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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th Point Apr 20. 2016

색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색맹의 섬

올리버 색스가 속삭여주는 동화 같은 섬 이야기, <색맹의 섬>



색이 없는 세상은 어떠할까?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색이 없는 세상 말이다. 호모 사피엔스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색을 너무나 당연시하며 자랐다. 가시광선 영역의 '빨주노초파남보'의 색깔은 당연히 우리의 우주를 구성하는 자연스러운 요소로 간주되었다. 과연 이러한 당연함은 옳은 것일까? 우리가 보는 가시광선 이외의 세상은 없는 것일까? 답은 이미 과학자들에 의해 제시되어 있다. 주파수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우리가 색이라 부르는 가시광선 영역대는 전체 주파수 영역에서 너무나 희미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그 나머지의 전자기파들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역이었던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들은 외계인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궁금해하기에 앞서 우리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오감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선택한 책이 올리버 색스의 <색맹의 섬>이다.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는 들었지만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다. 첫 번째 이유가 태평양의 미크로네시아 지역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이유였다. 두 번째 이유는 의학적 지식이 전무하여 책을 읽어도 쉽사리 이해할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올리버 색스인데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도록 책을 써 내려갔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 책 앞에 앉았다. 다행히도 그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망막세포의 결함에서 오는 색맹은 대부분이 부분 색맹이며, 일부 유형은 아주 흔하다. 적록색맹은 대략 남성 20명당 한 명꼴로 나타난다. 그러나 선천적인 전색맹은 극히 드물어서 3~4만 명당 한 명꼴로밖에 되지 않는다. 완전한 색맹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보는 세계는 어떨까? 그 사람들은 뭔가가 부족하다는 것 자체를 느끼지 못할까? 그들도 우리가 보는 세계 못지않게 강렬하고 활기 넘치는 세계를 갖고 있을까? 어쩌면 그들은 명암과 질감과 움직임과 깊이를 뚜렷이 인지하는 능력이 더욱 발달하여 어떤 면에서는 우리 것보다 더 강렬한 세계, 실체가 강조된 세계에 사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의 사소한 것, 하나 마나 한 것에나 한눈을 파는 우리를 도리어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아닐까?



<색맹의 섬>은 고립된 섬에서 일어난 색맹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은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섬들, 그 섬들이 겪게 되었던 식민지의 역사, 이로 인해 발생한 유전병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것에 적응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림 그려지듯 펼쳐진다. 올리버 색스에 의해서 말이다. 그의 여행기는 마치 한편의 동화를 보는 듯하다. 나른한 느낌의 동화책을 펼치고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올리버 색스와 함께 공감하고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느낌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가 날 무릎에 눕히고 옛날 옛적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착각을 하기도 했다. '핀지랩'과 '폰페이'에서 완전히 색맹으로 태어난 사람들의 이야기. 이런 공동체가 과연 존재할까라는 의문은 올리버 색스에 의해 바로 해소되었다.

올리버 색스는 선천적 색맹인 '색맹 전문가' 크누트와 친구인 안과의사 봅과 함께 미크로네시아로 떠나게 된다. 태평양 한가운데 섬인 핀지랩과 폰페이. 그들은 이곳에서 원주민들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녹아들어가서 함께 공감하는 일상을 보내며 지낸다. 그리고 그들은 색이 주는 편리함이 아닌 풍부한 명암과 질감의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조금은 다른 사람들을 더욱 잘 알게 된다. 올리버 색스는 천국 같은 이곳의 모습에 식민지 역사를 오버랩시키면서 좀 묘한 공간으로 만들어놓는다. 동경의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적 사람으로서 이들을 소개하고 있다. '색의 세상'이 우선이 아니라 '색감과 질감'의 세상도 우리가 의미 있게 다루어야 한다고 그는 조용히 속삭인다.

색맹은 푸르와 핀지랩 두 곳에서 한 세기 이상 존재했으며, 두 섬 다 각종 유전자 연구의 주제가 되어왔으나 그곳 사람들에 관한 인간적 탐구며 색맹 사회에서 색맹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러니까 자기만 완전히 색을 못 보는 것이 아니라 색맹 부모와 조부모, 색맹 이웃, 선생님까지도 색맹인 곳, 색에 대한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 대신 다른 형태의 지각 능력, 다른 형태의 관찰력이 증폭돼 발달한 문화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 관한 연구는 전혀 없었다. 공상에 가깝긴 하지만 나는 자기네만의 독특한 멋과 예술, 음악, 의복을 지닌 완전한 색맹 문화를 상상했다. 감각기관, 상상력이 우리와는 상당히 다른 곳, '빛깔'이 가리키는 내용이나 의미가 전혀 없어 빛깔의 이름도 빛깔에 대한 은유도 빛깔을 표현하는 말도 없는, 그러나 우리가 그저 '잿빛' 한마디로 끝내버릴 질감과 농담에 관해서라면 제아무리 미묘한 것도 놓치지 않고 잡아내는 언어를 가진, 그런 문화 말이다.


