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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라의앨 Feb 02. 2022

병원에서 보낸 설 연휴

뜻밖의 위로




이제 만 5개월 된 작은 아이가 폐렴 혹은 모세기관지염으로 입원 중이다. 보름 넘게 큰 아이와 감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결국 입원행. 열은 없었지만 명절 연휴를 앞두고 갑자기 콧물과 기침 가래가 심해져서 동네 어린이병원을 찾았는데 병실이 없어서 입원할 수 없었다. 상황은 다른 지역 병원도 마찬가지. 결국 입원 대기 걸어두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다행히 2인실에 자리가 났다며 몇 시간 만에 연락이 왔다. 고민하지 않고 바로 입원했다.


그래도 첫째 때 입원 한 번 해봤다고 필요한 짐을 재빠르게 챙길 수 있었다. (경험이 이래서 중요하다^^) 해당 병원을 검색해 보니 어떤 물건은 구비되어 있고 뭘 추가로 챙기면 좋을지 등을 자세하게 적어둔 블로그 글이 많았다. 내 이야기가 아닐 때에는 TMI이지만 또 이런 정보가 필요할 때도 있고 이런 정보를 누군가는, 아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


4살 때 입원했던 큰아이 손등에 바늘 꽂을 때도 차마 못 봤는데 5개월짜리 아가의 오동통한 살을 뚫고 혈관에 바늘 주사를 꽂는데 요즘 말로 맴찢이었다. 한창 살이 올라올 때라 혈관 찾기가 쉽지 않아서 아가들은 발에 바늘을 꽂기도 한다는데 담당 선생님께서 우리 아기 손등에서 혈관을 기가 막히게 찾아 한 번에 꽂아주셨다. 어린이병원이라 그런지 아이를 잘 달래 가며 바늘을 아주 능숙하게 쑥 꽂더라. 동네 소아과에서 아이를 다루는 간호사 선생님의 손길이 너무 거칠다고 느낀 순간이 몇 번 있었던 터라 더 비교가 됐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서비스직은 같은 일을 해도 어떤 말과 표정으로 일을 하느냐가 참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낀 순간이었다.



소방서뷰의 병실


첫날은 2인실에서 지냈다. 그나마 창가 병상이고 전망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위안 삼았지만 2인실에서의 하루는 힘들었다. 어른이면 다인실에서 지내는 게 좀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정도로 끝나겠지만 아이가 아파서 입원했을 땐 가능하면 1인실로 가야 한다는 나름의 원칙이 첫째 입원 때 생겼다.


아이는 아픈 것만으로도 힘들고 짜증이 나고 울고 칭얼대는 게 당연하다. 사실 내 아이가 울고 칭얼대도 들어주기 힘들지만 그래도 내 아이니까 안쓰럽고 내 아이니까 참을 수 있다. 그런데 내 아이가 아파서 울고 칭얼대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옆에서 다른 아이도, 아니 여러 아이들이 같이 그러고 있다. 아픈 아이 돌보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피곤할 대로 피곤한 보호자(부모)로서 다른 아이들의 울음과 칭얼거림까지 듣고 좋은 마음으로 넘기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서로 예민해져 있으니까 별 것 아닌 것에도 날카로워진다. 게다가 아이가 겨우 잠들었는데 다른 아이 울음소리에 깨버리는 일도 허다하다. 1인실을 써도 옆 방과 복도에서 나는 소리가 다 들리는데 하물며 다인실은 한 방을 여럿이서 같이 쓰니 말할 것도 없다. 아이를 위해서도 부모를 위해서도 1인실을 희망했고 이 또한 대기를 걸어두었다가 다음 날 자리가 나서 옮길 수 있었다.


1인실 입구에서 찍은 사진.

나와 아이가 이번에 머물렀던 병원 1인실의 장점은...

- 퀸 사이즈 저상 매트리스라 낙상 위험이 적어서 좋다.

- 옷장과 수납공간이 있어 편하다.

- 화장실 등 시설을 혼자 쓰니 물건을 나 편한 대로 놓고 쓸 수 있다.

- 밤 수유할 때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

- 긴 소파. (싸구려 같은) 매트리스에 비해 소파는 아주 괜찮았다.

- 방 중앙 천장에 달린 수액걸이. 아주 편하고 유용했다. 다만, 내 키가 있어 아이를 안으면 혈액 역류… 높이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 TV와 전화기가 있지만 난 쓸 일이 전혀 없었다.


아쉬운 점은...

- 방음이 전혀 안된다. 옆 방과 복도에서 나는 소리가 다 들린다.

