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식물의 형태만 봐도 물이 또는 영양이 부족한지 과습때문에 질병이 생겼는지 대강은 짐작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사실 지구상 식물의 수가 무려 39만 여종이니여전히 배우는 단계이지만 집에서 기르는 식물들만큼은 어디가 불편한지 무엇이 모자란 지 알 정도이니 초보 딱지는 떼어도 되지 싶다. 예전에는 식물을 사와서 집에 들인 지 한 달이 채 안되어서 말라 죽이던 내가 아직까지 식물들을 잘 기르고 있다니 일취월장이 따로 없다.
대지에 피는 모든 생물이 생동하는 계절, 여름.
아침에 일어나서 차를 한 잔 내리고 마당에 나가서 잡초를 뽑는다.
하루 일과 중 귀찮지만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일.
급한 성격 탓에 의자에 앉아서 차를 느긋하게 즐기지 못하고 찻잔을 들고서 텃밭을 기웃거리다 보면 어느샌가 잡초를 뽑느라 한 손이 온통 흙으로 검게 되고 만다. 차를 마시자고 했던 건지 텃밭에 일을 하자고 나온 것인지 -.
어쩜 잡초란 것들은 열심히 정성 들여 키우고 있는 식물 언저리에서만 자라는지, 너른 땅을 놔두고 식물 옆에 붙어서 단물을 쪽쪽 빨아먹는 기생충처럼 말이다. 날씨가 더워지니 자라는 속도도 빨라져 뿌리를 아예 뽑아버리지 않은 이상은 그 다음날 또 5-10cm '날 좀 보소' 하고 자란 잡초를 뽑아야 한다.
퇴직하고 빡빡한 일도 없는 일상에 그래도 잡초가 내게 신선한 노동을 준 셈이다. 뿌리는 얼마나 억센지 땅을 파도파도 그 뿌리에서 파생된 다른 줄기까지 뽑다 보면 텃밭을 다 뒤집어엎어야 될 판이다.
어떻게 잡초란 것들은 이리 영리하고 생명력 또한 질긴 것이냐.
정말인지 우리 가족이 10월에 한국을 3주나 가게 되었는데 이 텃밭이며 집안 식물들은 누구한테 맡기고 가야 하나 지금부터 벌써 걱정이다. 하루만 걸러도 텃밭 이곳저곳 손질 안 한 흔적이 역력할 텐데 장작 3주면 돌아올 땐 아예 텃밭이 푸른 잡초밭이 되어 있을 것을 감안을 하고 가야 되지 싶다.
작년에 한국에서 사다온 적상추 씨앗을 심어 올 초여름까지 한국 상추를 잘 따먹었다. 끝무렵에는 상추줄기가 거의 50cm까지 목이 뻗뻗하게 자라더니 끝내 꽃을 피울 기세였다. 결국은 상추의 꽃대를 잘라서 칼로 다듬은 다음 장아찌를 담가 먹었다. 꽃대가 올라오면 상추 잎이 시고 질기다고 해서 남은 잎들도 다 장아찌에 같이 넣어버렸다. 짭조름한 간장에 상추의 알싸한 맛이 곁들여져 삼겹살 고기 한 점에 상추 꽃대를 얹어 먹으면 밥상 앞이 그리 행복할 수가 없었다.
적상추를 심었던 땅에 자연비료를 좀 섞어두고 일주일을 묵혔다가 무를 심으려고 했는데 이틀이나 지나서 잡초들이 스멀스멀 고개를 내밀길래 얼른 뽑아버리고 그냥 그 길로 무씨앗을 뿌렸다. 어린싹이 올라올 때까지 내 성격대로 땅을 엎으려 하지 말고 잡초만 잘 골라 뽑아야 될 텐데.
잡초 말고 신경 쓰이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주변에 고양이 키우는 집들이 많은데 새벽이면 가끔 우리 집 정원에 들어와 텃밭 땅을 흩뜨리는 것이다. 텃밭 위에 영역 표시를 하는지 아침에 일어나면 땅이 반쯤 속을 드러낸 채로 있어서 급하게 커피가루를 뿌려보고 냄새가 강한 후추도 뿌려도 소용이 없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20 cm 남짓 제주 돌하르방을 급하게라도 텃밭 위에 배치했다. 새로운 땅문지기에게 새벽에 놀러 오는 고양이들을 무사히 잘 집으로 돌려보내주라고 지령을 단단히 내려두었다. 작은 돌하르방이 지령을 받든 이후로는 신기하리 마치 고양이 발길이 끊겼다. 프랑스 고양이들이 짐짓 작은 검디 이상한 물체를 보고 흠칫 가슴이 놀랬나 보다.
덕분에 무싹은 이대로 일주일만 잘 버티면 무사히 고개를 내밀지 싶다. 올 가을이 오면 무는 시원하게 국물김치를 만들고 무청은 따뜻한 햇볕에 말려서 시래깃국으로 끓여 먹어야겠다.
