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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톡톡부부 Jun 22. 2020

05. 아내가 아프다 2

푸켓, 태국 (by 톡남편)

대학교 2학년 시절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갔던 나는 단과대 학생회장의 모습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학생회장은 99학번이었는데 리더십, 재치, 유머 등 유쾌한 말솜씨로 사람들을 이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대학교 졸업하기 전에 단과대 학생회장을 꼭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2년의 군대 생활을 전역하고, 학생회장을 하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갔다. 의아하겠지만 나는 의류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과 특성상 남성보다 여성 비율이 월등히 많았고, 인원이 많지 않아 학생회를 하기에는 타 단과대보다는 쉬운 편이었다.

1학년 때 과대를 한 경험으로 전역 후 3학년 때는 의디과 부학생회장을 통해 실질적인 학생회 경험을 쌓았다. 부학생회장의 임기가 끝나면서 단과대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해서 당당히 학생회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좋게 말하면 성격이 좋은 편이고, 나쁘게 말하면 이곳저곳 잘 나대는 성격이다.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고 모임을 만나는 걸 좋아하는 나는 학생회장을 하는 1년 내내 사람과 술이 빠지지 않았고, 그 해에 아내와 잠시 이별을 경험하기도 했다.



대학생 시절 학생회장을 했다는 경험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태국 푸켓을 여행할 때의 큰 사건을 얘기하기 위해서이다. 신혼여행으로 많이 찾는 로맨틱한 도시인 푸켓. 기대에 가득 차 도착한 그곳에서는 하루하루가 행복한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푸켓을 떠나기 2일 전에 아내의 컨디션이 급격히 좋지 않았다. 숙소에서 쉬기로 했는데 숙소에만 있기에는 조금 무료했다. 마침 온라인 메신저 단체 톡방에서 푸켓을 여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만나서 가볍게 맥주 한 잔 하자는 채팅이 올라왔다.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내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뿌리칠 수 없는 좋은 제안이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아내를 숙소에 재우고, 아내에게 말도 없이 그 사람들을 만나러 푸켓 거리로 나왔다. 당시 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를 정도로 아내에게 무심했던 것 같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건 좋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독이 될 때도 있다. 지금은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무작정 사람을 만나는 게 좋았던 것 같다. 이름도 모르는 남자 3명이서 푸켓의 작은 식당에서 맥주 한 잔을 하고 있는데,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도대체 어디냐고.. 아뿔싸 큰일 났다. 아내가 잠에서 깼는데 숙소에 혼자만 있으니 덜컥 무섭기도 하고, 걱정도 되어서 문자를 보낸 것이다. 당황한 나는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고 숙소로 미친 듯이 달렸다.

숙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내는 토라진 듯 누워있었다. 미안하다며 용서를 구했지만, 이미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아내는 결국 화를 못 이기고 화병이 났다. 컨디션도 안 좋은데 화병까지 생기니 몸은 불덩이가 되었고, 오한과 기침으로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미안한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으로 수건에 찬물을 적셔 불덩이가 된 아내의 몸을 구석구석 닦아 주었고,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아내는 도저히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날이 밝자마자 푸켓의 가장 큰 병원으로 갔다.


혹시 말라리아 증상은 아닌가 검색도 해보고 병원에 도착한 우리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빨리 진찰을 받을 수 있었고, 담당 의사와 번역기를 돌려 아픈 증상을 차근차근 다 설명했다. 담담 의사도 혹시 모르니 말라리아 검사도 해보겠다고 말하며 주사와 약을 처방하고, 말라리아 검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며 아내가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었다. 주사도 맞고 약도 먹고 한숨도 못 잔 아내는 좁은 간이침대에서 눈을 붙였다. 나 때문에 아내가 이렇게 된 건 아닐까, 혹시나 위급 상황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오만가지 걱정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1시간쯤 지났을까? 담당 의사는 다행히 말라리아는 아니라며, 단순 고열이라 처방해준 약을 먹고 휴식을 취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아픈 아내를 부축하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도대체 누구랑 여행을 하고 있는 건지, 내가 왜 그 시간에 아내 몰래 밖으로 나간 건지, 내가 아내를 너무 무심하고 있는 건 아닌 건지… 복잡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에 아내의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어젯밤부터 제대로 먹은 게 없는 아내에게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러 가자고 말했고, 아내는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고 했다. 다행히 푸켓은 한국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한식당이 있었다. 여행을 떠나고 100일 만에 처음으로 먹는 한식이었다.


아내는 다행히도 된장찌개와 떡볶이를 먹고 조금은 힘이 난다고 말했고, 나는 손이 발이 될 때까지 빌면서 미안하다고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라고 사과를 했다. 아직도 화가 난 상태인 아내는 못 이기는 척 사과를 받아주었다. 아내가 아픈 이후로 나는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었고, 나 혼자만의 여행이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다행히 그 이후에는 병원에 간 적은 없었다. 아.. 이집트 다합에서 나도 한번 간 적이 있는데.. 그 에피소드는 이집트 편에서 자세히 적혀있다. 나 때문에 아픈 아내에게 다시 한 번 미안하다는 얘기를 전하고 싶다. 미안해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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