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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Sep 18. 2023

부부의 세계

프랑스에 사는 이방인

말문이 트였다.

그리고 나는 구겨왔던 감정들을 조리 있게 말할 수 있게 됐다. '그 사람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쉽게 넘겨왔던 일들이 이상하게 머릿속에 꽂히면 말을 곱씹게 됐다. 담아왔던 감정 속에, 언어가 안되어서 어버버버 하던 시절에서, 나는 이제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비단 언어의 문제만은 아니겠지. 우리가 2014년부터 함께 해왔으니 거의 두 사람이 함께한 지 10년이 다되어 가는데 그동안 자잘한 일들이야 있었지만은 내가 언어로 출력을 잘 못해서가 아니라, 분명 우리가 변한 거겠지.  

그리고 나는 구겨왔던 감정들을 조리 있게 말할 수 있게 됐다.

'그 사람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쉽게 넘겨왔던 일들이 이상하게 머릿속에 꽂히면 말을 곱씹게 됐다.

담아왔던 감정 속에, 언어가 안돼서 어버버버 하던 시절에서, 나는 이제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비단 언어의 문제만은 아니겠지. 우리가 2014년부터 함께 해왔으니 거의 두 사람이 함께한 지 10년이 다되어 가는데 그동안 자잘한 일들이야 있었지만은 내가 언어로 출력을 잘 못해서가 아니라, 분명 우리가 변한 거겠지.  


올해 2월 직장에서 잘린 후, 이참에 프랑스 어학증이나 따보자 해서 매일매일 공부를 시작한 게 말문이 트이는 계기가 됐다. 그렇다고 프랑스 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나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가능해졌다. 물론, 상대방을 말로써 공격하고자 언어를 배우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나는 그런 독기가 있어야 공부가 잘됐다. 프랑스 사람들이야 전반적으로 말을 직설적으로 하기도 하고 때론 전체 분위기를 흩트려 뜨리지 않고 상대방에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말을 교묘하게 전달하는 능구렁이 같은 습성도 없지 않다.

그래서 나도 반능구렁이처럼 말해보고 싶었다.

내가 싸울 때는 능구렁이형보다는 속사포형이 아무래도 더 상대하기 쉬운 편이다. 하지만 나와 같이 사는 반려인은 아쉽게도 전자 쪽이다. 싸우려 덤비지 않고 자기감정을 보이지 않으며 조근 조근 할 말을 하는 스타일이다. 더군다나 요즘 속사포인 내게 무슨 말이라도 농담으로 했다가 걸려들면 분위기가 안 좋아지니 말을 아끼게 됐고 우리는 대화가 없어졌다.

감정의 찌꺼기가 남은 나는 그마저 비워야 살 거 같고 남편은 혼자 시간을 보내며 "홀로 정화"가 돼야 하는 사람이라 우린 분명 다른 족속임에 틀림없다. 결혼은 무릇 서로 다른 A와 B 가 만나 C 가 되는 게 아니라 그냥 AB로 남는 것이라 했던가.

그저 상대방의 태도나 반응을 갖고 직접 얘기하면 될 것을, "니네 엄마는 또 저런다, 엄마가 왜 그러는지 물어봐라" 등의 3인칭을 어법을 써가며 아이들에게 얘기하는 걸 보면 그 자리에서 머리꼭지가 안 돌 수가 없다. 남편은 점잖이 앉아서 감정을 쏙 빼고 말을 하고 어눌한 프랑스어에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나를 보면 아이들에게 아마도 나는 숨어있는 폭탄 같을지도 모르겠다.

꾹꾹 눌러왔던 기분을 이제 어느 정도 말하게 됐으니 속사포가 되는 게 아마도 당연한 순서일지도.




발단은 그랬다.

