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칼라책방 Nov 05. 2023

나를 살린 음식, 상추! 상추! 상추!

살림 3-3

상추는 왜 이름이 상추일까? 상치 또는 생채 등의 다양한 단어가 검색되지만 그중 일관된 것은 역사와 전통이 깊은 작물이며 여러 음식에 활용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상추를 좋아하고 많이 먹다 보니 관심이 커져 자연스레 너는 누구일까... 로 궁금증이 번진 것이다.


우선 상추는 쌈을 싸 먹는다. 쌈 안에는 고기도 넣고 어울리는 다양한 음식을 더해 앙~ 입안을 가득 채워야 맛이다. 예부터 복을 싸 먹는다 하여 상추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오죽하면 상추대도 먹었을까. 게다가 그 이름은 궁채로서, '궁'은 '궁궐'을 뜻한다. 궁궐에서 먹는 거라면 모르긴 몰라도 꽤 괜찮은 음식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김밥을 먹을 때도 꼭 궁채 김밥을 주문한다. 조선시대 공주가 된 기분으로. 흠흠흠. 상추는 전을 부쳐 먹기도 하고, 떡을 해 먹기도 한다. 자칫 흐물흐물한 식감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아삭하거나 쫄깃한 느낌으로 되살아난다고 하면 꼭 맞는 표현일 것이다.


어느 날 알뜰하게 따 먹고 며칠 깜빡하고 있으면 거짓말처럼 돋아난 상추잎이 하늘거리며 어서 따 먹으라고 나를 유혹한다. 그러면 나는 어쩔 수 없이 상추에게 홀랑 넘어가 맨밥에 쌈장 한 숟가락 퍼서 상추와 합을 맞춘다. 밥 한 공기는 게 눈 감추듯 숨길 수 있는 맛이다. 특히 노지 상추의 아삭 거림은 똑똑 꺾어질 때마다 야릇한 쾌감을 느낄 정도로 근사하다. (아... 침 나와.)


내가 상추를 특별히 좋아하게 된 계기는 (원래 좋아했지만) 아이들 때문에 속상했던 그 시기였다. 며칠 끼니를 거를 정도로 입맛도 없고 의욕은 더 없었던 때였다. 과연 2남 1녀가 이렇게까지 나를 밑바닥으로 추락시키나 싶었고 심난하다는 표현으로는 턱 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친정 엄마가 잠깐 들르라고 해서 갔더니 흰 밥에 밑반찬이 있었고 쌈장과 지금 막 따온 상추가 있었다.


싫어. 입맛 없어.

그래도 먹어. 힘이 있어야 줘패든지 안아주든지 하지.

싫어.

한 숟가락만 먹어. 딱 한 숟가락만.

휴우... 알았어.


우리 엄마는 나 어렸을 때부터 내가 밥을 먹을 때까지 아무것도 못 하게 하는 모성애를 가진 사람이었다. 억지로 한 숟가락만 먹고 얼른 집에 가자는 마음으로 상추를 왼손 손바닥에 올리고 밥을 요만큼 떴다. 벌어지지도 않는 입을 하... 소리를 해가며 상추를 넣었다. 아사삭, 아사삭, 아사... 흑. 흑흑. 흐흐흑. 엉~ 엉~! 울음보가 터졌다.


상추가 입으로 들어가면서 눈물이 나오는 것 같았다. 둘이 바통 터치라도 했던 걸까? 상추가 들어간 만큼 눈물이 나오기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엉엉 울면서 먹었다. 신기한 건 맛있었다. 눈물 젖은 빵이 아니라 눈물 빼는 상추였다. 가슴에 무언가가 꽉 얹혀있어 먹는 즉시 체할 것이 뻔했는데,,, 분명 그랬는데 상추는 술술 잘도 넘어갔다. 상 위에 있는 상추를 다 먹었다.


이제 가.

알았어.

상추 좀 줘?

어.

뭐든지 싸 먹어. 요즘 상추 맛있드라.

알았어.


엄마의 손은 춤을 추듯이 상추대를 훑었다. 집으로 돌아와 상추를 냉장고에 넣고 잤다. 한숨 자고 일어나 저녁을 하려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상추가 보여 고추장 불고기를 했다. 그날 저녁 우리 가족은 상추쌈을 우걱우걱 먹으며 그렇게 고비를 넘겼다.


상추가 내 몸에 좋고 음식 궁합이 맞고 뭐 이런 것보다 그날 상추를 먹고 체하지 않았고 덕분에 한숨 푹 잘 수 있었다. 있었던 일이 없는 일처럼 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였다. 애들은 다 그러면서 큰다는 문장을 가슴에 아로새긴 날이었다. 그날 생긴 상처는 상추 덕분에 아물었다. 얹히지 않고 술술 내려갈 수 있도록 상추가 길을 터준 모양이다. 상추 덕분에 살았다.


작가의 이전글 과유불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