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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라의앨 Sep 21. 2021

세 번째 ‘두 줄’

둘째가 생겼어요



일과 병행하는 육아는 쉽지 않았고 지금도 여전히 어렵다. 둘째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현실이 버거워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막연히 때가 되면 둘째도 가져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딱히 계획을 한 건 아니지만 큰 아이가 두 돌 즈음됐을 때부터 둘째 이야기를 가끔 하게 됐고 2021년 상반기 중에 둘째를 가지면 어떨까 하는 정도의 합의(?)를 보고 난 바쁜 가을 성수기를 보냈다.


그리고 2020년 가을 시즌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었던 12월 말에 우리에게 둘째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의 세 번째 ‘두 줄’이었다.


이건 전혀 생각지 못한 타이밍이었다. 아직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아이가 생겼다니. (그렇다고 이전에 딱히 준비를 미리 했던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감사했다. 주변에 아이를 갖고 싶어도 생기지 않아 몸도 마음도 고생하는 친구들을 많이 봐서 이렇게 아이가 생기는 것도 큰 축복이라 생각했다.




성탄절 직후부터 입덧이 시작되었다. 3월까지 계속된 입덧 증상은 첫째 때와 비슷했는데 훨씬 힘들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첫째를 챙겨야 해서 그런 게 아니었나 싶다. 아직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돌보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남편이 아이와 놀아주고 아이 밥과 간식을 챙기며 전적으로 육아를 해도 방에 누워서 쉬고 잘 때도 그 소리가 다 들리니 쉬는 게 쉬는 게 아니고 계속 신경이 쓰였다. 남편도 종일 아이를 보다 보면 힘든 순간들이 있는데 내가 입덧으로 힘들어하고 있으니 최대한 신경 안 쓰이게 하고 싶지만 그게 맘처럼 안되고.


이런 생활을 한 달 넘게 하다 보니 서로 많이 힘들었고 입덧이 못해도 세 달은 지속된다고 생각했을 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큰 아이를 3월부터 어린이집에 보내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계획을 바꿔서 1월 말부터 보내기로 했다.


감사하게도 마음에 드는 어린이집에 자리가 났고 아이는 적응기를 엄마가 아닌 아빠와 함께 하게 됐다. 적응기엔 오히려 한두 시간 후에 데리러 가야 해서 더 바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아이가 정말 잘 적응해주었고 아이가 아린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남편도 육아에서 한 숨 돌리고 나도 조금은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다. (내 컨디션 때문에 다소 급하게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주 양육자인 나와 남편의 몸과 마음 상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입덧은 첫째 때와 비슷하게 14주 차 전후로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체중도 비슷하게 줄었고 증상도 비슷했는데 겨울이라 그런지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체력도 면역력도 바닥난 상태였다. 평소에 저혈압이기도 해서 밖에 있다가 쓰러질까 봐 혼자 외출하는 게 겁날 정도였다.




봄에 체력과 면역력을 좀 회복하고 일상을 누리고 싶었는데 임산부로서 코로나가 더 조심스러웠다. 가까운 지인 결혼식도 못 가고 생각보다 사람도 못 만났다. 통역 일정이 있을 때 무장을 하고 외출했다가 귀가하기 바빴다.


게다가 첫째가 있으니 뱃속에 있는 아이를 생각하며 태담을 하거나 태교일기를 쓰지도 못했다. 정기검진 후 받아오는 초음파 사진도 정리하지 못한 채 수북이 쌓일 때까지 뒀다가 몰아서 겨우 붙이곤 했다.


배가 불러오면서 큰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안아주지도 몸으로 놀아주지도 못하고 목욕을 시키는 것도 못하겠더라. 나중엔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것도 힘들어서 겨우 몸을 일으키거나 아이에게 와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그게 아이한테 어찌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이런 것들이 뱃속에 동생 때문이라는 인식을 주고 싶지 않아서 말을 많이 아꼈는데 아이는 이미 엄마가 허리가 아파서 목욕도 아빠랑 하고 잠도 아빠랑 자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고 있었다. 짠했다.


그리고 또 뱃속의 아이에게도 미안했다. 첫째 때만큼 오롯이 아이를 생각하며 기도하지도 못했고 아이를 맞이할 준비도 딱히 하지도 못했기 때문. 하루하루 첫째를 돌보고 내 일 하며 내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내다 보니 시간이 흘렀고 어느새 배가 불러 있었다.


임신 7개월 차였던 5월에는 큰 아이가 처음으로 입원이라는 걸 했다. 남편이 해외에 나가 있을 때라 난 부른 배와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아이와 함께 4박 5일 동안 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첫째 때 막달까지 일할 때도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는데 임신 27주 차에 아픈 아이를 독박으로 하루 24시간 풀로 보는 건 정말 지금까지 내 육아 경험 중 난이도 최상이었다.


