. 내가 몇 년 전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일 약대를 아쉬움 없이 포기했듯이, 그 아이의 선택이 내가 생각하는 목표치에 이르지 않는다 해도 나는 아이를 그냥 믿기로 했다.

아이에 대한 사랑이 없냐 엄마가 그렇게 깡다구가 없냐, 아이를 조금만 손보면 인생 클래스가 달라지는데 이렇게 방관할 거냐 하겠지만 내가 딸로서 우리 부모님 밑에서 살아본 경험에 따른 결론이다.

내가 원하는 데로 아이는 자라지 않더라. 

내가 그렇지도 않았고.




몇 년 전 가수 이효리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지나가는 아이에게  "뭘 훌륭한 사람이 돼. 아무나 돼"라는 말이 아주 인상 깊었다. 그녀가 애정이 없어 그저 아이에게 툭 던진 말이 아니라 모호한 기준으로 우리가 말하는 '훌륭한 사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묘한 반항 같은 걸로 들렸다. 남들이 말하는 억대 연봉이면 그게 훌륭한 사람인지, 의사나 변호사가 훌륭한 사람인지, 모두가 우러러보는 존경하는 사람이 훌륭하단 건지 그럼 그 기준은 무엇이며 설사 그럼 기준에 합당한 "훌륭한" 사람이 안되면 그 사람 인생은 망했다 해야 하는 건지 - 그런 점에서 그냥 아무나 되어도 된다는 것은 사회가 생각하는 성공이라는 기준에 못 미쳐도 사람 그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다는 깊은 위로 같이 들렸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아무나 되어도 상관이 없다. 

별 탈 없고 건강하게 자기 인생을 잘 살아가는 사람이면 된다. 

적당히 자기가 좋아하는 거 하면서 자기 밥벌이만 하면 되는 거다. 



인생이 순탄치 않더라는 것은 내가 거의 마흔이 되어서야 알게 됐다. 

그저 아름답기만 한 떨어지는 봄꽃처럼 인생은 그렇게 분홍분홍하지만은 않다. 때로는 타들어가는 태양의 이글거림도 견뎌야 할 테고 낙엽이 떨지는 텅 빈 공허함도, 오한이 드는 추운 겨울도 견뎌야 되는 게 인생이 비로소 영글어지는 것임을 이제 안다. 인생 굴곡이 적지 않았던 내게 다양한 경험은 단단한 굳은살이 되었다. 그리고 그 굳은살이 앞으로의 맞을 어떤 역경을 헤쳐나가는데 강한 심장으로 작용할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에게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내 아이가 두 다리로 설 수 있는 뚝심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랄 뿐이다. 사회적 지위가 높고 모두가 인정하는 성공한 사람 또는 높은 지식수준으로 남들보다 높은 반열에 선 사람보다 험난한 인생길에 단단한 코어 근육이 잘 잡혀있어 넘어져도 다시 우뚝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내 아이가 겪을 앞으로의 무수한 경험들, 그중에 좋은 것도 더러 있겠지만 시련도 있을 테고 무수히 많은 눈물도 있을 테고 좌절도 겪을 테고, 뚝심 있게 견딜 수 있는 사람이면 내겐 족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아들의 교과 평가서를 받고서 감출 수 없는 내 얼굴의 스며든 옅은 미소 때문에 그 아이가 자기가 원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부모를 기쁘기 하기 위한 목적으로 책상 앞에 앉지 않길 바란다. 좋은 성적을 받아오니 엄마가 너무 기뻐하더라는 그 공식을 아이가 절대 암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자기의 행복이 중요한 것이지 부모의 만족을 채워주기 위해서 아이가 그게 곧 자신의 행복이라 연결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마 이 부분은 내가 "성과주의"엄마로서 스스로 단련을 해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겠다. 

당장에 눈앞에 놓인 좋은 성적보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선택지들이 있다. 그리고 그중에 자신이 가치를 두는 것이 무엇인가는, 내가 행복을 느끼는 것이 무엇이냐는 오랜 경험 후에 본인이 선택하게 되겠지. 

가수 이적의 어머니로 유명한 박혜란 여성학자의 말은 이렇다.

놔두었더니 저절로 크더라. 

나는 그 말을 열심히 믿으려고 한다. 아이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고 고맙게 생각하는 것, 아이를 믿고 끝까지 지켜봐 주는 것, 아이의 생각을 존중하고 자주 껴안아주는 것 그거밖에 없다. 


아무나 된다고 해서 인생이 망하는 건 또 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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