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수박은 혜주와 함께 먹었다. 아, 혜주는 3살 터울 친동생이다. 내가 수박을 사가면 혜주는 수박을 썰 준비를 한다. 도마 2개, 날이 적당한 식칼 2개, 음식물 쓰레기봉투, 김치 냄새 안 나는 김치통 2~3개를 꺼낸다. ㄱ자 주방에서 우리는 수박을 반 통씩 담당한다. 수박을 썰다가 서로에게 크게 한 조각 먹여주기도 하고, 어느 날은 그만 먹고 썰라고 잔소리하기도 한다. '수박 먹으면서 아따맘마 볼까, 짱구 볼까, 핑구 볼까?' 어떤 만화를 보면서 먹을까 고민하기도 한다. 나에게 수박은 함께 먹는 과일이었다.
2021년 7월 31일, 집을 나왔다. 독립을 하고 혼자 살게 되었다. 여름이면 부지런히 혼자서 수박을 사 먹었다. 한 통 혼자 다 먹을 수 있다는 욕심으로, 작은 냉장고에 수박을 넣었다. 욕심이 허전함을 동반해 무럭무럭 자랐다. 함께 먹을 때처럼 달지 않았다. 이상했다. 우연히 여름 그림책 모임을 열게 되었다. 이웃을 초대해 수박을 나눠 먹고 수박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나눠 먹다가 알게 되었다. 아, 수박은 혼자 먹는 과일이 아니구나. 나는 혼자 살아갈 수 없구나.
가장 좋아하는 여름에 가장 좋아하는 수박을 매일같이 먹으며 수박 이야기를 시작하면 끝이 없어서 수박 *진(Zine)을 만들었다. <수박을 더 맛있게 먹는 5가지 방법>은 2021년 7월부터 2024년 7월까지 1인 가구로 살아가는 동안 사 먹었던 *25통의 수박에게 배운 것이다. 수박은 계획적으로 먹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언제, 누구와, 어디서, 어떤 모양으로 잘라서 먹을지 새로운 방법을 상상하고 계획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어지는 글은 수박 진에 수록된 수박을 맛있게 먹는 5가지 방법 중 일부를 가져왔다.
수박이 맛있는 계절, 초여름!
4월 말부터 8월 초~중순까지 수박을 사 먹는 편이다. 특히 5월 말부터 6월 초중순 수박이 맛있다. 올해는 절기 상으로 소만부터 하지에 사 먹은 수박이 가장 맛있었다. 이 시기에 만나는 수박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를 정확하게 모르지만, 그 해 여름에 처음 만나는 반가움도 한몫한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이라 맛있는 수박을 고를 확률도 훨씬 높다. 8월 초, 입추가 지나면 장바구니에 수박을 담지 않게 된다. 무화과에 부쩍 시선이 멈추는 것을 보면, 수박과 함께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된다.
수박을 함께 먹을 사람들!
수박 한 통을 혼자서 먹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애플 수박, 망고 수박이 아니라면 수박 한 통을 여유롭게 먹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한여름에는 수박도 쉽게 상할 수 있어 보관이 까다롭다. 커다란 수박을 사 왔다면 주변 사람들과 나눠 먹자. 친구나 이웃을 초대해서 수박 파티를 열어도 좋다. 집에 찾아온 손님이 돌아갈 때, 큼직하게 썬 수박을 선물하자. 수박의 진정한 맛은 나눌 때 느낄 수 있다.
수박이 맛있는 모양
우연히 그림책 모임에서 수박을 반달 모양의 수박을 와구와구 먹었다. 한 명은 수박 그림책을 읽어주고, 나머지 사람들은 수박을 먹으며 그림책 이야기를 들었다. 만약 깍두기 모양으로 썬 수박을 포크로 먹으면서 들었다면, 그림책을 읽는 사람도 수박을 먹는 사람도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달 모양의 수박을 약간 흘리며 먹기도 하고, 와삭와삭하는 소리가 배경음이 되어 자연스럽고 편안한 시간이 되었다. 평소 수박을 먹던 모양과 다르게 먹어보자. 먹는 방법을 바꾸면 수박을 먹는 일이 더 즐거워진다.
수박 한 통을 다 먹었다면...
이번 수박과 다음 수박 사이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냉장고에 수박이 항상 있어도 좋지만 잠시 수박을 멀리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당길 것이다. 동네 슈퍼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어느 가게 수박이 더 맛있을까 상상하는 것도 좋다. 3~7일 정도 수박 공백기를 지나서 적절한 시점에 새로운 수박을 사 온다.
*수박 25통 : 2021년 6통, 2022년 7통, 2023년 5통, 2024년 7통 (참고: 2020년에는 10통을 먹었다)
*진(Zine) : 페이지 수가 적고 책등이 없는 중철제본을 뜻한다. 서브컬쳐의 근간이 되어주기도 한 진(Zine)은 개인이나 작은 집단이 이윤 추구의 목적 없이 만든다.