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수의 쓴맛은 올해 2월, 회사에서 정리해고 된 것으로 충분히 맛봤다. 다행이라면건강상의 문제나 금전적 손실은 없었으므로 올해 이렇게만 숨죽여보낸다면 아홉수는 10년 후에나 다시 찾아오겠지.
사실 사람인생이야 운발이 오르고 내리고그주기란 것은 늘 어김없이찾아오는 것이므로 숙명적이야 피할 수도 없고 맞닥뜨리는 수밖에 없잖은가. 그래서 사실 나는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이다. 대운이 들었다고 그 사람이 무한 전지전능한 힘을 지니는 것도 아니요 어떤 이가 아홉수가 들었다 해서 인생이 한 번에 구렁으로 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가방을 만들기 시작한 언 수개월.
아이들을 재우고 성시경 노래 멜로디를 무한반복으로 들으며 천을 자르고 재봉질로 가방을 하나 둘 만들다 보면 어느새 자정을 넘길 때가 많다.
이게 천직이라면 그런 걸까.
고개가 거북복이 되어 뻣뻣한 것 말고는 빨리 결재 서류 제출하라는 지랄 맞은 부장도 없고 옆에서 커피 한잔 하겠느냐 묻는 다정한 직장 동료도 없다.
깜깜한 지하실 눅눅한 냄새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 하루종일 두 아들이 휘저어대는 거실의 왁자지껄한 공기와는 상반되게 지하실 내 작업실은 성시경 음악과 재봉소리만이잔잔하게 흐를 뿐이다.
어느 음악을 들어도 아마 그 시간은 가장 감미로울 테지만.
다림질한 빳빳한 천을 자르고 안감을 준비하고 주머니를 만들고 형태를 잡고 손잡이를 기우고... 그러다 보니 챙겨보는 웹사이트도 유튜브 채널도 가방 가방 가방이다.
온종일 고심해서 하나를 만들고 나면 왜 디자이너들이 그들이 만든 옷가지를 가희 "작품"이라 칭하는지 알 거 같다.
누구에게는 그저 가방일 뿐이라도 지퍼 하나 바느질 땀하나 내가 다 손수 했다. 지금은 그저 이름 없는 디자이너의 가방일 뿐이라도 내게 만큼은 그 H사 가방 못지않은 혼이 들어 있음은 확실하다.
제작 외에도 웹사이트 작업이며 마케팅 등 전체 시스템을 다 가꾸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 노력, 열정..
이 모든 것들이 나중에 매출을 가져다주는 것은 또 다른 걱정의 영역이다.
하지만 두려워하자 마라.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Zara와 같은 기업이 나중에 제휴하자고 하는 날이 올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마흔이 요즘에는 제일 좋은 나이 같어. 그래서 자기 얼굴에서 요즘에 빛이나!
오랜만에 만난 동네 언니가 내게 듣기 좋은 소리인지 모를 칭찬을 했다. 머쓱한 나는 "그래요?" 하고 대답을 얼버무렸다.
마흔 아홉수를 달고 있는 언니는 만날 때마다 내게 회사 고충이나 직장 동료와 마찰 얘기했음에도 마흔이 가장 좋은 나이라 했다.
그런가?
새로운 꿈을 꾸기는 늦는 나이인지는 몰라도 사람이 가장 성숙한 아름다움이 있는 나이라 믿는다. 20대는 우리 엄마 말에 따르자면 청바지에 흰 티만 받쳐 입어도 그저 예쁜 나이이고 30살은 꾸미면 꾸미는 족족 청초하고 예쁜나이이다. 40은 내가 보기에 세상 돌아가는 일도 어느정도 겪어봤고 연애야 이미 손바닥 보듯 뻔히 보일 테고.지식으로든 경험으로든 다 아는 나이이다. 거기에 운명을 대하는 편안한 마음가짐까지더해져낯이 예뻐 보이는 거 아닐까.
인생의 풍파를 거쳐보겠다는 20대의 패기도 지났고 경험으로 몸소 체험한 30대를 거쳐서 이젠 운명이란 파도를 잘 탈 수 있는 그런 여유에서 오는 게 아닐까.
예전에는 마흔이라면 내가 모든 걸 다 이루고 편히 지내고 있을 줄 알았다. 직장도 내 커리어도 승승장구하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근데 마흔에 전혀 다른 진로를 택해서 이렇게 다시 시작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