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파리지엥들이 좁은 파리 아파트를 벗어나 넓은 마당이 있는 주택을 찾아 파리 외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지 오래되었다. 그러더니파리 인근 지역인 우리 동네도 집값이 천정부지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2024년 파리 올림픽이라는 전 세계적 축제 준비로 파리 외곽지역까지 도로확장,지하철 건설 등 곳곳에 공사가 시작되더니 집값은 정말 2년 사이에 우뚝 솟았다. 아이들 둘이가 같이 좁은 집에서 뛰기 시작할 무렵, 주택으로 옮겨볼까 소파에 앉아 무심코 부동산 사이트를 뒤지다가 지금 사는동네에서는 다 떨어져 가는 허름한 주택이라도 살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빌어먹을, 파리지엥들 때문에 더 멀리 이사 가게 생겼네'
Montreuil.
프랑스어도 잘 못하던 내가 처음으로 정 붙이며 살게 된 동네인데, 못하는 불어로 지나가던 흑인 아저씨에게 길을 물을 때도 해맑은 웃음으로 길을 설명해주었던 좋은 기억으로 시작된 프랑스 생활.
버터향이 흠뻑 나는 맛난 크로와상을 굽는 집, 소아과선생님은어디가 좋은지 등동네 구석구석을 이제 알게 됐는데. 하물며 학교 아이들 엄마도 이제 겨우 사귀기 시작했는데....
나야 뭐 아무도 안 사는 깡시골에 처박혀있데도 된장국, 김치 담글 재료만 있다면이야 어디든 산다지만 우리 아이들은 순수하게 시골 구석에서 자라서 엄마 나라도 모르고 프랑스 순수 청년으로만 자라면 어쩌나.
파리에서 좀 더 멀어진 동네를 찾다 보니 우리 예산에 맞는 집이 몇 개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젠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할 때.
층간소음으로 언제까지에너지 충만한 두 아이를 집에서 뛰지 마라 떠들지 마라 장난치지 마라하는 잔소리가 이제는 통할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매번 TV 리모컨을 집어 드는 것도 이젠 한계다. 두 돌도 안된 둘째가 넋 놓고 텔레비전을 볼때면 내심 이렇게 그 아이를 길들인 내가 되려 한심 하다.
그래서 감행된 이사 결정
우리 집이 될 운명이었는지 집을 찾고 계약서를 쓰고 열쇠를 받기까지 모든 것이 착착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3개월이란 고난의 시간이 걸렸어도 프랑스에서 3개월 정도라면 한국에서 오늘 집을 보고 그다음 주에 서명한 거나 매한가지다. 이전 명의를 하는 절차나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절차를 포함한 전반적인 과정이 무리 없이 빨리 된 셈이다.
정말 남은 1개월은 온 가족이 코로나에 걸려 몸 못 가누는 나와 방방 집에서 뛰어대는 아이들과 사투 아닌 사투였던 긴 인고의 시간이었다.
코로나로 겨우 회복된 몸으로 1월 초 한가득 놓인 짐을 정리하고, 새로 가구도 들이고 아이들 학교며 새로운 보모 적응기간도 가지고.... 겹겹이 쌓인 짐은 천천히 정리하면 될 것을 튼튼한 몸 하나 믿고 급하게 움직였더니 때아닌 이사 몸살로 한 며칠 골골대다가 한 두어 달 지나니 이제 우리 집 같다. 익숙한 내 침대, 큰 식탁, 이젠 있을 게 어디 있는지 아는 곳곳에 들어찬 잡동사니들 그리고 내 짐이 주는 안정감.
넓은 정원에 아이들이 무한 반복으로 뛰어다녀도 누구 하나 뭐라 할 것이 없는 이 고요함.
왜 진작에 이런 결정을 하지 못하고 그 파리에 가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이라고 그리 고민을 했을고.
복작거리는 그 동네도 이젠 안녕이다.
맛있는 크로와상을 파는 빵집은 다시 찾으면 될 일이다. 새로 알게 된 학부형들도 또 천천히 사귀면 된다.
그 고민이 참으로 무엇이었을고 싶다.
너무 머리가 복잡할 땐 그냥 저지르는 게 답이다.
놀이 매트를 온 집에 깔고서도 오래된 아파트라 아이들이 조금 빨리 걷기만 해도 작은 소음 하나 용납치 않는 아랫집에서는 막대 자루로 천정을 마구 쳐대는 그 순간순간은 정말 답이 없었다.
두 돌이 안된 둘째는 아파트를 기억 못 하겠지.
층간 소음을 피하려고 매번 얼마나 아파트 단지를 뺑뺑 돌았는지, 너는 아마 모를 거다.
토요일, 일요일 아침 아이들을 어딘가로 데리고 나가야 하는 내가 얼마나 무거운 발걸음이었는지는 아마 모를 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리는 아이들을 항상 데리고 나섰다. 봄이나 여름이면 공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면 되는데 비가 적적하게 오거나 아주 추운 겨울에는 쇼핑 몰 투어나 ikea 투어가 제격이었다.
이젠 그럴 필요가 없는 주말이 좋다.
가만히 앉아서 아이들이 노는 것을 그저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축복이다.
정말인지 이삿짐을 들인 그 첫날은 몸에 긴장이 풀려 온몸이 쑤시는데도 미친 여자처럼 온 거실을 헤집고 뛰어다녔다.
해방이라며 이젠 정말 해방이라며.
큰 집에서 푸지게 처음으로 김장이란 걸 했다.
처음이라 두 포기만 담가두었는데도 가슴 한켠이 뿌듯하다. 온 집 안에 마늘 찧은 냄새와 젓갈 꼬롱한 냄새가 진동을 하지만 이제 내 집이니까 괜찮다. 이참에 올해 한국에 들어가서 단단한 항아리 하나를 프랑스로 가지고 오는 것이 그다음 미션이 되겠다.
정원 앞에 갈색 빛깔 좋은 항아리 두 개를 두어야지. 그리고 철 따라 동치미도 만들고 마늘종도 간장에 담가 두고.. 생각만 해도 기쁜 일이다. 그리고 봄이 오니 오랜 버킷리스트였던 텃밭도 가꾸어야지. 깻잎도 심고, 파도 심고, 늙은 호박도 심어야지.
이사 오고 정원을 한 번도 가꾸질 않았더니, 하얀 꽃이 곳곳에 폈다.
녹색 푸른 잔디 위에 하얀색과 살짝 분홍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태생력이 뛰어난 잡꽃과인데 한두 개 피기 시작하더니 이내 온 잔디를 하얗게 수놓았다.
신기하다.
하얗게 고운 얼굴 드러낸 너마저 우리 집 울타리 안이라니.
이만큼 행복할 수가 없다.
정말.
프랑스 아파트도 층간소음이 있다. https://brunch.co.kr/@leeeunjiwij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