태평양 한가운데 미크로네시아 지역의 한 외딴섬, 핀지랩

핀지랩은 미크로네시아 지역에 속하며 폰페이 주에 속하는 섬들 중 하나다. 폰페이 섬 주변으로 핀지랩, 안트, 파킨, 누쿠오로, 오롤룩, 카핑가마랑기, 무오아킬, 사푸아픽이 있지만 이들은 정말 바다 한가운데 점처럼 하나씩 박혀있다. 핀지랩이라는 작은 섬에 사람이 정착해 산지 800여 년, 초기의 정착민들이 어디에서 건너왔는지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는 섬. 번창하였던 이 섬에 강력한 태평이 휘몰아쳤고 천명에 육박했던 인구는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겨우 20명의 생존자만을 덩그러니 남겨놓았다. 몇 세대가 흘러 인구는 100여 명이 훌쩍 넘어섰지만 이러한 좁은 관계로 인해 근친교배는 어쩔 수 없는 필연이었다. 이 섬에서도 희귀했던 질병이 태풍을 맞서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둘러싼 것은 4세대가 흘러서였다. 19세기 초 인구의 5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난 빛을 인지할 수 없는 색맹. 이것은 고립된 섬에서 살아남은 대가로 자연이 그들에게 준 숙명 같은 거였다. 이러한 질병을 '마스쿤'이라 부르는데 핀지랩 전체 인구인 700명 중에서 57명이 전색맹이고 섬 인구의 1/3이 마스쿤 유전자 보유자로 살고 있다. 그들은 어둠에 적응하며 일반적인 호모 사피엔스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도록 오감이 발달한 것이다.

날이 더 어두워지면서 크누트와 색맹 주민들은 훨씬 쉽게 움직여 다녔다. 마스쿤이 있는 사람들한테 캄캄한 시간이 훨씬 편하다는 것은 핀지랩에서는 상식이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밤낚시에 고용되기도 한다. 이 방면에서는 색맹이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는데, 물고기가 수면 아래 어두침침한 곳에 있다가 물 위로 뛰어오를 때 뻗는 지느러미가 달빛에 반짝이는 것을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잘 보는 것 같다.


폰페이에서의 마지막 밤, 그리고 우주와 바다

올리버 색스는 우주에 드문드문 떠있는 별들과 망망대해에 살짝 솟아있는 섬들에서 동질감을 느꼈다. 그의 글을 하나하나 음미하다 보면 칼 세이건이 떠오르곤 한다. 칼 세이건이 사용한 표현과 올리버 색스의 언어들은 너무나 다르지만 그들이 공유한 감각들은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삶을 바라보는 관조적 태도라던가 아니면 우주를 바라보는 감성적 시선 같은 거 말이다. 아래 책의 내용들만 살펴봐도 그렇다. 나침반도 없던 그 시절, 환한 대낮이라면 태양에라도 의지할 수 있다. 하지만, 어둠이 몰려온 새까만 밤, 의지할 곳이라곤 오로지 하늘에 반짝이는 별 밖에는 없다. 그들은 이런 별들을 몸속에 체화하면서 그들과 동화되었다. 이런 모습이 우주 속에 우리 태양계와 비슷하다. 정말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차디찬 우주 공간, 너무나 드문드문 박혀 있는 별들이 새로운 섬을 찾아 나선 그들의 마음과 비슷할 것이다.

우리 배의 키잡이는 중요한 별과 별자리를 다 아는 것이 하늘을 안방처럼 꿰고 있었다. 사실 그만큼 잘 아는 사람은 크누트뿐이었고, 두 사람은 자기네가 아는 것을 귓속말로 주고받았다. 말하자면 크누트는 현대의 천문학 지식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았고, 우리 키잡이는 망망대해 태평양을 오로지 하늘에만 의지한 채, 행성 간 여행에 견줄 만한 항해 끝에, 우주의 행상들만큼이나 드문드문 멀찍이 떨어진 섬을 발견해서 터전으로 삼았던 천 년 전 미크로네시아와 폴리네시아 사람들의 오랜 지식을 몸에 익힌 것이다.  
샛별이 수평선 위로 높이 떠올라 자줏빛에 가까운 저녁 하늘에서 환하게 빛났다. 내 옆에 앉은 크누트도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머리 위의 북극성과 베가, 아크투르스를 가리켰다. 그러자 봅이 말헀다. "저것들이 폴리네시아 사람들이 쾌속 범선으로 항해할 때 창공에서 의지했던 별입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자 그들의 항해, 5천 년 동안의 항해가 혼 폭의 그림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들의 역사, 모든 역사가 지금 밤하늘 아래 바다를 마주하고 앉은 우리 머리 위로 무리를 이루어 모여드는 것 같았다. 폰페이 전체는 한 척의 배처럼 느껴졌다.


P.S. <색맹의 섬>은 상이한 두 가지 여행으로 엮여있다. 사실 완전히 다른 내용이라 두 권으로 분리해도 되지만 미국 출판사에서 합쳐서 출간한 것으로 보인다. 책은 미크로네시아 지역 중에 폰페이를 포함한 핀지랩의 <색맹의 섬>과 괌의 이야기가 나오는 <소철 섬>으로 분리된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괌도 미크로네시아 지역에 포함되며 태평양에는 하와이 제도부터 정말 수많은 제도와 섬들이 망망대해 한가운데 점처럼 찍혀있다. <소철 섬>에 대한 후기는 굳이 적지 않았으며 내용의 통일성을 위해 <색맹의 섬>에 대한 후기만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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