그야말로 이렇게 차려진 밥상은 건강한 노동을 대가로 받는 자연의 크나큰 선물이겠다.
해바라기 씨앗을 심을 수 있는 Kit가 나왔길래 마당에서 노란 꽃을 볼 요량으로 싹틔우기부터 분갈이도 여러 번 해주며 뒷마당에 용케 싹을 옮겨 심었다. 축구에 빠져있는 아들 덕분에 싹을 틔운 해바라기의 풀의 1/3이 목이 꺾인 채 유명을 달리했지만, 나머지 풀들은 떡잎을 금방 떨구어 버리더니 파란 잎을 하늘 높이 치켜세우며 무서운 기세로 자랐다. 행여나 물이 모자랄까 또 영양이 모자랄까 쌀을 담가둔 쌀뜨물도 대령해 가며 노오란 해바라기 꽃을 볼 모양으로 오매불망 잎사이만 매일 들여다봤다.
그러다 우연히 우리 집 2층에서 2미터 남짓으로 자란 옆집 해바라기 꽃을 보게 되었다.
옆집은 주인이 땅만 산 건지 허물어져가는 건물을 짓다 말았는지 회색 콘크리트 벽이 그대로 보이는 헐 거 벗은 집이었다. 가끔 집 짓는 공사 아저씨들만 보일 뿐 당최 그 집을 짓는 일은 또 한 해를 넘길 모양이다. 벌써 그렇게 3년 동안 공터로 남아있다고 하던데.. 그 허물어져가는 회색집 뒤로 정원인지 모를 공터가 아주 크게 있는데 집을 지을 재료들이며 철근들이 무성하게 쌓여있었다. 언제쯤 그 재료들이 모두 제자리로 가서 집이 완성될는지.
봄이 오고 그러다가 날씨가 더워지니 하얀 나팔꽃이 온 공터를 점령을 하더니 지천으로 피기 시작했다. 가끔 나팔꽃 얼굴이 우리 집 담 울타리구멍을 비집고 피어 우리 집에서도 그 강한 생명력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일부러 그 집을 들여다보려 한 것은 아니지만 한번은 의자 위로 올라가서 그 공터를 바라보니 그 지천으로 핀 나팔꽃 모습이 가히 장관이었다. 녹슨 철근 더미 사이에도, 버려진 세 발 자전거 사이로 잡초덩이 풀이 1m이상 자라고 그 사이로 넝쿨채 하얗게 피어오른 나팔꽃이 한가득 어우러진 모습은 자연을 대면한 무색한 인간의 모습처럼 한동안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그리고 공터 중간에 샛노란 해바라기가 있었다.
니가 몇 달을 그렇게 애지중지 기른 해바라기 풀보다 물 한번 안 준 옆집 해바라기가 더 빨리 자랐네.
남편은 나의 표정이 궁금했던지 2층으로 급하게 나를 부르더니 옆집의 해바라기의 존재를 알리며 한마디를 건넨다. 가느다란 눈을 열심히 굴려가며 커다랗게 핀 옆집 해바라기와 허탈한 나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해바라기의 크기며 위엄 있게 쭉 자란 모습은 나의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요 근래에 비가 많이 안 와서 잎이 축 쳐져 있을 법도 한데 정말인지 쫙 뻗은 그 모습은, 나는 2층에서 오랫동안 해바라기 구경을 하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면 마치 알던 친구처럼 말을 걸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을 먹고 이리 자랐냐고, 참 대견하다며.
그 존재를 알고 난 후부터는 5mm 채 안 되는 담장 구멍으로 가끔 들여다봤다. 우리 집 울타리에 들어앉은 꽃은 아니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 그 공터에서 하루종일 해님을 기다리는 해 바라 가기 장해서였다.
나는 요즘 가방을 만들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이 다 장성하고 내가 나이가 들고 눈이 침침해져 이제 실을 혼자 꿰지 못할 때가 오면 농사를 지어보고 싶다. 농사를 우습게 알고 시작하겠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말하는 "농사"는 작은 땅을 일구어 우리 가족 먹을 거만 재배하는 작은 규모의 것이다. 집에서 기르는 식물하나도 이렇게 자주 손길이 가는데 농사는 그야말로 개미, 잡초 온갖 벌레 그리고 병충해, 가뭄이며 모든 자연재해 상황을 잘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흙을 벗 삼아 식물과 얘기를 하다 보면 결국 행복이란 건 이런 게 아닐까 상상한다.
고도의 기술 발달과 AI의 발전이 미래 중심 사업이라 하여도 나 같은 슬로우 어답터(Slow adopter) 들은 그저 천천히 자연적인 흐름대로 사는 것이 맞는 거 같다. 그렇게 보자면 농부의 삶이, 자연으로 회귀하여 땅을 밟고 식물을 기르는 것이 내 노년의 삶이자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