일정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매일 같이 아이를 등 하원 시키고 하원 후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씻기고 재우기까지 하는 남편에게도 참 고맙고 미안했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남편도 똑같이, 아니 어쩌면 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었고 지금도 그렇다고 믿는다.




둘째는 첫째보다 더 빨리 나온다고들 해서 예정일 한 달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진통이 시작되면 진행도  빨라 금방 나온다니 더 긴장됐다.


무더위에 지쳐 입맛도 없고 기력도 없고 누워만 있고 싶은 날들이 이어졌다. 잠깐이라도 밖에 나갔다 오면 땀범벅이 되었고 코시국 마스크 때문에 더더욱 숨이 막혔다. 하루하루 기다리는 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다. ‘오늘인가’ 싶어 밤잠을 자다가도 새벽에 몇 번이고 시계를 확인하곤 했다.


37주 정기검진을 갔는데 일주일 사이에 아기가 500g이나 자라서 모두가 걱정했다. 담당 선생님은 아가가 이미 3.4kg이 넘은 상태라 더 크면 아가도 산모도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만약에 다음 검진 때까지 신호가 없으면 유도분만 날짜를 잡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대부분의 산모가 그렇겠지만 나도 남편도 가능하면 유도분만은 피하고 싶었다. 유도분만은 약물을 통해 진통을 유발해 인위적으로 아기가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인데 실패 확률이 높아 진통은 진통대로 겪고 결국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무엇보다 아가가 준비가 되었을 때, 나오고 싶어 할 때 나올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다음 주, 38주 정기검진을 앞두고 아기가 또 너무 많이 컸으면 어쩌나 걱정이 됐다. (남편이 80년대에 4.2kg으로 태어났던지라 괜히 더…^^) 그래서 한 주 동안 먹는 양을 조금 줄이고 평소보다 조금 더 움직였다. 그래 봐야 집안일을 조금 더 하고 전시회 보러 가서 조금 걸어 다니는 정도? 그런데 다음 검진 때 아가 무게가 100kg 정도밖에 늘지 않았다고 해서 너무 놀랐다. 저번 검진 때 좀 크게 잡힌 것도 있지만 나의 작은 변화로 이렇게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니!


아가 무게가 너무 늘지 않아도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초음파를 보는 중에도 신나게 움직이고 이미 클 만큼 큰 상태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내진 결과 경산이라 자궁경부가 3cm 정도 열려있기는 하지만 아직 아가 머리 방향도 그렇고 조금 더 내려와야 하니 더 걷고 움직이며 며칠 더 기다려보자고 하셨다.




검진 후 집에 돌아오면서부터 통증이 있었고 피로감이 확 느껴졌다. 내진 때문인가 보다 싶어 낮잠을 두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났다. (첫째 때는 내진을 해보기도 전에 아이가 나와서 사실 이번이 첫 내진이었다^^;) 번역 검토할 것이 있어 간식으로 아오리 사과 하나 깎아 먹으며 세 시간 정도 일을 했다. 그동안에도 통증이 있었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했는데 진통이라고 생각될 정도는 아니었다.


첫째와 함께 저녁을 준비했다. (32개월이 된 첫 아이는 요즘 주방에서 엄마가 요리하는 걸 구경하고 같이 해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저녁 메뉴는 고르곤졸라 피자와 감자튀김 그리고 새우 샐러드. 배가 살살 아팠지만 저녁까지 맛있게 배불리 먹었다.


남편이 일 마무리할 게 있어 서재에서 일하는 동안 나는 첫째가 읽어달라는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저녁 8시 정도 됐던 것 같다. 통증이 더 심해져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웅크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순간 이게 진통일 수 있겠다 싶어 진통 간격을 측정하는 앱을 깔고 진통이 있을 때마다 눌러보았다. 여섯 번 진통이 있었는데 평균 간격이 8분이었다. 진통이 맞는 것 같았다. (첫째 때는 진통 없이 이슬이 비쳐 병원으로 갔던 터라 둘째임에도 가진통과 진진통의 개념이 없었다 하하)


9시쯤 남편이 일을 마치고 나왔고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한 뒤 미리 준비해뒀던 출산 가방을 챙기고 샤워를 했다. (입원하면 며칠 동안 못 씻으니 입원 직전에 씻고 가시는 걸 추천합니다^^)


엄마, 아빠, 어디 가요?

엄마 아빠가 밤에 옷을 챙겨 입으니 큰 아이가 물었다.

“어~ 동생이 누나 보고 싶어서 나오려나 봐. 우리 동생 만나러 같이 가볼까?”

“응! 좋아!”


그래서 우리 세 식구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물론 코로나 그것도 거리두기 4단계라 병원에는 보호자 1명만 출입 가능하고 아이는 출입 불가. 일단 나 혼자 들어가서 상황을 점검하고 입원이 결정되면 시부모님께서 오셔서 큰 아이와 함께 계시고 남편이 나와 함께 분만실에 있기로 했다.