- 화장실에 물건 올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없어 불편하다.

- 벽지와 커튼, 블라인드에 낙서나 얼룩이 그대로 있다.

- 취침등이 있지만 너무 밝다. 밤중에 켜도 부담되지 않는 무드등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

- 침대 매트리스에 돈을 너무 아낀 느낌이다. 어른이 올라가면 너무 푹 꺼지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서 자는 아이를 눕힐 때 소리가 신경 쓰인다. 그래서 아이만 침대에 눕혀 재우고 난 결국 소파에서 잤다.

- 장점으로 나열한 것들이 '아이'가 아닌 '보호자'의 편의를 위한 것들이다.


병원 홈페이지에는 '아동에 특화된 병실'이라고 되어있던데 솔직히 아이에게 특화된 건 전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어린이병원/아동병원 병실에 이런 게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병실 내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 그림이나 포스터 등.

- 아이들을 위한 책이나 장난감. (로비에는 있는데 교차 감염의 위험이 있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방에 비치하면 관리가 문제겠지만 방법은 찾으면 지 않을까?.)

- 아이들은 낙서를 좋아한다. 아이들이 머무는 공간이라는 점을 고려해 벽지를 특수소재로 하거나 위에 시트지를 붙여서라도 아이들이 낙서하고 그릴 그려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어떨까.

- 방음처리. 이건 진짜 꼭 필요하다고 본다. 아픈 아이와 예민해져 있는 보호자 모두를 위해.


물론, '어린이'의 연령 범위가 넓어서 쉽지는 않겠지만 아이 눈높이에 맞춘 디자인과 인테리어가 아니라서 아쉽고 실망스럽다. 병원 입장에서는 결국 돈이 드는 일이겠지만 필요한 곳에 돈을 쓰는 것도 중요한 것 아닌가. 병원 이름에 걸맞게 아이, 아동, 어린이가 중심이 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갑자기 병원 후기 모드^^;)

 



아이는 수액을 맞으며 약도 먹고 호흡기 치료도 했다. 맘마 먹고 유모차 타고 로비 산책하고 방에 와서 놀잇감으로 놀다가 자고를 반복했다.


이제 175일 된 둘째는 손 쓰는 법을 터득하고 있는 중이다. 물건이 있는 쪽으로 손을 뻗어 잡고 밀고 당기는 능력이 생겼다. 아직 힘이나 방향 조절이 미숙하지만 물건을 잡는 힘도 제법이다. 아이 손에 머리카락이 걸려들면 아프고 안경이 잡히면 괴롭다. 조금 더 연습해서 익숙해지면 젖병도 스스로 잡고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날을 고대한다.


마스크는 필수

1인실이라 방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지만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시거나 회진 때 등 다른 사람과 한 공간에 있어야 할 때는 마스크를 착용한다. 귀찮고 답답하지만 이제 이게 일상이고 서로를 위한 배려이자 에티켓이다. 복도나 로비에 나갈 때는 마스크를 반드시 써야 한다. 보통 24개월 미만의 유아는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지 않고 강요할 수 없지만 병원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전염성 있는 질병으로 입원한 아이들이 모여 있다 보니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너무너무 위험하다. 병원에서 병 옮아 온다는 말이 현실이 되는 건 시간문제.


아이에게 마스크 씌우기를 몇 번 시도해봤지만 아직 너무 어려서 얼굴에 뭐가 닿으면 비벼대고 입에 뭐가 닿기만 하면 먹는 건 줄 알아서 제대로 쓰고 있질 못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의무라고 하니 씌우긴 했는데 가장 작은 사이즈의 마스크도 아직 5개월 아기에게는 크고 귀에 걸어도 비비면서 계속 빠지고 눈 가리고 찌르고... 손으로 잡아당겨서 끈이 끊어지고 찢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성인용 마스크에 달려 있는 고리가 생각났다. 가방을 뒤적여 고리를 찾아 아이 마스크에 연결했고 마스크 끈을 귀에 거는 대시 머리 뒤쪽으로 해서 고리로 걸어주었다. 이렇게 하니 훨씬 안정적이고 아이도 덜 답답해했다. 매우 성공적! 이 고리만 따로 좀 살 수 없을까... 앞으로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훗. 피부가 약해서 마스크에 쓸려 건조해지고 빨갛게 올라와서 속상하지만 마스크를 안쓸 수는 없으니.. 쓰고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호흡기 치료 정도 셀프로.

