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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톡톡부부 Jul 02. 2020

33. 스위스에서 만난 인연

취리히, 스위스

여행의 ‘여’도 모르는 우리가 국내여행도 아니고 해외여행을 길게 떠날 수 있을까? 루트는 어떻게 계획해야 하며, 어디를 먼저 가야 하지?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가야 하나?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불안과 걱정에 막막하기만 했다. 대략적으로 알려주는 사람은 있지만 하나하나 컨설팅을 해주는 사람은 없으니까. 강의도 듣고, 책도 보고, 블로그도 보고, 인스타그램도 봤지만 답이 안나왔다. 결국 세계여행을 다녀온 선배 여행자들의 자문을 구하기로 했다.

1년이 넘는 장기여행의 루트를 세운다는 건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아내와 오랜 고민 끝에 노트와 펜을 꺼내어 가고 싶은 나라, 보고 싶은 곳을 각자 적어 보기로 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나라의 이름들이 적혀 있었고, 각자 적은 작은 노트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과 스위스의 대자연. 다른 건 몰라도 두 곳은 날씨 좋을 때, 가능하면 오랜 시간, 제대로 여행을 하자라고.


동남아와 인도, 네팔을 여행하고 세계를 향해 발을 내디딘 지 5개월이 되었을 무렵, 드디어 유럽 대륙의 땅을 밟았다.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곳, 신혼여행지 1순위였던 유럽을 여행하고 있으니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유럽 곳곳을 돌아다닌 지 3개월 차에 우리가 세계여행 중 가장 와보고 싶었던 곳, 스위스에 도착을 했다. 스위스는 유럽에서는 작은 나라에 속하지만, 무려 11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머물렀다.

스위스의 첫 도시는 취리히였는데 사실 취리히는 11일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던 도시였다. 취리히에 방문한 이유는 SNS에서 알게 된 한 가족 때문이었다. 그분은 우리가 세계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응원해 주셨다. 스위스에 거주 중인 그 가족은 한국인 아내와 스위스인 남편, 그리고 귀여운 두 명의 딸이 있다. 지나가는 말로 스위스에 오게 된다면 집으로 초대해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는 댓글을 적으셨는데, 정말 스위스 여행을 할 때가 되자 정식으로 다시 한번 초대를 해주셨다.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뵈었다.


스위스 취리히 도심 지역에 벗어난 곳에 위치한 집은 스위스 현지인들의 삶을 볼 수 있고, 이 곳이 진짜 스위스다!라는 걸 말해주듯 아름다운 자연을 갖고 있었다.

첫 만남의 어색함도 잠시, 귀여운 두 딸의 사랑스러운 애교로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하게 만들었고, 근사한 스위스식 저녁 식사를 대접받았다. 저녁 식사 메뉴는 라끌릿. 라끌렛은 스위스에서 자주 먹는 전통 음식 중 하나인데, 사실 스위스 사람들은 겨울철에만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우리가 스위스 전통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더운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라끌렛을 준비해주신 것이다.



아스팔트에 아지랑이가 보일 정도로 뜨거운 여름에 군고구마를 먹는다거나,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에 시원한 냉면을 먹는 느낌이랄까. 제대로 된 정보도 없이 스위스에서 맛볼 수 있는 라끌렛을 먹고 싶다는 한 게 감사하면서 죄송스러웠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잠시 음식을 입에 넣는 순간 정말 사르르 녹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레스토랑에서 먹으면 엄청 비쌀 텐데’라는 생각과 함께 고소하면서도 느끼한 치즈를 한 입 먹으면 절대 남길 수 없었다.

음식이 목구멍까지 가득 찰 정도로 맛있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른 채 여행 이야기를 했다. 나와 아이들은 텐트를 쳐도 될 정도의 큰 마당에서 장난치며 뛰어놀았다. 오랜만에 만난 한국인이고, 직접 초대까지 받았기에 최대한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했고, 우리와의 짧은 만남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속하게도 해는 알프스 산맥 너머로 모습을 감췄고, 깜깜한 어둠이 왔다. 방에서 잘 수도 있었지만 유럽 여행 내내 캠핑을 즐겼고, 스위스 가정집 마당에서 캠핑을 하면 잊지 못할 추억이 생길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마당에 텐트를 쳐도 되냐고 여쭤보았다.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는데 생각하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신나게 뛰놀던 아이들도 덩달아 마당에 텐트를 치고 그곳에서 자고 싶다고 땡깡을 부렸다. 6월이라고 해도 차가운 밤이슬에 아이들에게는 조금 추울 수도 있었지만, 우리와 함께 더 긴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결국 아이들과 우리는 편안하고 따듯한 방을 뒤로하고, 반짝이는 별빛을 이불 삼아 마당에서 잠이 들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데 집으로 초대해서 맛있는 저녁 식사와 숙박까지 허락해주었으니 그분들은 아마 천사가 아닐까 싶다. SNS을 꾸준히 한 덕분에 여행하면서 종종 이런 일이 있었는데, 여행을 하기 전에 정리되었던 인연이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초대를 받은 경우 최대한 만나 뵈려고 노력했다.


그분들은 작은 호의였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배낭여행자들에게는 꿈같은 일이다. 단순히 돈 몇 푼을 아낄 수 있어서가 아니라, 먼 곳에서도 우리의 여행을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점과 일회성의 인연이 아닌 꾸준한 인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다. 여행 말미에는 우리에게도 ‘여유’라는 것이 생겨 그동안 우리가 받았던 호의를 다른 배낭여행자들에게 베풀기도 했다. 장기간 여행을 하면서 아무런 대가 없이 받은 것이 많기에 우리도 당연히 아무런 대가 없이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다. 여행하면서 만났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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