바로 입원하셔야겠는데요


밤 10시였다. 양가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고 시부모님께 바로 출발해 달라고 했다. 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몇 가지 서류에 서명하고 코로나 검사를 받고 분만 준비를 했다. 이미 진행이 많이 된 상태라 무통주사를 맞아도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말에 이번엔 무통주사 없이 진행하기로 했다. 진통이 간간히 있긴 했지만 아직은 견딜만했다. 야간이라 내 담당의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첫째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남편이 같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혼자 분만실에 누워 기다리고 있으니 적막하고 쓸쓸했다. 간호사는 음악을 듣거나 TV를 보겠냐고 물었지만 난 괜찮다고 하고 눈을 감고 기도하는 쪽을 택했다. 무탈하게 이 과정을 지나게 해 달라고, 건강하게 아이를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이 과정에 관여하는 모든 의료진의 손과 마음을 주관해 달라고, 그리고 며칠 동안 엄마 아빠와 떨어져 있을 큰 아이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잘 지내게 해 달라고.


그러다 보니 점점 진통이 심해졌다. 강도도 세지고 더 오래 지속됐다. 아직 시부모님이 도착하지 않으셔서 남편은 큰 아이와 함께 있고 난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 11시 반이 넘어가면서부터는 견디기 힘든 수준의 진통이 시작됐다. 임박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아프고 괴로운 진통과 함께 본격적인 힘주기가 시작되었고 (한참이 지난 것 같은데 실제로는 10분 정도 후에) 남편 목소리가 들렸다. 곧 남편이 들어와 손을 잡아주었고  5분 후 아이가 태어났다. 밤 11시 52분이었다.




첫째 때 무통주사 효과가 별로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무통주사를 맞아서 그 정도였던 것. 생으로 진통을 겪으며 분만하는 건 차원이 다른 고통이었다. 아이가 내려오는 게 하나하나 다 느껴졌다. 머리가 (산도에) 끼어있다가 나오고 어깨와 몸까지 쑤욱 나오면서 뱃속에 있던 것들이 빠져나오는 느낌이란. 미칠 듯이 아프면서도 속이 뻥 뚫리는 기분.


둘째라 그런지 진행이 굉장히 빨랐지만 강도는 훨씬 셌다. 그래서인지 후처치 및 회복과정이 정말 힘들었다. 바늘로 살을 꼬매는 것도 다 느껴져서 아팠고 진통이 계속 이어지는 듯한 훗배앓이가 너무 괴로웠다. (첫째 때는 훗배앓이가 없어서 몰랐는데 보통 분만 후 자궁수축 과정에서 경산모에게 많이 나타나고 첫째보다 둘째, 둘째보다 셋째 출산 후에 더 심하게 오래간다고 한다.)


결국 퇴원하는 날까지 혼자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걸 힘들어했고 자리에 눕고 일어나는데도 끙끙거렸다. 간호사 선생님들도 오히려 출산 당일보다 더 힘들어하는 것 같다며 놀라셨다. 네… 아파요. 힘들어요. 흑흑




혹자는 둘째니까, 한 번 해봤으니까 그래도 여유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난 아니라고 본다. 뭐든 내 경험은 아주 많은 조합의 가능성 중 하나의 케이스에 불과하니까. 내 컨디션과 아이의 상태가 첫째 때와 같아서 똑같은 조건이 아닌 이상 결국 내겐 완전히 새로운 케이스가 되는 것. 그래서 ‘케바케’라고 하는 거다. 변수가 많아도 너무 많다.


일단 내 몸이 달라졌다. 첫 출산 후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내 몸도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 좋든 싫든 이건 팩트다. 나이가 들면 회복력이 떨어진다. 똑같이 아프고 상처가 나고 몸이 망가져도 원상태로의 회복이 더딜 수밖에 없다.


게다가 첫째 출산 후에 육아하랴 일하랴 바쁘게 지내면서 운동은 전혀 하지 못했다. 체력이 완전 바닥을 치고 있는 상태에서 다시 임신과 출산 과정을 겪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이미 어깨와 목이 뭉쳐있고 허리가 계속 아픈 상태였다.


첫째는 봄에 생겨서 초겨울에 태어난 여자아이. 둘째는 초겨울에 생겨서 한여름에 태어난 남자아이. 가을 만삭과 여름 만삭은 또 얼마나 천지차이인지! 첫째 때는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이었지만 이번엔 산모로서 감염병을 더 경계하고 유난이다 싶을 정도로 조심해야 했다. 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돌보면서 임신기간을 보내야 하는 어려움까지. 조건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너무너무 힘들었지만 오랜만에 신생아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된다. 신생아, 정말 작다. 뱃속에 있을 땐 그렇게 크고 무겁게 느껴질 수가 없었는데 이렇게나 작은 존재였구나 싶다. 아직 내가 두 아이의 엄마라는 게 실감 나지도 않지만 이제 다시 처음부터, 아니 더 힘든 수준의 육아 일상을 시작해야 하는데 잘할 수 있겠지? 새로운 일상,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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