첫째는 입원했을  호흡기 치료를 싫어해서    힘들었다.  거리는 소리도 싫고 연기도 싫다며... 둘째는 처음에는 입과 코에  씌우니 싫어하다가 네뷸라이저를   소리와 함께 연기가 나오는  신기한지 시원한지 가만히 대고 있는다. 심지어 손으로 네뷸라이저를 잡고 있는다. 그래서 내가 아이를 안고 아이가 혼자 호흡기를 잡고 치료한다.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가 아이가 호흡기 치료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잘한다고 신기해했다. 내가 봐도 신기하다. 호흡기 치료를 잘해서인지 회복도 아주  되고 있다고 했다.


그간 콧물과 가래기침 때문에 잠을 깊이 못 잤는데 조금씩 상태가 나아지면서 잠을 깊이 오래 자기 시작했다. 보통 4시간 텀으로 먹고 낮잠은 길어야 한 시간밖에 안 자던 아이가 낮잠을 두 시간, 길게는 세 시간씩 자고 자느라 다섯여섯 시간 만에 먹기도 했다. (그럼 배고파서 허겁지겁 엄청 빨리 그리고 많이 먹는다. 순식간에 원샷!) 밤에도 통잠을 안 자고 한두 시간마다 일어나던 아이인데 세 시간 이상씩 잘 자기 시작. 덕분에 나도 잘 자고 좋다.



노트북을 켜면 병실도 사무실이 되는 매직.

아이가 잘 자니 나도 그 시간에 같이 낮잠을 자기도 하고 일을 하기도 한다. 이번 주도 번역 거리가 있어 노트북을 챙겨 왔다. 아이가 잠들면 난 방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음악을 틀어두고 조용히 번역을 한다.


프리랜서로 번역 일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집에서 시간 될 때 조금씩 작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몇 시간 내리 집중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 진행 중인 건은 벌써 4개월 차에 접어든 장기 프로젝트라 내용도 형식도 익숙해져서 인지 속도가 많이 붙었다. 하루에 2시간 정도 작업하는 분량으로 나누어 틈틈이 작업 중이다. 한 문장 한 문장 쳐 가며 번역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도장깨기 하는 기분이랄까. 게다가 다소 말랑말랑한 글이라 문장을 요리조리 만져보고 다듬는 재미도 있다. (물론, 이건 충분한 대가를 받고 일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통역할 때는 상상하기 어려운 여유와 자유로움이다. 통역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번역도 놓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론은 둘 다 좋다는 거 :)




보호자로 아이와 함께 하는 병원생활은 힘들다. 그래도 아이 약 주고 치료해주시는 의료진이 있고 난 밥도 청소도 빨래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좋다. 온전히 아이 돌보는 일만 신경 쓰면 되는 것. 병원밥도 남이 해주는 밥이라서 맛이 있나 보다. 메뉴도 시간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때 되면 방으로 배달되는 병원밥이 난 꽤나 좋다.


아기가 아파서 고생 많아요.
일보다 애 키우는 게 더 힘들죠?

 가져다주시는 아주머니께서 건네신 말씀에 눈물이  돌았다. 통역과 번역이라는  자체가 변수가 많은 일이다.  통제권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워낙 많다. 그래서  수많은 변수를 고려해서 미리 준비해야 하기에  일이 쉽다고 느낀 적은 없다. 그런데 아이 키우는  차원이 다르다. 적어도 내가 경험하고 있는 육아는 그렇다.  아이 모두 특별히 예민하지 않고 남들이   순한데도 말이다. 육아 변수는 너무나도 크고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투성이다. 계획대로 되는 경우는 드물고  어떻게   없는  훨씬 많다. 


일하면서 아이 키우는 엄마도 많고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 그리고 시부모님과 우리 엄마 아빠도 애 키우느라 수고 많다는 말을 해주었을 때 감사하고 따뜻했다. 그런데 모르는 아주머니가 툭 던지고 가신 이 말씀이 유독 마음을 울렸다.




아이는 특별한 문제가 있지 않는 한 내일 퇴원한다. 3박 4일, 이번 설 연휴를 꼬박 병원에서 보냈다. 연휴를 통째로 날린 기분이지만 다른 것 신경 안 쓰고 오롯이 아들과 둘이 보낸 이 시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왜 하필 이 타이밍에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아이가 보채고 잠을 못 자면 나도 너무 힘들어서 그냥 다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기운은 없어도 엄마 보며 씨익 웃어주는 아이의 모습에 이내 녹아내린다. 조심성도 준비성도 부족한 엄마인데 둘째는 첫째보다 예민하고 약하다는 걸 기억하고 조금 더 신경 쓰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우리 두 아이도, 이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나와 남편도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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