아이를 낳고 한국에서, 우리 부모님 곁에서 적어도 6개월 1년은 살아보자라고 되뇌던 일이 해가 거듭될수록 그것은 그저 꿈이구나. 가능한 일이기나 한 걸까 생각하게 됐다. 물론 20년 상환해서 갚아야 하는 집도 있고 아이들 학교문제도 있고 남편도 잘 다니는 직장을 무급 휴직을 해야 하는 상태여서 사실상 그 결정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아이들은 한국이란 곳을 그저 엄마가 태어난 나라 정도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는 나라 정도로 느끼게 하기에는 내가 그럴 수가 없다. 프랑스 아이로 자라서 뼛속까지 한국 사람인 엄마에게 내 아이들이 조근조근 남편처럼 대화하면 내가 감당이 될까. 말로 전하기 힘든 숱한 감정의 고리들 속에서 어떤 단어를 적절하게 사용해야 이 아이들이 내 감정이 그러하다고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말을 안 해도 남편이 내 감정을 알아채줬으면 하는 것과 아이들에게 속속들이 감정을 한글로 가르쳐줘 가며 표현을 유도하는 것은 상당히 역설적이긴 하다.


그래서 앉아서 말만 하는 남편을 믿지 말고 나라도 돌파구를 찾아보자 해서 한국에 있는 국제학교를 열심히 뒤졌다. 국제학교란게 이름만 "국제학교"이지 Luxury 학교이다. 초등학교 아이들 두 명을 1년 등록시키자면 족히 천 오백만 원은 필요했다. 거기다 버스비, 급식비 등등을 더하면 어마어마한 갑절의 돈이다. 그리고 남편이 휴직을 하게 되면 생활비를 내가 벌어야 마땅하니, 웬만한 좋은 보수가 아니고서는 빚을 내어가며 한국에 가야 하는 꼴이다. 일반 초등학교를 들어가면 되지 않냐고 생각하겠지만 빌어먹을 프랑스 교육청이 어렵사리 보낸 한국에서의 1년을 인가를 안 해주면 아이들은 엄마의 "한국"고집 때문에 1학년을 낮게 학교에 들어가야 될 수도 있다. 이게 나 좋자고 선택을 하는 건가 이제는 목적을 잘 모르겠다.  

차라리 이럴 거면 남편은 내게 한국 가서 살자라는 희망고문 따위 안 해야 되지 않나.

이 상황에 아이 한 명씩 맡아서 각자의 나라에서 1년 키우고 만나자는 것도 웃긴 일이긴 하다.  

상황도 파악이 됐고 머리로 어느 정도 이해도 하겠는데 이제 와서 그 모든 게 왠지 남편 탓인 것만 같다.  


얼마 전 법륜 스님이 프랑스에 오셔서 말씀을 들었는데 거기 모인 모든 (프랑스에 사는 한국) 사람에게 우리는 이방인이라고 했다.

이방인....

10년을 살아도 20년을 살아도 - 내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 설사 프랑스 시민권을 딴다 해도 이방인. 나는 이 나라에서 주류가 아닌 부류이고 소수이며, 내가 누구인지 한국은 어떻게 돌아간다 계속해서 알리고 설명해야 되는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이방인이어서 좋은 점은 프랑스 정치, 사회 문제 등에 한발 뒤로 물러나서 있어도 괜찮으니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하셨다. 법륜 스님은 그게 싫으면 모든 여기 생활을 접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딱 잘라 말씀하셨다.

대답은 명쾌하고 진리는 다소 뻔한 법이지만 실천은 왜 항상 쉽지 않을까.


나는 프랑스 땅에서 굳이 주류로 살고 싶지도 않지만 적어도 우리 집안에서 일어나는 일만큼은 내가 이방인이 아닌 '나여도' 되는 것 아닌가. 한국에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것도, 아이들과 한국어로 소통하고 싶은 것도 내가 주장해 볼 수 있지. 근데 그러기에 혼자서만 고군분투한다는 느낌이 있어서 그게 다소 쓸쓸할 뿐이다.

내게 외국 생활에 권태기가 왔나.

남편에게도 그래서 심드렁해진 건가.

그냥 10년마다 찾아오는 일종의 주기 같은 걸까.


말은 통하지만 가끔은 침묵이 약일 때도 있다.

내가 프랑스에서 경험한 억하심정을 모아 남편에게 몰아세우기는 이제 그만해야 될 거 같다.


오늘도 나를 돌아보는 쓸쓸한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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